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랩소디 - Part 1

평화의 배신

by 물개사랑

토요일 아침, 정돈된 폴더처럼 접힌 내 마음은 완벽히 휴식 모드였다. 수원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나는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처럼, 삼각김밥 하나와 페트병 커피를 손에 쥐고 있었다. 오늘 계획은 간단했다. 앉는다, 잔다, 휴게소에서 먹는다, 행복해진다. 인생 설계가 이렇게 쉬웠던가.

좌석은 맨뒤자리 바로 앞이었다. 이 자리는 허리를 꽤 많이 젖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나는 당당하게 탑승해, 좌석을 눈치껏 허용된 범위를 살짝 넘기는 각도로 눕혔다. 등받이가 눕혀질수록 내 인생도 눕혀지는 기분. 오늘만은 세상이 나를 부드럽게 흔들어주겠지.

창밖으로는 햇빛이 유리창에 버터처럼 발라졌다. 운전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살짝 올리고, 안전벨트 안내 방송을 틀었다. “고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라는 멘트가 흘러나오는 동안, 나는 이미 이어폰을 끼고 ‘주말 힐링’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첫 곡 제목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였다. 그 예언적 제목이 그때는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옆자리는 여행 고수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앉았다. 목베개, 안대, 무릎 담요, 심지어 작은 발받침까지. 그는 벨트를 채우자마자 3초 만에 기절했다. 침착한 코 고는 소리는 이 버스가 평화의 왕국으로 접속되었음을 알리는 백색소음 같았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눈을 감았다. 버스의 디젤 심장박동이 규칙적으로 내 몸을 토닥였다. 잘 자라, 도시의 피곤한 자여.

버스가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일상의 사소한 근심들이 버스 뒤편으로 날아가버렸다. 회사 단톡방? 음소거. 어제 야근? 기억 삭제. 나는 커피를 아껴 한 모금만 마시고 뚜껑을 닫았다. ‘휴게소에서 어묵 국물과 함께 마무리하자.’ 내 안의 생활 설계사가 형광펜으로 계획표에 표시를 하였다.

나는 좌석 등 포켓에서 안내 책자를 꺼내 훑었다. 관광지 사진들이 엽서처럼 박혀 있었다. 바다는 파랬고, 산은 초록이었고, 내 미래는 분명히 밝았다.

‘오늘은 나도, 세상도, 모든 것도 평온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계약서를 썼다. 사인은 큼직하게, 나.

바퀴는 매끈하게 노면을 타고, 창문에는 햇살이 점처럼 깨져 흩어졌다. 버스는 한 덩어리의 요람이 되어 승객들을 통째로 흔들었다. 나는 허리를 조금 더 눕히고, 배에 손을 포개었다. 따뜻했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아니, 없어야만 했다. 오늘의 나는 ‘행복한 인간’으로 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 순간, 라디오에서 DJ가 말했다. “여러분, 주말엔 꼭 여유를 즐기세요. 급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급할 건 아무것도-”

버스가 부드럽게 가속했다. 나는 눈꺼풀을 내려 커튼처럼 쳤다. 차창 밖 풍경이 물빛처럼 번졌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 주말은, 정말로, 아무런 사건 없이 지나갈 것이라고. 세상에, 계획과 현실이 이렇게 나란히 달리는 날도 있구나 하고.

그때는 몰랐다. 우주의 스케줄러가 이미 나를 향해 작고 묵직한 깜짝 선물을 포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은,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출발 30분, 버스는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나는 거의 반쯤 졸아 있었다. 의식은 미끄러지듯 경계선을 넘어가고 있었고, 몸은 마치 시트와 한 덩어리로 녹아들어 갔다. 그때였다.

쿠궁.

처음엔 노면이 거칠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두 번째 쿠궁이 내 복부 깊숙한 곳에서 울렸을 때, 나는 직감했다.

‘아니… 설마?’

삼각김밥과 커피 조합이 문제인가? 소화 기관은 늘 예고 없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지금, 내 대장은 쿠데타를 선언한 참이었다.

나는 슬쩍 허리를 세우고 복부에 손을 올렸다. 심장이 뛰는 소리보다 더 빠르게, 장이 쿡쿡 찔러댔다. 땀이 미세하게 이마에 맺혔다. 이건 단순히 불편한 속이 아니다. 본격적인 출동 신호다.

한 번 더 쾅하고 밀려왔다.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옆자리 아저씨는 코를 골며 잘 자고 있었지만, 나는 혼자만의 지옥에 갇혔다.

‘잠깐, 버스에… 화장실이 있었던가?’

눈을 번쩍 떴다. 좌석 등받이 포켓에는 잡지랑 종이봉투뿐. 천장을 올려다봐도 ‘화장실’ 표시는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그렇다! 이 버스는 고속버스. ‘쾌적한 승차’를 표방하지만, 비행기는 아니다. 순간, 공포가 몰려왔다.

‘고속도로 위… 최소 30분은 휴게소가 없다… 탈출할 수 없다!’

내 머릿속에 빨간 경고등이 깜빡였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건 시한폭탄이다. 내 안에 폭탄이 있다!’

버스는 부드럽게 달리고 있었지만, 내 속은 전쟁터였다. 대장은 불을 뿜었고, 괄약근은 간신히 문을 지키는 성문수처럼 떨고 있었다.

‘버텨야 한다. 그래, 인간은 존엄으로 버티는 존재다.’

하지만, 그 존엄은 휴게소 간판 하나에 달려 있었다.


버스는 일정한 리듬으로 달렸다. 창밖 풍경은 파노라마처럼 흘렀지만, 내 시야는 이미 터널처럼 좁아졌다. 대장은 노골적으로 반란을 선포했다.

“지금 개문한다.”

그러나 괄약근은 최전방의 초병처럼 삐걱대며 소리쳤다.

“절대 불가! 여긴 마지막 방어선이다!”

나는 편안한 좌석에 앉아 있지만 마음속은 완벽한 전쟁터였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압박, 땀에 젖은 손바닥,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

‘젠장, 아직 30분 이상 남았다니……’

나는 필사적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혹시 버스 안 어디 구석에 비밀 화장실이라도 숨겨져 있진 않을까? 하지만 보이는 건 앞 좌석 커플이 먹는 샌드위치 뿐이었다. 그 냄새마저 날 조롱하는 듯 코끝을 찔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푸른 산과 강. 그 광활한 자연이 내 안에서 요동치는 압박과 극적으로 대조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왜 나만……’

내 시선이 버스 맨 앞 전광판에 멈췄다.

‘다음 정차: 가평휴게소’

그 글자가 사형 선고처럼 보였다. 그곳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제발 오늘만은 교통체증이라도 걸려서 정차 좀 해라… 아니면 기적처럼 휴게소가 하나 더 나타나든가…’

그러나 버스는 버스 전용 차선으로 쌩쌩 달렸고, 정차할 기미는 없었다.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기사에게 다가갔다. 목소리는 최대한 차분하려 했지만 이미 떨리고 있었다.

“기사님… 혹시… 휴게소는 언제쯤…?”

기사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40분 정도 걸립니다.”

그 순간 내 귀에는 번개가 쳤다.

40분.

그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내 괄약근에게 주어진 무기한 전투 명령이었다. 자리로 돌아오며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40분…, 지금 파도의 빈도는 5분마다 한 번…, 그럼 최소 8번의 파도를 더 버텨야 하잖아?!’

땀은 이제 송골송골이 아니라 폭포수였다. 티셔츠는 등에 붙었고, 다리는 진동 모드에 돌입했다. 내 옆자리 아저씨는 여전히 코를 골며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그 평화로움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

‘이 사람은 우주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나는 지금 내전이라니……’

창밖의 풍경은 푸르렀다. 산은 부드럽고, 하늘은 맑고, 교통 흐름은 원활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문장만 울려 퍼졌다.

‘40분 남았다.’

마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 같았다.

2,400초.

2,399초.

2,398초…

내 장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품고 있는 불행한 인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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