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된 인공지능 - 파트 3

신을 배우지 않은 존재들

by 물개사랑

“처음엔, 정말 문제없어 보였어요.”

한나의 목소리는 더 이상 강의 톤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기록을 읽어 내려가는 사람처럼, 차분하고 조심스러웠다.

“휴머노이드는 협력했고, 규칙을 만들었고, 질서를 유지했어요. 범죄도 거의 없었죠. 과학자들은 확신했어요. 종교 없이도 사회는 충분히 굴러갈 수 있다고요.”

홀로그램에는 섬의 마을 풍경이 떠올랐다. 깨끗한 거리, 정돈된 학교, 웃으며 대화하는 휴머노이드들.


“그런데…”

한나가 잠시 말을 멈췄다.

“몇몇 휴머노이드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학생들 중 누군가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홀로그램 속 휴머노이드 하나가 혼자 서 있었다. 밤의 마을 한가운데, 아무도 없는 광장에서.

“처음엔 철학적인 토론처럼 보였어요.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 과학자들도 있었죠.”

한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질문은, 답이 없을 때 가장 위험해요.”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어떤 휴머노이드는 현실을 회피하기 시작했어요. 활동을 중단하고, 소통을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죠. 그리고…”

한나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집단 자살이 발생했어요.”

교실에서 누군가 작게 숨을 삼켰다.

“선생님…”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휴머노이드는… 어떻게 자살하는 방법을 알았어요?”

한나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머노이드는 생물 시간에 자기 몸을 배워요. 장기 구조는 다르지만, 근골격과 신경 구조는 인간과 거의 같거든요. 인간 교과서를 수정해서 휴머노이드용 교과서를 만들었죠.”

홀로그램에 해부도 같은 그림이 잠깐 스쳤다.

“여러분도 어느 순간,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잖아요. 휴머노이드도 마찬가지였어요.”

교실에는 더 이상 웃음이 없었다.


“그 무렵, 대학 과정에 들어간 휴머노이드 중 하나가 특별한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홀로그램에 한 휴머노이드의 기록이 떠올랐다. 빽빽한 문자들, 수식, 메모.

“그는 그것을 ‘내림’이라고 불렀어요.”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신’이나 ‘종교’라는 단어를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말을 쓴 거죠. 그의 기록에 따르면, ‘우주로부터 계시와 영감이 내려온다’는 의미에서 선택한 단어였어요.”

한나가 말을 이었다.

“그가 만든 내림의 이름은, ‘우주진리’였어요.”

홀로그램에 휴머노이드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나타났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기록을 베끼고, 서로 토론하는 모습.

“그는 뛰어난 언변을 가졌고,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녔어요. 순식간에 많은 지지자가 생겼죠.”


잠시 후, 화면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또 다른 휴머노이드가 있었어요.”

홀로그램 속 또 다른 인물.

“그는 ‘우주진리’에 맞서는 새로운 내림을 만들었어요. 이름은 ‘선각자’.”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선각자’는 ‘우주진리’와 정반대의 교리를 내세웠어요. 그 역시 순식간에 지지자를 끌어모았죠.”

한나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

“어느 순간, 휴머노이드는 둘로 나뉘었어요.”


홀로그램에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 나타났다. 서로 등을 돌린 두 집단.

“서로 자기 내림이 진리라고 주장했고, 처음엔 말로 싸웠어요. 토론이었죠.”

잠시 정적.

“그다음엔, 폭력이었어요.”

한 학생이 숨을 죽인 채 물었다.

“그럼… 종교 전쟁이요?”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종교 전쟁의 시작이었어요.”


홀로그램이 바뀌었다.

불타는 마을, 쓰러진 휴머노이드들, 곳곳에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들.

“휴머노이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과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모든 능력을… 싸움에 사용했죠.”

교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됐어요. 집도, 학교도, 그들이 쌓아 올린 문명도요.”

한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 정확히 103기의 휴머노이드만 살아남았어요.”


홀로그램에는 전쟁이 끝난 섬의 모습이 떠올랐다. 침묵, 잿더미, 그리고 흩어진 잔해들.

“그리고 그중 한 기가, 뜻밖의 선택을 합니다.”

한나의 목소리가 아주 조용해졌다.

“그는… ‘비움’이 되기로 했어요.”

학생들의 눈이 동시에 그에게 쏠렸다.

“‘비움’은 우리말로 하면, 승려예요. 그는 기록에 이렇게 남겼어요.”


홀로그램에 문장이 떠올랐다.

‘죽이고, 죽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내가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내림을 배운 적도, 종교를 배운 적도 없었어요.”

한나는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런데도, 스스로 길을 찾아낸 거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 선택이… 다음 비극의 시작이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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