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 바빌론의 탑 / 테드 창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당신의 인생 이야기 / 네 인생 이야기 /p.230
반백년을 살아온 나는 요즘 아이들 말로 '금사빠'다.
이 나이에 무슨 '금사빠'냐 싶지만 사실이다.
좋은 책을 읽으면 곧바로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그의 삶의 궤적까지 뒤적이며 한동안 '작가 앓이'를 한다.
그러다 또 다른 작가를 만나면 그 마음은 금세 옮겨가고 나는 다시 설레는 '금사빠'가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에는 중국 작가 '위화'가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만계 미국인 작가 '테드 창'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SF 작가답게 과학적 상상력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자유의지와 신의 섭리, 그리고 그 사이에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 속에 담아낸다.
그래서 그의 책은 단순히 읽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읽은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사유하게 만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과학적 지식이 짧은 내가 과연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매번 망설여졌다.
그러던 중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벽 독서모임을 한 달간 쉬면서 그간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읽을지 몰라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장 5~9
이 책은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바빌론의 탑』은 성경 속 바벨탑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늘에 닿아 스스로 이름을 내고자 교만하게 탑을 쌓자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흩으신다.
모태신앙인 내게 바벨탑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인간의 언어가 하나였는데 바벨탑 사건 이후 여러 언어가 생겼다는 사실이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하나님이 심술부리듯 사람들을 심판하신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내게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목적을 위해 일해온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현명하게 판단했다는 보장이 있을까? 인간이 자기 몸을 빚어낸 대지를 떠나 살아가려고 선택한 것이 정말 올바른 길이었을까?
야훼는 한 번도 이 선택이 옳았다고 한 적이 없어. 그리고 지금 우리는 머리 위에 물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늘에 구멍을 뚫으려 하고 있어. 만약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야훼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당신의 이야기/ 바빌론의 탑 p.39
성경과는 달리 '테드 창'의 소설 속에서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수 세기 동안 탑을 쌓는다.
마침내 그 소망은 드디어 이루어질 듯 보였고, 하늘과 맞닿은 천장을 뚫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작업에 동원된 광부 힐라룸은 천장을 뚫던 중 급류에 휘말린다.
사투 끝에 살아남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사막 한가운데였다.
그제야 그는 깨닫는다.
아무리 인간이 노력해도 하늘에 닿을 수 없으며 결국 모든 것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는 것을.
힐라룸은 이 사실을 탑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하고 소설은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
몇십 세기에 걸쳐 역사한다고 해도 인간은 천지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통해, 인간은 야훼의 업적에 깃든 상상을 초월한 예술성을 일별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절묘하게 건설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세계를 통해 야훼의 업적은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 바빌론의 탑 p.51
사람들은 과연 힐라룸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믿으려 할까?
깨달음은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는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스스로 부딪히고 넘어져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벨탑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돈이나 명예 혹은 자녀까지도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나만의 바벨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붙잡고 있는 헛된 욕망을 아시기에, 마치 자식의 잘못을 꾸짖는 부모처럼 그 집착을 무너뜨리신다.
그 속에는 단순한 심판만이 아닌, 깊은 사랑과 인애가 담겨 있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신과 인간이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거리는 결코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 맞닿아 있으며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의 삶 속에서 경험한다.
그렇기에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은 예배당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작은 선택까지도 예배가 될 때 신앙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래서 오늘도 바벨탑을 쌓고 있는 내게,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길 바라며,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당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