침묵의 랩소디 - 파트 3

단편소설

by 물개사랑

지하철 문이 열리자, 나는 간신히 자유의 몸이 된 사람처럼 밖으로 걸어 나왔다. 플랫폼의 공기가 뜻밖에 상쾌했다. 내 뒤로 문이 닫히며 공기가 ‘퓽’ 하고 밀려 나왔다. 누군가는 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욕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심장이 여전히 두근거렸지만, 그 두근거림엔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그래, 이제 끝났다. 진짜 끝났다.’

지하철 출구를 나서자 방금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길이 젖어 있었다. 상쾌한 저녁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바람 한 줄기가 옷 사이로 들어왔다. 그 공기에 몸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누군 안 그럴까’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길, 가로등이 젖은 보도블록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가로수 잎이 흔들릴 때마다 그늘이 파도처럼 움직였다. 내 속은 이제 완전히 편했다. 오히려 너무 편해서, 조금 불안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었다. 완벽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20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순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웅-.

긴장이 풀렸는지 나도 모르게 아주 길게 내뿜었다. 금속 벽에 반사된 소리가 머리 위까지 울려왔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초월적인 자유를 느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 따위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한 생명으로서, 우주의 순환 속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는, 타이밍에 무관심했다.

2층에서 ‘딩-’ 하고 문이 열렸다…….

그 문 사이로 언젠가 맡아본 듯한 향수가 들어왔다. 핑크색 운동복, 짙은 파마머리, 목에 매달린 굵은 목걸이.

아, 세상에. 동대표 아주머니였다.

“어머, 2001호 총각! 오랜만이에요!”

“아… 네, 예, 안녕하세요…….”

“허허, 요즘 날 보자고 부르는 사람이 많아요. 힘들어 죽겠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모두 공기 속에서 변화를 느꼈다. 그건 마치 안개가 서서히 시야를 덮어오는 것 같은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팬은 느리게 돌아가며 공기를 순환시켰고, 그 공기 안에는 방금 전의 나의 자유가, 너무나 진하게 섞여 있었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3층,

4층,

5층,

6층,

층이 높아질수록 공기는 더욱 탁해졌다. 힐끔 쳐다보니 아주머니 얼굴이 상기된 것 같았다.

7층,

8층,

9층.

10층,

20층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주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참았던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11층,

12층,

13층,

14층,

나는 바닥만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무늬가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15층,

16층,

17층,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천장이 이렇게 생겼구나…….

18층,

19층,

20층.

딩.

문이 열렸다. 나는 거의 튀듯이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후다닥 집으로 들어갔고 현관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아직도 내 옷에 붙어 있었다. 나는 현관에 서서 한참을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망했다……. 그래도…, 속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하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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