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셔널 / 애슐리 워드 / 상상스퀘어
감각은 우리 내면의 자아와 바깥세상 사이의 접점이다.
위대한 예술에서 자연의 웅장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아름다움을 지각하게 해 주고, 얼음물 한 잔의 시원함, 쾌활한 웃음소리, 사랑하는 이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한마디로 말해 감각은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부여한다.
센세이셔널 p.27
나는 음식에 관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한 편이다.
맛이나 냄새에 민감하고 또 소식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종종 "까다롭다"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 반응이 부담스러워서 나름대로 잘 먹어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참고 먹는다는 건 고역스럽다.
그래서인지 식사 모임은 때때로 피곤한 일이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리 유난스러운 걸까" 하고 스스로를 타박하게 된다.
서로 다른 감각의 종은 자기만의 고유한 환경 세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개는 인간이 눈치채지 못하는 온갖 냄새와 소리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환경 세계와 개의 환경 세계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우리와 개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주변 환경을 경험한다.
센세이셔널 p.388
그런데『센세이셔널』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책에서는 '슈퍼미각자'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사람마다 미각의 민감도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우리가 타고난 '맛봉오리'의 수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맛봉오리의 수가 육식동물보다 초식동물에게 훨씬 많다는 것이다.
초식동물은 식물 속에 들어 있을지 모를 독성 물질을 감지하기 위해 더 섬세한 미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육식 포유류와 초식 포유류의 중간쯤에 해당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슈퍼미각자'와 '무미각자' 사이에는 맛봉오리 수가 최대 4배까지 차이 날 수 있다고 한다.
감각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심오한 영향을 준다.
센세이셔널 p.74
이처럼 타고난 감각의 차이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맛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더 예민하게 맛을 느끼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슈퍼미각자'는 강한 쓴맛, 매운맛, 지방의 질감 등에 쉽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때로는 일상적인 식사조차도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무미각자'는 미각이 둔한 편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데 맵고 짜고 단 음식, 지방이 많은 음식에 끌리기 쉽고 이런 식습관은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무미각자들'은 '슈퍼미각자'들보다 체중이 더 많이 나가며 알코올 중독에도 빠질 위험도 높다고 한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이 왜 내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특별한 감각을 가진 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이 단순한 깨달음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컸다.
내 감각이 '까다로움'이 아니라 그저 '다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순간,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조금 더 넓어진다.
감각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지 않을까.
"노란 높은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빈센트 반고흐
얼마 전 '반 고흐전'에 다녀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시장에서 나는 유독 '노란 집'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그림만 보면 그저 평범한 거리의 풍경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앞에 선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아마도 아를의 노란 집에서 보냈던 고흐의 일상과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란 집을 그렸는지가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과 함께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설렘,
그 기대가 무너지고 관계가 뒤틀려 가던 시간들,
그리고 결국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혼자 남게 된 기억들.
그 모든 감정이 노란 집 아래 겹겹이 쌓여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에게 음에서 저마다의 색깔이 느껴진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고흐가 미쳤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았다.
센세이셔널 p.386
고흐는 '공감각자'였다고 한다.
'공감각자'는 소리나 색, 감정 등 서로 다른 감각을 하나로 겹쳐서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예전엔 고흐가 노란색에 유난히 집착을 했던 이유가 '황시증'이라는 질병 때문이라고만 생각했고 그저 눈의 문제로 여겼다.
하지만 『센세이셔널』을 통해 감각의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서 그에게 노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빛은 그에게는 소리이자 감정이었고 삶의 온도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연구에서 인간이 다양한 동물이 내는 울음소리의 맥락을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 조사했더니, 인간은 고통 속에 있는 동물이 내는 소리를 아주 잘 가려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계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 신호가 있다면 비명일 것이다.
센세이셔널 p.102
고흐가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에게 "음에서 색이 느껴진다"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고흐가 미쳤다며 가르침을 중단했다는 일화처럼 그의 감각은 쉽게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외면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감각은 단지 오감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까지 포함하는 것 같다.
고흐의 '노란 집' 앞에서 울컥했던 것도 그의 처절한 삶을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오감을 넘어 '마음'이라는 감각이 더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나와 다른 존재들을 조금 더 깊고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책을 통해 얻은 작은 깨달음이 나 자신을 알고 또 나와 다른 이들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조금씩 더 부드러워진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다름 속에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결국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