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수용소를 건너는 방식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 청아출판사

by 솔솔부는 책바람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p.108


책은 읽는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예전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을 때는 시련을 이겨내는 자기 계발서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고된 일상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택할 것인가를 묻는 철학서로 읽힌다.

책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추며 매번 다른 질문을 건넨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읽다 보면 어느새 오래전 읽었던 다른 책들로 이어진다.

그 순간 이야기는 더 이상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간에 읽었던 문장들이 연결되며 이해는 깊어지고 감상은 넓어진다.

그렇게 내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자리 잡는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홀로코스트의 기록인 프리모 레비의『이것이 인간인가』 와 솔제니친의『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그리고 레오 리오니의『프레드릭』 ,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까지 내 안으로 소환해 냈다.

형식도 분위기도 다르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 질문이 흐른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참혹한 시간을 견뎌냈다.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에게 마지막 선택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태도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용소에서 오래 버틴 사람들은 체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붙든 사람들이었다.

그 차이는 몸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다.

그들은 가혹한 현실에 잠식되지 않고 내적 풍요와 영적인 자유를 붙드는 힘으로 자신을 지켜냈던 것이다.



어둠 속 진흙탕을 걸으며 아내의 미소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났던 프랭클의 모습에서 나는 프레드릭이 생각났다.

모두가 겨울을 대비해 곡식을 모을 때 프레드릭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이 깊어져 먹을 것이 바닥났을 때 프레드릭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른 들쥐들을 추위와 배고픔 너머의 세계로 이끈다.



프랭클의 '내적 풍요로움'과 프레드릭의 '햇살'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통과하게 하는 힘이다.

외부의 조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엇을 붙들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은 평소 마음에 쌓아둔 것에 달려 있다.




인간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p.118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과거의 상처에 머무르기보다 도달하고 싶은 '평범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먼저 기억하라고 말한다.

프랭클이 수용소를 벗어나 강단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듯 미래의 한 장면을 마음에 그려두는 일은 오늘을 견디는 힘이 된다.

물론 참혹한 현실 속에서 누구나 건강한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어떤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종종 타인에게서 배운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p.195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슈호프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며 인간다움의 기준을 발견한다.

타인의 태도는 또 다른 누군가의 기준이 된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랬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독서모임 선배님들의 태도는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 기억은 일상에서 흔들리는 순간마다 나를 다시 세워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수용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 피할 수 없는 책임, 쉽게 달라지지 않는 환경.

그 안에서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이다.



나는 일이 견딜 수 없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기도를 한다.

현실은 그대로지만 그 시간을 건너는 방식은 달라진다.

지루함은 더 이상 무의미한 공백이 아니라 내면을 단단히 다지는 고요한 시간이 된다.



삶의 조건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찾는 것.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대신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

우리가 마음속에 모아 두어야 할 햇살은 아주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는 '태도'이다.

그 '태도'가 우리를 겨울 밖으로 걸어 나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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