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깎다, 잎사귀를 키우다.

도심 한가운데서 자라는 중입니다.

by 솔룸


아기의 손톱을 처음 깎을때, 숨 조차 조심스러웠다.

이런 사소한 일이 이렇게나 버겁게 느껴지다니… 아주 진땀을 뺐다.




작은 손에 달린 손톱은 너무나 얇고 연약해 보였다.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손톱깎이는 왜 그렇게 거대하고 날카롭게 보이던지… 한 번의 실수로 행여 크게 다칠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워졌다.



삼십 하고도 다섯 해를 더 살아온 내게
고작 이런 게 위기라니…


결국 아기가 잠이 든 틈을 타 손을 바들바들 떨며 한 조각씩 깎아 내려갔다. 그 순간, 매일 이런 새로운 어려움과 마주하며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IMG_9593.jpg


깎아낸 첫 조각이 바닥으로 톡-하고 떨어졌다.

초승달처럼 작은 손톱 조각. 그걸 보자마자 웃음이 픽- 터져 나왔다.



와, 이거 혹시…
우주에서 가장 작은 쓰레기 아닐까?



그런데 그 조각이 이상하게 특별해 보였다.

그것은 내 아이가 살아 있고, 자라고 있다는 아주 작고 확실한 증거였으니까.



삼사일 지났을까? 손톱이 또 깎아줘야 할 만큼 자라 있었다. '얘는 손톱에 무슨 비료라도 바르나?'라고 농담처럼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놀라웠다. 하루하루 내 아이의 몸이 움직이고, 살아가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증명되고 있는 거니까. 성장이라는 건 이렇게 소리 없이, 그러나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빽빽한 건물들을 뚫고 햇살이 창가에 스며든다.

화분에 심어둔 아랄리아에도 내려앉는다.

초록빛이 반짝인다.



손톱을 깎다가 문든 식물을 바라보곤 '이것도 자라고 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는 생명. 작은 손톱과 잎사귀가 겹쳐 보이며 마음 한켠이 잔잔해진다.



사실 도시에 살다 보면 자연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초록빛은 따로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나거나 시골에 가서나 마주하는 특별한 풍경처럼 느껴지곤 하니까.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작은 창가 잎사귀 한 장에도, 매일 깎아내는 아기의 손톱에도 자연이 있었다.

우리의 손끝에, 발밑에, 그리고 숨결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던 자연은, 마치 톡 깎여 바닥에 떨어진 손톱 조각처럼 어느 순간 툭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IMG_5582.JPG


그럼에도 돌아서면 자라 있는 아기의 손톱을 깎는 일은 때로는 의무처럼 느껴진다. 육아는 몸도 마음도 지치는 일이니까. 그런데 작은 손톱과 화분이 이상하게도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 둘이 내게 가르쳐준다는 사실이 웃겼지만, 마음의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너무 빠른 변화를 바라거나, 거창한 성공만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것도 너무 자주. 그런데 이 작은 존재들이 조용히 말해준 것이다.



천천히 해, 그래도 괜찮아.
중요한 건 매일 조금씩 자라는 거야.



DO01000909.jpg


도심의 회색빛 속에서도 자연이 보여주는 성장은 단순하고도 분명하다.



작은 존재들이 내 마음의 속도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바꿔놓는다. 그래서 나도 거창하기보다는 손톱만큼 작더라도 꾸준한 변화라도 만들어보자고 다짐한다. 하루 한 잔 물 더 마시기, 15분 스트레칭하기, 자기 5분 전에는 핸드폰을 내려두고 명상하기 와 같은 사소한 것들 말이다. 물론 여전히 잊어버리기도 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발견하곤 하지만…



그래서 오늘도 자란 아기의 손톱을 깎으며 다시 다짐한다. 나무가 하루아침에 열 배로 자라지 않고, 꽃이 하룻밤 사이에 만개하지 않듯,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하지만 결국엔 자란다는 걸.



도시의 회색빛 속에서도 초록빛으로 물들어갈 우리의 삶을 상상한다. 손톱이나 작은 잎사귀처럼, 도심 속에서도 우리는 조용히 자라날 수 있다. 당신도 손톱만 한 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창가에 작은 화분을 놓아보거나, 도시 속에서 자연의 숨결을 찾아보는 아주 작은 첫걸음 같은 것들. 그 변화가 언젠가는 삶을 더 푸르고 온화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손톱처럼, 잎사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