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 까치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은 희미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p.316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펼칠 때마다 퍼즐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맞춰졌다가 다시 흩어진다.
1부, 2부, 3부의 장면들이 콜라주처럼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독자를 혼란과 매혹 속에 빠뜨린다.
이야기는 완성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문득 영화『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취조실을 나선 버벌 킨트의 절뚝거리던 걸음이 곧게 펴지는 순간 관객은 그가 들려준 서사가 사실은 취조실 벽의 메모와 물건들을 조합해 즉흥적으로 지어낸 허구였음을 깨닫는다.
버벌 킨트에게 잡동사니가 이야기의 재료였다면 소설 속 쌍둥이에게는 무너진 세계 속에서 흩어진 기억들이 생존을 위한 서사의 재료였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모두를 인색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p.79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읽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소설이 된다.
처음에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던져진 인간의 생존기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지우고 스스로를 단련한다.
그들에게 잔혹함은 악의가 아닌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인간적인 생존 본능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건드리기 때문에 작품을 읽는 동안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읽은 소설은 조금 달랐다.
전쟁의 비극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지만 전쟁은 배경에 가깝고 진짜 이야기는 그 안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붕괴, 엄마를 잃은 아이, 사랑받고 싶은 존재.
한 아이의 상처가 보였다.
우리는 대도시에서 왔다. 밤새 여행한 것이다.
엄마는 눈이 빨개졌다.
엄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들었고, 우리는 각자 작은 옷 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아버지의 대사전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둘이 번갈아 가며 들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p.9
아이들이 번갈아 드는 '아버지의 대사전'은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국경을 넘어 낯선 언어의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막막함이 문장마다 스며 있다.
분신 같았던 쌍둥이 중 하나가 국경을 넘으며 세 가지 거짓말을 한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가족, 나이, 이름.
우리가 자신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내놓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모두 거짓이라면
그 모든 정보가 사라져도 여전히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본질조차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현실을 버티기 위해 만든 허상이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루카스는 50년 동안 형제를 기다리며 노트를 써 내려갔다.
형제가 있다는 것, 돌아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이라는 것.
그러나 현실을 견디기 위해 써 내려간 이야기는 어느덧 진짜 삶을 잠식해 버린다.
마침내 형제를 마주한 순간,
그토록 갈망하던 얼굴이 손가락 사이로 허망하게 빠져나가는 장면은 시리도록 아프다.
허상이 무너진 자리에는 모래처럼 흩어진 고독만이 남는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p.302
이 문장은 단순한 글쓰기 예찬처럼 들리지 않는다.
망명 이후 곁에 있던 이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세상에 남기는 절박한 당부처럼 읽힌다.
어떤 형태로든 삶의 흔적을 남기고 끝까지 버티라는 외침 말이다.
매년 수많은 이들이 스스로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그들 각자에게도 쓰다만 이야기와 끝내 채우지 못한 문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책이 독창적이든 보잘것없든 중요하지 않다.
다만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지우지 않기를.
비극적인 허상에 잠식될지언정 마지막 문장까지는 어떻게든 써 내려가기를.
어쩌면 작가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시간의 흔적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이라는 고유한 책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책의 다음 문장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