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랩소디 - Part 2

지옥

by 물개사랑

시간은 느려졌다. 초침은 고무줄처럼 늘어지고, 버스 엔진음은 북소리처럼 내 장 속 반란을 북돋웠다. 나는 의자에 똑바로 앉을 수가 없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가, 옆으로 살짝 비틀었다가, 아예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쥐기도 했다. 그러다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그때였다. 옆자리 아저씨가 코 고는 소리를 멈추더니, 흐릿하게 눈을 떴다. 나를 흘끗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짧은 순간 그의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젊은이…, 지금 싸우고 있구나.”

앞 좌석 커플도 내 진동 모드에 눈치챈 듯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 왜 저래?”

여자는 입술을 가리고 피식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내 귓속에서 메아리쳤다.

“저 사람, 지금 고군분투 중이야.”

나는 더 작아졌다. 시트가 나를 삼켜버리길 바랐다. 버스 좌석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앉으면 앉을수록, 압력은 더 높아졌다. 뒤쪽 통로 건너편 할머니도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전쟁의 참상을 본 노병처럼. 그 눈빛은 무언의 연민을 담고 있었다.

“불쌍한 것… 휴게소까지는 멀었단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버스 안 모든 승객이 알게 모르게 이 전쟁의 증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존엄의 싸움에서 승리할지, 아니면 비극의 주인공이 될지.

파도가 몰려왔다. 나는 허벅지 근육을 최대치로 조여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그러나 3분 뒤, 다시 파도가 들이닥쳤다. 그건 파도가 아니라 쓰나미였다. 배 속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혹시 다른 사람도 들은 게 아닐까 싶어,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에헴!”

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도 떨리고 있었다.

또다시 몰려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얼굴을 타고 흘렀다. 시트에 앉아 있지만 사실상 나는 분만대 위에 앉아 있는 산모와 다름없었다.

‘이제… 이제 애가 나오려 해…’

그다음 파도는 결정적이었다. 갑자기 버스가 노면을 타고 쿵 하고 흔들렸다. 그 순간, 내 방어선이 덜컥 흔들렸다. 나는 무릎을 모으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 자세는 누가 봐도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난 인간이 아니다.

난… 난… 짐승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허파가 아니라 괄약근이 부풀었다. 내 온몸의 신경이 한 지점에 집중됐다.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까지 한 근육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단 말인가.

버스는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 시간은, 지옥 같은 파도의 주기로 잘게 쪼개지고 있었다. 10분마다, 5분마다, 이제는 2분마다. 파도가 점점 더 짧게, 더 무겁게 몰려왔다.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제발… 제발 휴게소여, 빨리 나타나라!’

휴대폰 지도를 보았다.

‘가평휴게소 15km 남음’

나는 순간 환호할 뻔했다.

‘살았다… 이제 곧……’

그러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시속 100km로 달린다 치면 15km는… 약 9분.

9분?

아니, 지금 내 몸에게 9분은 영겁의 시간이었다.

또 밀려왔다. 나는 이를 악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승객들은 나를 외계인을 보듯 흘깃거렸다.

‘그래, 다 봐라. 이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싸움이다.’

나는 스스로와 협상을 시작했다.

‘지금만 버텨라. 조금만… 조금만 더. 휴게소에 가면 네 존엄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내 대장은 냉혹하게 반박했다.

“휴게소? 웃기지 마. 9분은 9년이다. 난 지금 당장 개문한다.”

점점 나를 몰아세우는 심리전이었다. 머릿속에서 상상이 터졌다.

- 화장실 문 앞에 도착했는데 줄이 20명.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그런 악몽은 상상하지 마. 오직 희망만 떠올려.’

그리고 억지로 그림을 그렸다.

- 휴게소 도착, 화장실 문 활짝 열려 있음.

- 안은 텅 비어 있음.

- 에어컨 시원하게 켜져 있음.

그러나 그 달콤한 상상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파도가 몰려왔다. 그 압박은 상상조차 집어삼켰다.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제발!”

그때였다.

창밖 저 멀리, 밤바다 위 등대처럼 환한 불빛이 보였다. 하얀 간판에 굵고 검은 글씨.

‘가평휴게소’

나는 거의 울 뻔했다.

‘왔다… 드디어 왔다…!’

온몸의 땀구멍이 동시에 열렸다. 방금 전까지 지옥 불구덩이 속에 있던 내가, 이제 천국의 문턱에 닿은 기분이었다.

버스 안 스피커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하겠습니다.”

그 말이 내 귀에는 천사의 합창처럼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살았다… 살았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일렀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또 다른 파도가 몰려왔다. 그 압박은 마치 내 몸을 시험하는 듯했다.

“끝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나는 두 손으로 배를 감싸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드디어 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바퀴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추자마자, 내 몸도 동시에 폭발 직전까지 치달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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