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호밀 흐라발 / 문학동네
몸에서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6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 때가 있다.
오늘 리뷰할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그랬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보통 고요한 상태를 떠올리게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시끄러운'이라는 형용사와 결합하면서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 아이러니한 조합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보후밀 흐라발은 프란치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체코의 국민 작가'로 불린다.
프라하 카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나치의 점령으로 대학이 폐쇄되면서 생계를 위해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으며 마흔아홉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봄' 이후 검열과 감시가 심해지면서 많은 작가들이 망명을 선택했지만 그는 조국에 남아 체코어로 창작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은 체코의 역사적 현실과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그려내며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97년, 그는 프라하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창가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다 5층에서 추락해 생을 마감했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9
바퀴벌레와 파리 떼가 들끓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35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해온 주인공 한탸.
그는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의 장서부터 철학, 문학, 미술 서적까지 수많은 책을 폐기하면서도 그 속에서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고 보석 같은 문장을 흡수한다.
책을 통해 지식을 쌓고 사색하지만 동시에 책을 파괴하는 일을 하며 스스로 자신을 '상냥한 도살자'라고 여긴다.
그의 내면은 '고요한 고독'이 아니라 끊임없이 웅성거리는 문장과 사상으로 가득 찬 '너무 시끄러운 고독' 그 자체다.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6
한탸에게 악취가 나는 지하실은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는 폐지를 압축하는 동안 폐지 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모아 아름다운 꾸러미를 만든다
그렇게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요로움을 경험하며 지하실은 더 이상 단순한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세계가 된다.
나는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유리벽 너머로 트럭들이 손 때 묻지 않은 새 책들을 쏟아 놓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 책들은 어느 누구의 눈이나 마음, 머리도 오염시키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90
5년 후, 자신의 폐지 압축기와 함께 퇴직하길 바라던 한탸.
버려진 책들을 모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려놓은 꾸러미를 집안 가득 쌓아두며 언젠가 전시하는 꿈을 품고 있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는 자신의 낡은 압축기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종이 더미를 압축하는 새로운 기계를 마주한다.
그 기계는 손끝의 감각도, 책의 향기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무심하게 책을 집어삼키며 기계적으로 종이를 압축할 뿐이었다.
굴욕감에 잔뜩 긴장한 나는 뼛속 깊이 퍼뜩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새로운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더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자
대거 자살을 감행한 그 모든 수도사들처럼.
그때까지 삶을 지탱해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그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거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06
기계의 효율성은 노동자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선사하고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한탸는 점점 변질되고 소외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결코 그 흐름에 동화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책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설자리를 잃어버렸음을 절감한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책들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는 압축기 속으로 몸을 맡긴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0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130여 페이지로 비교적 짧은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뚜렷한 스토리 없이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대로 전개되는 작품이어서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첫 몇 페이지는 여러 번 다시 읽어야만 했고 어렵게 읽히는 만큼 천천히 음미하며 읽다 보니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책과 함께하는 고독, 지식과 현실의 충돌, 그리고 존재의 아이러니가 뒤섞인 문장들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실수로 그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니까.
(중략)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91
한탸는 수많은 책들을 폐기하면서도 그의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책 속에서 진리를 찾고 환희를 느끼며 뜻하지 않게 현자가 되었지만 정작 인생의 걸림돌 앞에서는 무력했다.
반면, 한탸의 연인이던 만차는 책을 혐오하며 현실적인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어 나갔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여러 남자들을 이용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집을 완성한다.
한탸가 이상과 사색 속에서 살아갔다면 만차는 현실과 계산속에서 살아갔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한탸와 세상풍조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만차.
그들의 삶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서 쉴 새 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04
한탸는 모든 오욕을 말끔히 씻어낸 듯한 만차의 모습에 자신의 무력한 모습을 투영하며 망연자실해한다.
그들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책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만차의 정원 한쪽에는 그녀를 닮은 천사의 형상을 한 석상 서 있다.
그러나 돌로 만들어진 날개로는 날아오를 수 없다.
흐라발은 책을 통한 깨달음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성취 또한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끝내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어린 여자.
집시 여자가 밑에서 보내는 메시지 하나가 연줄을 타고 올라간다.
메시지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며 전진해 마침내 나와 닿을 거리에 이른다.
나는 손을 내민다······ 어린아이가 쓴 듯한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일로카. 그렇다, 이젠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32
한탸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남은 것은 지식도 사상도 아니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었다.
지식과 깨달음은 그의 내면을 끊임없이 소란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순간을 온전히 채운 것은 '일론카'라는 그 이름이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너무 시끄러운 고독 p.85~86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한탸의 긴 인생의 여정 끝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책도, 사상도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흐라발은 한탸의 삶을 통해 사랑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가치이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p.18
보후밀 흐라발은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라고 선언할 만큼 그의 삶과 철학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아냈다.
검열과 억압이 만연한 시대에도 묵묵히 글을 써 온 흐라발은 소외된 사회 속에서 책을 탐미하는 한탸를 통해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자신의 작가적 신념을 드러낸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