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 조지오웰 / 민음사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동물농장 p.135
최근 불거진 정치적 이슈들로 인해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다시 꺼내 들었다.
어릴 적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저 동물들이 주인공인 우화쯤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은 『동물 농장』은 더 이상 귀여운 동물들의 소동으로 읽히지 않는다.
오웰의 풍자와 비판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정권을 잡은 대통령 그리고 끊이지 않는 논란들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혁명을 외치며 권력을 잡은 돼지 나폴레옹과 그의 동물 정부가 떠올랐다.
1945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씁쓸하다.
오웰의 또 다른 소설 『1984』에서는 빅 브라더의 감시 아래 개인의 사생활과 사고는 철저히 통제되는 사회를 그린다.
권력이 완전히 승리한 사회 그곳은 인간의 정신까지 장악된 디스토피아였다.
또 그가 직접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담은 『카날로니아 찬가』에서는 오웰은 처음에는 이상적인 사회주의에 감동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부의 권력 투쟁과 정치적 배신, 감시와 숙청을 목격하며 점차 환멸 느낀다.
그는 정치적 글쓰기를 통해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었고 그의 통찰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오웰은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라는 신념 아래 글을 썼다.
그날 밤, 메너 농장의 존스 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 닭장 문을 걸어 잠그기까진 했으나 술에 너무 취해 닭장의 작은 구멍을 닫는 일은 잊어버렸다.
그가 갈지자걸음으로 마당을 건너가는 동안 그의 손에 들린 등불의 둥근 불빛도 좌우로 크게 출렁거렸다.
동물농장 p.7
사람들은 언제 변화와 개혁을 꿈꿀까?
아마도 지금의 삶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당하게 느껴질 때일 것이다.
톱니바퀴처럼 단단히 맞물린 체제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체제가 너무 거대해 자신이 하나의 톱니에 불과하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하나의 톱니가 삐걱거리기 시작하면 그 미세한 마찰음이 체제 전체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제야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때부터 침묵은 목소리가 되고 목소리는 요구가 되며 요구는 결국 변화를 향한 걸음이 된다.
『동물 농장』의 시작도 그랬다.
농장의 주인인 존슨 씨는 자신의 책임을 잊고 술에 취해 농장을 방치했고 그 여파는 농장을 돌보던 일꾼들을 거쳐 동물들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동물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동물 농장 p.128
돼지 메이저 영감은 죽기 전 인간이 모든 착취의 근원이라며 그들을 몰아내고 동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다.
그의 주장은 곧 현실이 되고 존스는 쫓겨나며 농장에는 동물주의라는 새로운 '7 계명'이 세워진다.
모두가 평등하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이상적인 사회'가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이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그 평등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돼지들이 점차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하며 농장의 규칙들은 은밀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변해간다.
처음엔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라는 규칙이
"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로 바뀐다.
결국에는 가장 근본적인 계명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뒤바뀐다.
"나폴레옹 동무가 옳다고 하면 옳은 거야."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내가 더 열심히 한다."라는 개인 모토 외에 "나폴 레옹은 언제나 옳다."라는 격률을 하나 더 채택했다.
동물농장 p.59
『동물농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존재는 단연 성실하고 충직한 말 복서였다.
그는 언제나 "내가 더 열심히 한다" 말하며 묵묵히 체제를 지탱해 온 충직한 노동자였다.
그도 처음에는 의심하고 질문했지만 곧 침묵했고 결국 무관심해졌다.
"나폴레옹 동무가 옳다고 하면 옳은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던 그는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라는 격률까지 더하며 점점 깊은 충성과 복종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복서에게 돌아온 것은 헌신에 대한 보답이 아닌 철저한 배신이었다.
병들어 쓰러진 그를 돕겠다던 약속은 거짓이었고 그가 향한 곳은 치료소가 아닌 폐마 도축업자에게 가는 길이었다.
가장 충실했던 그는 결국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복서의 순응과 침묵은 의심과 두려움을 덮었지만 그 조용한 복종은 결국 독재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동무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댕기라는 건 바로 노예의 표시요.
댕기보다 자유가 더 값지다는 걸 모른단 말이오?"
몰리는 그 말에 동의했지만 내심 아주 완전히 납득한 눈치는 아니었다.
동물 농장 p.21
동물농장의 또 다른 존재인 몰리는 동물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그는 "댕기보다 자유가 더 값지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온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농장을 떠난다.
귀리와 건초보다 설탕을 노동보다 장식 리본을 사랑했던 몰리는 결국 인간의 품으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몰리의 선택을 향락이나 이기심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개인의 욕망과 개성을 억압하는 방식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몰리 또한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복종에 불과했다.
오웰은 복서와 몰리라는 상반된 두 캐릭터를 통해 체제를 떠받치는 이들과 무관심 속에서 이탈하는 이들을 함께 그려내면서 권력에 의해 짓눌린 개인의 운명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유일한 동물은 당나귀 벤저민이었다.
그는 식량이 풍부해질 거미라는 주장도 풍차가 있건 없게 삶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쁘게 굴러가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동물 농장 p.53
유일하게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당나귀 벤저민
그의 냉소는 곧 체제에 대한 깊은 불신이었다.
사실 나 또한 오랫동안 그랬다.
선거철이 올 때마다 누가 당선이 되든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정치인들이 서로를 죽일 듯이 물어뜯다가도 서로의 이익이 맞닿으면 금세 손을 잡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며 정치란 결국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쁜 정치를 겪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대통령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정치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정치는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현실이었다.
맹자는 말했다.
"최고의 정치란 백성들이 정치의 존재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나 윤 대통령의 취임 이후 정치는 오히려 더 깊숙이 우리 일상에 침투했고 정치적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농장 주인 존스를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을 꿈꾸며 혁명을 일으킨 동물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이상향은 무너지고 결국 동물들이 꿈꿨던 사회는 또 다른 독재 체제 아래 놓인다.
우리는 이제 나쁜 정치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지금부터다.
지속 가능한 변화는 깨어 있는 시민의 끊임없는 참여 속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내야 할 우리의 몫이다.
『동물농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그 변화를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