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작아서 알게 된 것도 있다.

by 솔솔

회사가 작아서 알 수 있었던 것들도 있다.


나는 부모님 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대학교 학비는 부모님이 다 내주었다. 생활비도 받아 썼다. 아르바이트는 사고 싶은 물건이 비쌀 때, 경험이 필요할 때만 했다. 집이 부자였냐고. 절대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인 부모님은 자신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자식 손에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싶어 했다. 나는 거기에 빌어 붙어 편하게 살아온 불효자였다.


작은 회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사회여서 세상눈 어두운 나에게는 세상이 돌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적절한 지표였다. 대기업이라면 나도 모르게 다른 팀에서 알아서 했을 일들도 분담했다. 프로그램 설치부터 재고 관리까지. 별거 아닌 듯 보이는 일들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막상 하면 이게 또 은근히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배웠다. 대표와 직원들 간의 이해관계가 한눈에 보였다. 대부분 옳고 그름 문제가 아닌 입장 차이 문제였다. 문제는 서로가 각자 입장만 내세우기 바쁘다는 것. 연차가 쌓일수록 회사가 어디서 돈을 만들고 유지하는지, 투자와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세부 사항은 몰랐지만 기준이나 흐름은 조금 보였다. 물론 조금 안다고 해서 당장 그 일들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내가 사장님이 될지 또 누가 아나 하는 생각으로 관찰했다. 누군가는 이런 일들을 1-2년 만에 파악하고 떠난다. 나는 세상눈이 원체 없었을뿐더러 뭐 하나를 배우면 시간을 오래 들이는 편이라 4-5년을 한곳에 머물렀다. 그래도 오래 보면 보이는 것들이 또 있다. 객관성을 잃고 좀 더 내부자의 시선에서 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입사한 지 1년도 안 되어 윗 선임들이 줄줄이 퇴사했다. 나는 갑자기 중요 인재가 되어 고속 승진을 했다. 회사에서는 나도 나간다고 할까 봐 염려해 한 처사 중 하나였겠지만 나는 전부터 더 다녀야겠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고로 고속 승진은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내가 한 디자인을 다른 사람 손 안 타고 내 손으로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대신해줄 사람이 없어서였지만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내 앞에 떨어지는 일들을 내가 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이 잘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주어야 하는 경우도 점점 생겨났다. 처음에는 내 똥도 못 치우는 데 남의 똥 간섭하느라 힘들었지만, 어찌저찌 늘긴 늘더라. 다만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예민하고 싹수없이 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는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렇게 서로 치고 치이며 성장했지만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과속은 이제 안 하고 싶다, 는 생각도 해봐야 들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이 또한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작은 회사에서 서로 미워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고마워하기도 하다 보면 정이 안 들 수가 없다. 나는 회사에 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해 관계없이 지내는 가족과 친구들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된 건 아니다. 다만 이 넓은 세상에 한 때 희로애락을 함께 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되고, 멀리서 그들의 다음 스텝을 응원하는 정도다. 나에게는 그 정도가 엄청나게 정든 사이인 것이다.


작아서 알게 된 또 하나. 업무강도 대비 적은 월급 덕분에 나는 내가 이 일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나의 경우 회사가 작은 회사여서보다 업종문제가 더 크지만. 대부분의 작은 회사는 급여와 복지도 작을 수밖에 없다. 복지가 야근 식대 및 택시비 지원뿐이라도 일을 계속했다. 사실 추가 복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업무수행 방식이나 양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지. 많은 회사가 그게 어려우니까 월급이라도 더 주고 복지를 자꾸 늘리는 거겠지.


일을 사랑하면 일 자체가 보상이 된다. 그러다 보면 일이 늘게 되고 성과가 생기고 급여는 자연스럽게 오른다.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듯이 일 자체에 몰입하고 사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니어에게 환경 개선 기회를 주는 회사는 좀처럼 없으니까. 환경을 바꾸지 못하면 나를 바꾸는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할 만큼 이 일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분명 큰 이득이었다.


자, 보라.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가. 이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정신 승리도 승리가 아닌가. 나에게는 작고 별 볼 일 없는 회사로 보여도 누군가에게는 다니고 싶은 회사일 수 있다. 지금의 나로서는 이 정도 되는 회사는 차리지도 못한다. 그만두지도 않으면서 더 좋은 회사에 갈걸, 하고 후회만 하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아깝다. 그만둘 거라면 하루 빨리 그만두고 어차피 다닐 거라면 좋은 점을 생각하면서 다니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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