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여유
버스 문이 칙- 하고 열리자마자 나는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승객들이 물밀 듯이 내리는 와중에도 나는 몸을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비켜주세요! 인간의 존엄이 달려 있습니다!’
물론 입 밖으로는 못 했지만, 내 눈빛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화장실 간판이 보였다. 네온처럼 빛나는 파란 표지판. 나는 거의 네 발로 기어가듯 달려갔다. 문을 여는 순간, 내 안의 모든 신경이 폭죽처럼 터졌다.
그리고 앉는 순간,
쾅! 쾅! 쾅!
그 소리는 내 귀에는 교향곡이었다. 압박, 고통, 두려움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식은땀이 사라지고, 대신 따뜻한 해방감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살았다… 살아남았다…”
화장실 벽에 붙은 낡은 광고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삶의 여유, 고속도로 휴게소와 함께.”
그 문구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하게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승자다!’
나는 출발하는 버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끝났다… 진짜 끝났다…’
차창 너머로 노을이 번졌다. 붉은 빛이 산등성이를 감쌌고, 바람은 부드럽게 차창을 스쳤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내 안도 평화로웠다.
적어도, 10분 전까지만 해도. 그러나 그 순간-
쿵.
아주 미묘한 울림이 배 속에서 다시 피어올랐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아니겠지? 방금 다 끝났는데?’
하지만 아니다. 그건 분명한 2차 소식이었다. 조금 전까지 지옥의 불을 내뿜던 대장이 다시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더 무겁고, 더 깊었다.
나는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방금 다 끝난 거잖아…’
버스는 이미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이제 휴게소 정차 없이 1시간 넘어 터미널에 도착한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파도는 다시 고개를 들었고, 괄약근은 지쳐 있었다. 첫 번째 전투로 이미 녹초가 된 병사에게,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제발… 제발 이번엔 좀 봐줘라…’
그러나 대장은 냉정하게 속삭였다.
“네가 승자라고?”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목적지까지 1시간? 그건 내게 남은 수명이었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의 비틀거리며 운전석 앞으로 갔다. 목소리는 떨렸고, 눈빛은 간절했다.
“기사님… 죄송합니다… 저… 지금… 갓길에… 세워주셔야 합니다…”
순간 버스 안은 고요해졌다. 모든 승객이 나를 바라봤다. 어떤 이는 연민, 어떤 이는 놀람, 또 어떤 이는 피식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기사는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비상등이 켜지고, 버스는 고속도로 갓길에 멈춰 섰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갔다. 그 순간 내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야생 짐승에 가까웠다. 수풀 속으로 달려드는 발걸음은 절박했고, 손은 이미 허리띠를 풀고 있었다.
그리고……,
노을이 지는 풀숲 한가운데서, 나는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풀벌레 소리가 합창처럼 들렸고, 바람이 땀에 젖은 얼굴을 식혔다. 나는 나무를 붙잡고 속삭였다.
“살았다… 진짜로 살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진리는 부도, 명예도 아니다. 급할 땐, 체면 따위 버리고 수풀로라도 뛰어드는 용기. 그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을까…….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휴지를 가져오지 않은 사실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