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여물어 가는 시간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태수 / 페이지2

by 솔솔부는 책바람

나는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을 잃지 않는 어른들이 멋지다.

여전히 나에 대해 잘 모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되려 하는 변화무쌍한 변덕쟁이들에게서 나는 멋을 느낀다.

우리는 고작 몇 개의 단어들로 결코 정의될 수 없는, 개성 가득한 존재들이기에.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152


예전의 나는 호기심이 넘쳐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과 깊은 정을 쌓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책도 그렇다.

새로운 문장을 탐색하는 설렘도 좋지만 익숙한 문장 사이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를 다시 만나는 재독의 시간이 반갑다.

그렇다고 새로운 책과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싫어진 건 아니다.

다만 같은 문장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질 뿐이다.


1년 만에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다시 펼쳤다.

작년에는 혼자 읽었고 이번에는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함께 읽고 있다.




오늘 하루도 무언가를 또 미루고 있을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이여.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들 중 가장 비실한 목표를 데려오자.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201


나는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잘 쓰고 싶어서 쓰지 못했고 잘 보이고 싶어서 보여주지 못했다.


" 너무 잘하고 싶어지면
반대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돼"

이 문장은 정확히 내 이야기였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그 문장에 등을 떠밀리듯 장롱면허를 꺼냈고 멈춰 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의 내용보다 제목이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말했다.

살다 보니 세상에서 젤로 힘든 게 성공이 아닌 만족이라고.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187


예전의 나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늘 앞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내면이 채워지지 않았기에 나를 더 크게 부풀려 증명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의 평가에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는다.

온라인에 글을 남기는 이유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다.

훗날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그때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어서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여정의 끝에 설 때마다 나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떠올린다.

본래 델포이 신전 기둥에 새겨져 있던 이 문구를 소크라테스는 평생의 화두로 삼았지만 내게 이 격언은 그리 와닿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를 잘 알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한 존재가 바로 나였다.


나를 안다는 건 단순히 내 취향을 파악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소음 속에서 '진짜 내 목소리'를 분별해 내는 감각에 가깝다.

2500년 전의 명언이 지금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그만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릴 땐 사람이 없는 시간이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사람이 진짜 외로워지는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함께 있음에도 여전히 혼자 같은 순간이었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254


이 책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위로'보다 '공감'에 가깝기 때문이다.

위로는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공감은 "나도 그랬어"라고 말해준다.

정리되지 못한 감정과 생각들이 누군가의 글 속에서 분명해질 때가 있다.

그건 마치 끝내 맞추지 못했던 마음의 퍼즐 조각을 비로소 찾아낸 기분이다.

그렇게 조각이 맞춰지는 찰나의 지점들이 나를 다시 책 앞으로 이끈다.


같은 책이 다르게 읽힌다는 건 그 사이에 내가 달라졌다는 뜻일 것이다.

그게 성장인지 변화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나를 알고 있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중략)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p.228~229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그 말이 이제는 묵직하고 단단하게 느껴진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시끄럽지 않아도 충분한 삶.


작년의 내가 '시작'앞에서 망설였다면 올해의 나는 '지속' 속에 서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잘 이해한 채 오늘도 조용히 기록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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