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이기지 않아도 자란다
인스타그램에 바질 이야기를 올렸다. 봄학기 개강을 앞두고, 문화센터 원데이 클래스 안내를 겸해 가볍게 쓴 글과 영상이었다.
'바질을 종류별로 몇 개 심어두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 화분 안이 금세 빽빽해졌다. 공간을 봤을 때 네 개가 들어갈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 개라고 여겼다. 그런데 영상을 찍다 보니 잎 사이로 줄기 하나가 더 보였고, 세어보니 네 개였다'
놀라는 내 반응이 그대로 영상에 담겼고, 그 장면이 생각보다 재밌게 남았다. 이렇게 베란다 부농이 되고 싶은 분들 함께하자는 일상적인 피드 글이었다.
그 글 아래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바질은 교잡이 잘되지 않나요?'라는, 맞는 말이다.
그래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이라면, 각기 다른 바질 품종을 섞어서 심지 않는다.
가볍게 답을 남겼다.
'다닥다닥 심어둔 데다 꽃까지 피어버려서, 이미 니가 내가 되고 내가 니가 된 상태예요'라고.
웃자고 한 말이었고, 그 정도로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진 대댓글의 결은 조금 달랐다.
바질은 교잡이 잘되는 게 기본 아니냐, 의도한 게 아니라면 모르는 것 같다는 말, 그래서 당신이 홍보하는 클래스의 수업은 신청해서 듣고 싶지 않다는 끝맺음이었다.
문장이 길지는 않았는데, 읽고 나니 마음이 먼저 멈췄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 그러니까, 설명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맞서고 싶지 않았다.
툭, 하고 던져지는 돌멩이 같은 말을
하나 더 받은 그런 날이었다.
억울함을 누르고, 베란다로 나가 바질을 만졌다. 잎을 스치며 손에 남은 향을 맡았다. 바질 향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 향을 맡는 동안 방금 읽었던 말들이 조금 뒤로 물러났다. 바질향이 묻은 손으로 대댓글을 달았다. ' 수업은 안 들으셔도 괜찮지만, 싱그러운 날들은 되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논쟁 대신, 이 허브 향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날은 이게 더 맞는 말 같았다.
오늘도 바질은 잘 자라고 있다. 교잡이 되었든 아니든. 그 사실보다 오래 남은 건 그날의 공기였다. 손에 남은 향 하나로 지나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