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된 것들
카운트다운은 숫자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그림자가 조금씩 또렷해지고 있었다. 형태는 이제 거의 사람이었다.
나였다.
“말도 안 돼……”
나는 장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그림자는 따라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연구실 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당신이 지훈이죠?”
낯선 남자였다. 정장 차림, 차분한 목소리. 그의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시죠?”
“저는 당신 장치의 테스트 사용자입니다.”
그 순간, 내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테스트 사용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이 장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죠. 그래서 더 확신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이 장치는 공개되기 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었거든요.”
그는 내 연구 기록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초기 설계, 실패 로그, 삭제한 파일 이름까지.
“당신은 이 장치를 ‘발명’했다고 생각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이 장치를 완성한 사람입니다.”
그 말에, 장치가 짧게 진동했다.
[기억 동기화 진행 중]
머릿속이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눈앞이 흔들리고, 오래된 장면들이 밀려왔다.
처음 장치를 설계하던 밤.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 나는 흰 방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장치가 아니라, 설문지가 들려 있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당신은 타인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그 대가로, 자신의 선택이 제한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체크했다.
YES
그리고 다음 질문.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게 될지 미리 알고 싶은가?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확신에 차 있었다.
YES
“당신은 자발적인 첫 실험자였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당신은 ‘마음을 보는 장치’가 아니라 ‘선택을 고정하는 장치’의 첫 대상이었어요.”
“그럼 이 장치는……”
“당신이 스스로를 관측하게 만드는 장치죠.
그리고 관측된 마음은, 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나는 거울을 보았다. 그림자는 완전히 나와 겹쳐 있었다.
“그럼 선택지는 뭐지?”
내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첫 번째.
당신은 장치를 세상에 공개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보고, 그 대가로 자유를 잃겠죠.”
“두 번째는?”
“장치를 파괴합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럼 끝나는 거 아닌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장치를 파괴하는 순간, 당신은 사라집니다.”
“뭐라고?”
“당신의 존재는 이미 이 장치에 의해 ‘선택 가능한 상태’에서 ‘확정된 상태’로 이동 중이거든요.”
그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장치를 없애면, 장치가 필요 없는 당신도 함께 없어지는 겁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짧고, 허탈한 웃음.
“그러니까, 처음부터 나는……”
“예.”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장치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장치가 필요하도록 설계된 인간이었죠.”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분기 종료]
[선택 확정]
나는 장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연구실에 없었다 카페였다 맞은편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낯설고도 익숙한 얼굴. 그녀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너는 내 마음을 알아?”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응, 알아.”
“어떻게?”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아주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마음을 볼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어.”
그녀의 머리 위로, 연한 빛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 뒤 유리창에 비친 내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장치는 사람의 마음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음을 ‘볼 필요가 없는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존재가 되어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