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디자인 커리어 폭망인가…

by 솔솔


커리어는 시작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취업 전 어디서 이런 말을 듣기는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이름 없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한창 일하는 중이었다. 내 취직처를 들은 동종업계 사람들은 말했다. 디자인 에이전시? 아… 힘들겠네…, 아…(말잇못). 연일 야근으로 퇴근이 늦을 때마다 타 분야 친구들은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게 일해?


아… 뭔가 잘못됐다. 어떡하지. 나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그렇다면 얼른 이 단추를 풀러야 할까. 그다음 멋진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단추를 봤다. 아뿔싸. 너무 늦었다. 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 취업했을 때가 아니었다. 시각디자인을 선택한 것, UX를 안 배우고 일러스트니 편집이니 하는 것을 한 것, 무엇보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웃거리기만 한 것, 중소기업에 들어간 것. 내가 선택한 옷과 채워간 단추들은 하나 같이 비주류에 속했다. 사람들이 그거 하면 굶어 죽어라고 말하는 것들이었다. 취업은 첫 단추가 아닌 입고 있는 옷 마지막 단추일 뿐이었다.

나는 대학교를 열심히 다니지 않았다. 적당히 점수를 채우며 다녔다. 열심히 준비해 디자인학과에 입학했지만 막상 학과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되고자 입시를 준비했지만 진짜 디자인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타지 생활도 처음, 이렇게 큰 자유가 주어진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누구인가하며 방황하는 데에 시간을 쓴 것 같다.


학과 수업은 학생들이 디자인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을 거라는 전제하에 진행되었다. 나는 디자인이 정확히 뭔지 디자이너는 뭘 하는지 그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아카데믹한 이론 수업과 방과 후 컴퓨터교실 같은 스킬 수업의 간극 속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어영부영 졸업전시를 마치자마자 취업시장에 던져졌다. 취업준비가 뭔지도 몰랐다. 뭘 준비해야 하지. 그렇게 대기업에서 원하는 스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무장해제 상태로 취업시장에 나갔다. 양심상 작은 회사라도 나를 받아주는 곳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첫 커리어를 작은 회사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단추는 좀 잘못 끼웠을지언정 디자이너라는 옷은 잘 골라 입은 것 같았다. 싸구려 소재에 멋진 디자인은 아니라 겉보기에 어수룩해 보여도 내가 편했다. 게다가 딱히 무슨 소재 무슨 디자인을 입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걸 무마하려면 설렁설렁 다닌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할 판이었다. 그냥 이대로 입고 나가자. 지금 옷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데, 옷이나 단추 따위 신경 쓰는 게 뭐 의미가 있나. 약간 모자라고 어긋난 모양새지만 다시 끼우기엔 늦었다. 그냥 이대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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