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시간

문맹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어제 / 아고타 크리스토프

by 솔솔부는 책바람

"아무도 이런 전쟁을 원하지 않았어. 아무도, 아무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p.106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작가와 동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책장을 넘기며 그 시대의 소용돌이 속을 함께 걷는 일이다.

타인의 시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동안 내가 절대적이라 믿었던 기준들은 여지없이 흔들린다.

이 책이 그랬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만 책에 홀려버렸다.

새벽녘까지 책장을 넘겼고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다시 책을 펼쳤다.

완독 후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 밀려왔다.

무엇이 진실인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일은 늘 망설여졌다.

지인에게 선물했다가 내 기대와 다른 혹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상식 밖의 행동들과 불편한 성적 묘사는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가린 채 그저 '불편한 책'으로만 남아버린 듯했다.

내가 느낀 전율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잔혹함일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문맹』을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이 책은 언어를 잃고도 끝내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인간의 기록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4개월 된 딸을 품에 안고 남편과 함께 눈 덮인 숲을 지나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녀의 가방에는 아기 용품 몇 가지와 사전 한 권뿐이었다.




스물한 살의 나이로 스위스에,

그중에서도 전적으로 우연히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완벽한 미지의 언어와 맞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이 언어를 정복하려는 나의 전투, 내 평생 동안 지속될 길고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한 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프랑스어 또한 적의 언어라고 부른다.

내가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이 가장 심각한 이유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맹 p.52~53


모국어를 잃은 채 프랑스어로 글을 써야 했던 그 시간의 고통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이 소설의 차가운 서사가 다르게 읽히리라 기대했다.



그동안 나는 이 작품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려 애쓰며 읽었다.

쌍둥이는 정말 존재했는가.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각각 독립된 인격인지, 하나의 자아인지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여섯 번을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 소설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질문만이 남았다.



"무엇이 너를 살아남게 했는가."


거짓처럼 보이는 서사가 한 인간을 지탱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 쌍둥이는 스스로를 단련하며 비밀 노트에 사실만을 기록한다.

과거의 온기를 그리워해서는 현재를 견딜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감정을 거세한 채 오직 생존에만 몰두한다

그런 그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동정도 연민도 아닌 그 사람에게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을 것과 모포를 가지고 그에게로 다시 가자, 그는 말했다.

"너희는 정말 친절하구나."

우리는 말했다.

"우리는 친절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다만 아저씨에게 너무나 필요한 것들이니까 가져다주는 거죠. 그뿐이에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p.49


선의에는 마땅히 따뜻함이 따라야 한다고 믿었던 내게 그들이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2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갓 아이를 출산한 새내기 엄마였던 나는 온라인에서 한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부모가 만든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고 채팅방에 조심스레 인사를 남겼다.

하지만 아무 답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대화가 오가던 공간이었는데 내 인사는 아무런 응답 없이 공중에 멈춰 있었다.

서운함보다 당혹감이 앞섰다.

후원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자 그제야 대화가 이어졌다.



그 짧은 정적은 예상치 못한 무게로 오래도록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도움의 공간은 환대와 연대가 흐르는 따뜻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오직 '필요'만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믿어왔던 풍경이 조용히 깨졌다.



남편과 나는 20년 넘게 여러 단체에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 내게 기부는 안타까움의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금 당장의 '필요'이기 때문이다.

필요를 인식하는 순간 마음이 소란스럽지 않아도 행동은 또렷해진다.

20년 넘게 묵묵히 빠져나가는 자동이체처럼 무심할지언정 누군가의 빵과 모포가 제때에 도착하는 것.

나는 그것이 책임이라고 믿는다.




카롤린이 떠나고 이 년이 지난 뒤, 내 딸 린이 태어났다. 일 년뒤, 내 아들 토비아스도 태어났다.

우리는 아침마다 탁아소에 맡겼다가 저녁이면 데려온다.

내 아내 욜란드는 아주 모범적인 엄마다.

나는 여전히 시계공장에서 일한다.

첫 번째 마을에서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어제 p.140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어제』의 주인공 토비아스는 작가의 꿈을 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번역가 용경식은 그것을 '다른 형태의 자살'이라 불렀다.

실제로 망명자들 가운데는 스스로 생을 끊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쓰기를 선택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어렵고, 더 가난했겠지만, 내 생각에는 또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나는 글을 썼으리라는 사실이다.


문맹 p.82


이번 독서모임에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을 예정이다.

『문맹』이 망명자의 젖은 눈동자를 보여준다면『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눈물이 말라버린 자리를 보여준다.

우리는 결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건너며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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