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솔부는 책바람 Oct 30. 2023

우리 모두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성장통

[책리뷰] 호밀밭의 파수꾼 / J.D. 샐린저 / 민음사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중략)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호밀밭의 파수꾼 p.230



1951년에 발표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제목은 익히 들어 너무나도 친숙한 느낌의 소설이지만 사실 어떤 내용이 담긴 책인지 몰랐다.

소설의 내용을 어렴풋이 접하게 된 것은 정여울 작가의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 이었다.

주인공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한 남학생의 고독과 방황을 그린 이야기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부유한 유태인 사업가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학업에는 그다지 뜻이 없던 그는 뉴욕대학교에 진학하지만 결국 중퇴한다.

이후 컬럼비아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했으며 지도 교수의 꾸준한 독려로 창작에 몰두하게 되었다. 

1942년에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군 생활을 하면서 여러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나이 32살이 된 1951년 그의 자전적 첫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간한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고 성적 암시로 인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영미 문학의 걸작으로 극찬을 받으며 대표적인 성장소설로도 손꼽힌다.

기성세대의 위선과 가식에 저항하는 소설 속 주인공 콜필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콜필드 신드롬을 일으켰다.



난 이 이야기를 펜시 고등학교를 떠나던 그날부터 시작하고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 p.10



명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가 뉴욕 시내를 배회하면서 겪은 3일간의 여정을 독백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홀든은 속물스러운 행동과 가식이 난무하는 학교에 염증을 느낀다. 

야만적인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따라 하는 친구들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 점수를 받은 홀든은  퇴학 조치를 받게 되고 룸메이트와 주먹다짐 후 호기롭게 학교를 빠져나오지만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저기요, 아저씨. 센트럴 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왜 조그만 연못 있잖아요. 그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아시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호밀밭의 파수꾼 p.84


홀든은 퇴학 통지서가 집으로 도착하기 전 뉴욕의 싸구려 호텔에 투숙하고 술집과 클럽을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홀든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진정성 없는 사람들과 교류하지만 상처만 받고 내면의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홀든은 냉소적으로 사회를 바라보지만 대책 없이 투덜거리기만 할 뿐이다.

큰 키에 새치가 가득한 홀든의 몸은 이미 어른의 모습이지만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묻는 미숙한 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는 홀든에게 어른들은 하나같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낸다.

홀든이 던지는 질문은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불합리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그럼 다른 걸 말해 줘.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 건지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 p.228


세상에 내동이쳐진 기분이 든 홀든은 동생 피비를 만나기 위해 부모님 몰래 집으로 간다.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오빠가 반갑지만 피비는 홀든이 이번에도 퇴학을 당한 것을 직감하고 아빠에게 혼날 오빠를 걱정하며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본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싶다고 대답하는 홀든.

홀든의 이런 대답은 오염된 세상으로부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어함과 동시에 지금의 자신도 누군가가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대답이었다.

홀든은 그 순간 평소 호감을 가졌던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가지만 혼란만 가중된 채 도망치듯 그곳에서 나오게 된다.







장래에 대해서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 물론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어요. 그럼요. 걱정되고 말고요. 

하지만 그렇게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앞으로 걱정하게 될 거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모르겠구나.

호밀밭의 파수꾼 p.27



홀든은 세상의 부당함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하고 기성세대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실상은 거짓말을 일삼고 걸핏하면 술과 담배를 찾는 모순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은 학교를 빠져나와 뉴욕의 거리에서도 나타난다.

전화박스 앞에서 통화를 할만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쓸쓸히 돌아선다. 

결국엔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하며 외로움을 달래보려 하지만 더욱 자기 환멸에 빠질 뿐이다.



홀든의 울적하고 외로운 마음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았고 도리어 상처만 받는다.

결국 멀리 떠나기로 결심한 홀든은 동생 피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편지를 남긴다.

커다란 여행 트렁크와 함께 나타난 피비는 오빠가 가는 곳에 따라가겠다는 고집을 피우고 결국 홀든은 동생을 달래주기 위해 회전목마를 타러 간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던 마음도 피비에게 편지를 남긴 행동 모두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홀든이 학교를 떠나기 전 선생님을 찾아간 것도 아마도 자신을 붙잡아 주길 바랐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질책이 담긴 조언은 홀든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혼돈의 시기를 겪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무조건적인 믿음일 것이다.

지금의 방황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닌 인생의 물음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과 배움이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을 이미 걸어온 내가 그 길을 지금 걷고 있는 너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의 이전글 가족이라는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