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짓는 월든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더스토리

by 솔솔부는 책바람

아, 이들의 색깔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그로부터 한 주 한 주 지나는 동안, 나무들은 서서히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호수의 거울처럼 매끄러운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한껏 뽐냈다.

매일 아침, 이 화랑의 주인은 벽에 걸린 오래된 그림을 떼고 훨씬 선명하고 조화로운 색채를 담은 새 그림을 내다 걸었다.


월든 p.358


매년 이맘때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찾는 곳이 있다.

철마다 보약을 챙겨 먹듯, 나는 그곳에서 계절의 숨결을 들이마시며 마음의 쉼을 얻는다.

'나만의 월든' 같은 공간이다.


자연림에 둘러싸인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앉아 책을 읽거나,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와 그 끝에 매달린 잎사귀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마음이 서서히 고요해진다.

도심의 매미 소리는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 소란스럽게 들리지만 이곳의 매미 소리는 다른 곤충들과도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일부처럼 스며든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자!

부디 바라건대, 할 일을 백 가지 천 가지로 늘리지 말고, 두세 개로 줄이자.

(중략)

왜 우리는 이처럼 바쁘게 삶을 낭비하며 살아갈까?


월든 p.135~138


몇 해 전,

직장 일로 머리가 복잡하던 시기 처음으로 편두통이 찾아왔다.

약도 듣지 않던 통증이 이곳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맑은 공기와 나무들 사이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현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특이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이 건네는 위로를 몸으로 겪고 나니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건 의도한 대로, 삶의 정수만을 직면하며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랬을 때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고,

죽음이 닥쳤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깊이 있게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가길 바랐다.


월든 p.134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몇 번이나 완독을 시도했지만 매번 쉽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새벽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으며 소로가 그려낸 숲과 호숫가의 풍경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그 풍경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그곳엔 자발적인 고독과 치열한 사유의 시간이 깃들어 있었다.

소로의 삶은 내가 막연히 그려왔던 느긋하고 평온한 일상과는 사뭇 달랐다.

월든 호숫가 숲속에 자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삶을 실험했던 그는 자연에 기대기보다 그 안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삶이란, 아직은 내가 거의 시도조차 해 보지 않은 하나의 실험이다.


월든 p.17


소로는 은둔자가 아니었다.

자발적 고립 속에서 노동과 사색을 통해 진정한 자립과 자유를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의 2년 2개월의 기록을 따라가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꿈꿨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어쩌면 주체적인 선택이라기보다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듯 자연에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나는 닭을 기르지 않기에, 닭을 노리는 매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인간을 노리는 인간은 좀 무섭다.


월든 p.228


소로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며 자연 속의 노동을 통해 삶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시민 불복종』에서 그는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를 지지하는 정부에 세금을 낸다는 것은 침묵 속의 동조라며 법보다 양심이 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의 요구에 단호하게 질문을 던진 그의 저항에는 흔들림 없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소로는 '도망'이 아닌 '깨어 있음'을 택한 사람이었다.







날씨와 상관없이, 밤낮 어느 시간이든 개의치 않고, 나는 주어진 시점을 최대한 살아가려 했고,

그것을 지팡이에도 새겼다.

또한 과거와 미래라는 지점인 현재에 정확히 발붙이고 서 있으려 애썼다.


월든 p.27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란,

그저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사유하고 단단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월든』 속 소로를 통해 배운다.



나는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 수는 없지만 도심 속 일상에서도 나만의 월든을 지어가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잠시 자연에 머물며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나만의 월든은 어딘가의 숲이 아니라 내 안에 만들어가야 할 한 조각의 고요함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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