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건...

무소유 / 법정 / 범우사

by 솔솔부는 책바람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무소유 p.24


어떤 물건은 잊혔던 기억을 소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1976년에 발간된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내게 아련한 기억을 품은 첫사랑 같은 책이다.

최근에 그 책을 다시 손에 넣게 되었다.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 설렘이 가득했다.

마치 오래전 친구와 재회를 앞둔 사람처럼.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중의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중략)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절 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무소유 p. 45


『무소유』를 떠올릴 때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같은 반이었던 S가 생각난다.

S와 나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늘 조용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친구였고 누구와 가까웠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S를 떠올리면 마치 뿌연 안갯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저 같은 반 친구로 무심히 지냈을 뿐 졸업과 함께 인연이 끊어졌다.

어떻게인지 다시 연락이 닿았지만 그 과정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그러던 어느 날, S는 내게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 책이 바로 『무소유』였다.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무소유 p,53


20대의 나는 그 책을 읽고 좋은 어른에게 삶의 지혜와 가르침을 선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에게 소개도 하고 S에게 받은 책을 다른 친구들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그러다 당시 기자 시험을 준비하던 J라는 친구에게 책을 빌려주었는데 이후 연락이 끊기고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그땐 '뭐, 다시 사면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다시'는 3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찾아왔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뜻에 따라 2010년 12월 이후 『무소유』는 절판되었고 서점에서 만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러자 중고 책값은 치솟았고 초판본은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려놓음과 비움이 담긴 『무소유』를 어떻게든 '소유'하려는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있고 난 뒤 나는 중고서점에 들를 때면 습관처럼 『무소유』를 찾아보곤 했다.

가끔은 인터넷에서 시세도 확인하기도 했지만 이미 몇 배로 오른 가격 앞에서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올해 새 온독 하반기 선정도서 목록에 『무소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예전보다 가격이 많이 내려가 있었고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짊어진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이웃의 기쁨과 아픔에 대해 나누어 가질 책임이 있다.


무소유 p.92


그리고 책을 받아 든 순간 깨달았다.

내가 원했던 건 『무소유』라는 책 그 자체가 아니라 S가 나를 떠올리며 보내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스님의 가르침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었지만 정작 내가 품고 싶었던 것은 그 시절 내 손에 머물던 한 사람의 흔적이었다.

다시 손에 넣은 『무소유』는 분명 같은 책이었지만 결코 같은 책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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