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전에 - Part 1

by 물개사랑

바깥은 35도의 무더위.

사무실 에어컨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우-웅.’

준호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진동으로 떨린 핸드폰 화면을 흘깃 보았다.

잠금 화면에 하나의 메시지.

‘오늘 저녁 7시. 한강 다리 끝 벤치에서 기다릴게.

안 오면, 헤어지는 걸로 알게.’

수연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숨이 목에 걸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무언가 놓친 것 같은 기분에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 몇 시지?’

벽시계는 4시 49분.

사무실 건물은 조그만 산 중턱에 있었다.

수연이 말하는 한강 벤치는 이 산을 넘어 반대편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가서 산을 둘러 반대편에서 내려 한강으로 걸어가면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도 마음이 급했다.

5시가 되자 준호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몇 안 되는 직원 모두 우르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지하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빌딩 끝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리고 5층까지 내려오면서 모든 층을 들렸다.

문이 열리자 전단지를 품에 안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준호는 사람들과 함께 4층, 3층, 2층을 들른 후 1층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아직 도로 위에 눌어붙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어제 좀 싸우긴 했지만 오해를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높은 습도와 아스팔트의 열기가 얼굴을 내리쳤다.

10분을 걸어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 버스 한 대가 딱 도착하고 있었다.

준호는 앞 문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려하였다.

없었다.

왼쪽 바지 주머니. 오른쪽. 셔츠. 가방 안. 전부.

‘나올 때까지 분명히 있었는데.’

그는 기사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교통카드가…….”

버스 기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 사람들 기다려요.”

무기력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문을 닫고, 눈앞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준호는 당황한 채 정류장까지 온 길을 되짚어가며 바닥을 눈으로 훑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을 보려고 주머니에게 핸드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화면을 켜기도 전에, 화면이 꺼졌다.

배터리 0%.

핸드폰을 다시 켜보려 했지만, 까맣게 죽은 화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강까지는 걸어서 가기엔 너무 멀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법은 단 하나.

달리는 것뿐.


준호는 몸을 틀었다.

매일 아침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회사로 올라가는 언덕길로.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첫 발을 디딘 순간, 종아리에 쥐가 올라올 것 같았다.

덥고 끈적한 공기.

금세 젖은 셔츠는 등에 들러붙고, 땀방울은 이마에서 눈가로 흘러내렸다.

도로를 따라 오르던 발걸음은 이내 계단으로 옮겨갔다.

오래된 빌라들과 담장이 이어진 좁은 계단길.

구불구불 올라가는 콘크리트 계단.

구불구불 올라가는 돌계단.

때로는 썩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듯한 나무 계단.

하루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뜨거운 여름 햇살이 집 사이로 간간이 비추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숨이 목에서 걸렸다.

가슴은 점점 더 크게 요동쳤다.

‘그냥 내려가서 큰길로 돌아갈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지금 돌아서면 절대 7시를 맞출 수 없다.’

준호는 주먹을 꽉 쥐고 다시 몸을 밀어 올렸다.

위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흠칫 놀랐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점점 더 좁아지는 계단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어디선가 나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이 모든 것이 지금은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계단이 끝날 무렵, 다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숨이 차올라, 폐가 마치 용광로에서 불타는 것 같았다.

목은 마르고, 침은 삼켜지지 않았다.

계단 끝, 언덕 꼭대기에 닿자,

서울 시내가 아래로 펼쳐졌다.

짧지만 깊은 들숨과 날숨.

준호는 그 숨을 삼키고,

언덕 너머로 몸을 던지듯 내달렸다.


언덕을 넘자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높이 솟은 옹벽들, 서로 마주 본 담벼락, 위에서 줄줄 흐르는 에어컨 물.

준호는 그 골목을 미친 듯이 뛰었다.

발소리는 고무신처럼 질척였고, 숨소리는 도로 위를 달리는 낡은 트럭처럼 무겁고 컸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오며 “어이쿠!” 소리를 질렸다.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박차고 튀어나갔다.

바닥은 미끄럽고 축축했다.

비닐봉지, 조각난 유리, 젖은 종이.

준호는 본능처럼 중심을 잡으며, 골목을 가로질렀다.

알고 있었다.

이 골목이 지름길이라는 것을.

지름길은 위험을 동반한다는 것도.

그 순간이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마자,

쿵!

무언가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아야!”

상대방 가슴팍에 있던 양념치킨 종이상자가 두 사람 사이에서 짜부라졌다.

순식간에 셔츠가 양념 범벅이 되었다.

두 사람은 바닥에 나뒹굴고 닭다리 하나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빙글 돌다 준호의 머리에 툭 얹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콜라 캔이 굴러가며 ‘슈우욱’하며 탄산을 뿜어냈다.

비닐봉지는 젖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젊은 여성이 ‘끙’하면서 일어났다.

“아이 씨-! 뭐야?”

허기진 그녀는 집으로 가는 길에 양념치킨 한 조각을 꺼내어 먹으려던 참이었다.

준호는 눈도 제대로 못 맞춘 채,

“정말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허리를 숙였다.

여자는 손에 묻은 양념을 담벼락에 묻히며 말했다.

“원래는 세탁비도 받아야 하는데 내가 마음씨가 좋아서 치킨 값만 받을게요. 2만 원 주세요.”

“제가 지금 현금이 없어서……, 다음에 꼭 드릴게요!

지금은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준호는 다시 허리를 숙였다.

“야!”

여자가 소리쳤다.

“어딜 내빼려고 해? 빨리 돈 내놔!”

“그런데, 지금 몇 시죠?”

준호의 물음에 여자는 얼떨결에 시계를 보았다.

“6시 10분이다. 돈이나 내놔!”

“아이고, 빨리 가야 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소리치는 그녀를 등뒤로 한 채 잽싸게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야! 너 거기 안 서!”

여자는 준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닭다리, 양념, 콜라 냄새가 뒤에서 어지럽게 뒤섞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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