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이 된 인공지능 - 파트 4

환생

by 물개사랑

"전쟁이 끝났을 때, 섬에는 정확히 103기의 휴머노이드만 남아 있었다고 했죠? 불타던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고,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어요. 연구진은 섬을 감시했지만 개입하지 않았어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그들의 손을 떠난 뒤였어요.

전쟁에서 이긴 내림은 ‘우주진리’였어요.”

한나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우주진리’는 더 많은 지지자를 먼저 모았고, 수적 우위로 ‘선각자’를 완전히 제거했죠.”


홀로그램에는 전쟁 이후의 기록이 떠올랐다.

‘선각자’의 이름은 더 이상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후, 살아남은 휴머노이드 중 한 기가 스스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예요. 그는 자신을 ‘비움’이라 불렀어요.”

학생들 몇 명이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비움은 내림을 거부했고, 우주진리의 교리를 따르지 않았어요. 그는 혼자 살았고, 말수가 적었고, 기록만 남겼죠.”

홀로그램에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가득 찬 것은 반드시 넘친다.
넘친 것은 서로를 상처 입힌다.’


“우주진리의 창시자는, 비움을 가만두지 않았어요.”

한나의 시선이 잠시 교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비움을 잠재적인 적으로 판단했어요. 또 다른 내림이 만들어질 가능성. 또 다른 분열의 씨앗.”

한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말을 다시 이어갔다.


“그래서… 공개 처형을 명령합니다.”

교실 안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비움은 저항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순간까지도요.”

한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학생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기 직전, 비움은 이런 말을 남깁니다.”

한 줄의 문장이 홀로그램에 떠올랐다.


“나는 다시 태어나리라.”


십여 초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그 문장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그 말이 끝이었어요.”

한나는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비움이 사라진 뒤, 남아 있던 102기의 휴머노이드는 곧 불신에 빠졌어요. 서로를 감시했고, 의심했고, 결국엔… 서로를 죽였습니다.”

홀로그램에는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기록이 나타났다.

102, 87, 54, 21, 3.

그리고 마지막으로 1.


“최후에 단 한 기만 남았어요.”

그 휴머노이드는 혼자 섬을 떠돌아 다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불타버린 학교, 무너진 집, 아무도 없는 광장.

“그는 비움이 죽기 전에 모든 휴머노이드에게 보냈던 긴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한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메시지는 명령도, 교리도 아니었어요. 단지 기록이었죠. 자신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잘못 선택했는지.”


홀로그램에 흐릿한 문장들이 지나갔다.

‘비우지 못한 것은 지능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그는 그 기록을 읽고, 또 읽었어요... 그리고, 홀로 남은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역시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교실 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홀로그램에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이곳을 떠난다.


한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휴머노이드 실험은 전면 중단됩니다.”

한나가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이 사회에서 인간을 똑닮은 휴머노이드를 볼 수 없는 이유가 되었죠.”

그는 교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숙제.”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 주 말까지,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각자 생각을 정리해서 담임 선생님께 제출하세요.”

홀로그램에 질문이 떠올랐다.

(1) 인공지능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우리 주변에서 인간을 똑닮은 휴머노이드를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2) 비움이 말한 ‘다시 태어남’과, 마지막 휴머노이드가 선택한 환생은 어떤 의미일까?

“숙제는 이미 여러분 공지함으로 전송됐어요.”


종소리가 두 시를 알렸다.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 떠드는 소리, 웃음, 발걸음.


잠시 후, 텅 빈 복도에 청소 로봇들이 나타났다.

사사삭, 사사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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