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랄! 올해 노벨 문학상도 그 녀석이라니……”
벌써 3년째였다. 설마 했었는데 올해도 작가 ‘애니’가 유례없이 세 번 연속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면서 함께 발표를 지켜보던 작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두 번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 번이라니… 이젠 끝난 건가요……?”
작년에 첫 번째 책을 출간했던 수빈은 붉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체념한 듯 말했다. 수빈과 함께 각기 취향에 맞는 술을 마시던 작가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기도, 가로젓기도 하였다. 한 세기는 더 된 듯한 느린 재즈가 술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두운 술집의 노랗디노란 조명 아래 술잔은 무엇을 담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수빈은 싸구려 와인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 소주인 양 단숨에 마셔버렸다.
“이제 그만해야겠어요……”
‘아니야! 우린 해낼 거야!’라고 누군가 작년처럼 말해주길 내심 기대했지만 그 기대조차 무겁고 짙은 재즈와 동료들의 침묵 속에 깊숙이 묻혀버렸다.
재작년에 출간된 ‘내 안의 나를 찾아서’라는 소설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 풍부하고 세련된 묘사,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감정 표현, 게다가 지금 바로 내 주변에서 일어날 것 같은 설정.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그 소설은 베스트셀러 중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였고 수개월이 넘도록 어떠한 다른 소설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소설의 작가인 애니가 첫 작품을 성공시킨 지 수개월 후 세상에 내놓은 또 다른 소설 ‘내 안의 너를 찾아서’는 전작을 넘어서는 판매 부수를 기록하였고 마침내 애니는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게 된다. 이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애니는 그다음 해에도 ‘너 안의 나를 찾아서’라는 소설을 출간한다. 전작의 제목에 비추어 볼 때 장난스러운 느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작과 같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애니는 연속으로 두 번의 상을 받는다.
그런데 또다시 애니라니……. 작가들은 그 이름을 듣는 것이 지겹다 못해 짜증이 났고 이제는 두려웠다. AI 때문에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 그들에게도 닥친 똑같은 현실이 두려웠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와 정교한 AI를 사람이 이길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인공지능 애니가 노벨상을 받은 사실보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에서도 AI가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실이 창작 분야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였다. 그동안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소설, 음악, 영화 같은 것은 그럴싸하지만 콕 찍어 말하기 어려운,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창의성이 극도로 요구되는 창작 활동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굳게 믿어왔었다. 하지만, 애니의 소설로 인해 AI가 인간보다 더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창작이란 많은 입력을 조합하여 새로워 보이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뛰어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창작자들, 특히 문학인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부정해야만 했고, 때로는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서점가를 빠르게 잠식해 가면서 인간 작가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자리마저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
“오늘은 제가 전부 살게요! 상금으로 아마 이 가게도 인수할 수 있을걸요?”
수빈은 동료 작가들에게 허풍 아닌 허풍을 떨며 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높이 들었다. 동료들은 어둡고 노란 조명의 술집에 모여 그곳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며 축하해 주었다. 애니의 네 번째 노벨 문학상을 수빈이 저지한 것에 모두 환호하였다.
수빈의 작품은 애니의 작품을 압도하였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 완전히 다른 세계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제야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자신이 왜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든 소설에 빠져 있었는지 스스로,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인간은 바로 이런 창의성 때문에 기계와 확연히 구분된다며 다양한 언론이 연이어 보도하였고 그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였다.
“수빈아, 오늘은 어떤 내용으로 써 줄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일요일 아침에 수빈 남편은 침대에 누운 채 아내에게 속삭인다. 예쁘게 주름이 잔뜩 잡힌 커튼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그들과 침대를 기분 좋게 비춘다.
“이번엔 추리극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과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검은 고양이’를 섞으면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
“그럼! 조금 있다 프로그램 가동하면 오후 정도에 가장 그럴듯한 10개가 추려져 있을 거야. 다양한 줄거리가 동시에 작성되도록 어제 프로그램을 좀 손봤거든. 결과물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돼”
수빈은 사랑스러운 신랑에게 가볍게 입맞춤하고 다음 시상식 때 입을 옷을 상상하며 다시 포근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