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하는 새벽 수학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새벽 6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운동이나 독서 같은 자기계발이 목적이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수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말이다.
사연은 며칠 전부터 시작된다.
우리 첫째 1솔이는 학원 대신 집에서 온라인 강의로 공부한다. 시골 특성상 아이 픽업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 성향에 맞다고 판단해서 올해부터 시작한 방식이다.
수학, 논술, 역사 세 과목을 듣는데, 논술과 역사는 흥미롭게 잘 따라간다. 문제는 수학이다. 수학 공부하는 날이면 아이가 유독 힘들어한다. 이런 건 안 닮아도 되는데 날 쏙 닮은 것 같다.
그런데 최근 1솔이 입에서 '수포자'라는 말이 나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벌써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심각한 신호가 아닐까.
아이 옆에서 함께 공부해보니 문제가 보였다. 문장제를 어려워하고, 계산 실수도 잦았다. 문제만 보면 한숨부터 나오고 자세도 흐트러졌다. 정해진 시간에 스스로 공부방에 들어가길래 잘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아이에게만 맡겨뒀구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문제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아이는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 앉아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하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세는 더 나빠지고 집중하지도 않았다. 설명하는데 딴청을 피우니 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 짜증과 화가 치밀었다.
'정말 아이 때문일까?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그제야 들렸다. 내 안의 목소리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야.'
맞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공부에 신경 쓰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 그걸 아이에게 화풀이하고 있었던 거다. 솔직히 인정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아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수학 하기 싫어?"
"몰라."
"많이 어려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
"네 마음을 말해줘야 아빠가 도와줄 수 있어."
"......"
"온라인 강의 그만둘까?"
"아니요, 계속할 거예요."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공부도 안 되고 수학만 더 싫어져. 중고등학교 가서 더 어려워지면 포기하게 될 거야." "그래도 제가 하겠다고 한 건데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돈도 아깝고요."
책임감 있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벌써 돈 걱정하는 게 마음 아팠다. 내가 심어준 생각인 것 같아서.
"알겠어. 그럼 어떻게 하지? 그만두기도 싫고 하기도 싫은 이 상황을..."
"저도 모르겠어요."
"아빠가 도와줄까?"
"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아이가 고개를 들며 호기심을 보였다.
"아빠 설명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기. 아빠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할게."
"알겠어요."
역사 공부할 때 강의 듣고 나서 동생이나 나에게 다시 설명해주는 1솔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런 능력이 있음을 얘기해주고, 수학에서도 그 힘이 필요하다고 격려했다.
"그런데 언제 하지? 학교 다녀와서 하기엔 너무 지칠 것 같은데..."
"새벽에 해요!" 1솔이가 먼저 제안했다.
"일어날 수 있어?" 아이에게 묻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6시에 일어나면 책도 읽고 수학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의욕이 놀라웠다.
"그래, 아빠도 일찍 일어나지 뭐."
이렇게 우리의 새벽 공부가 시작됐다. 오늘로 4일째, 아이는 시간 되면 스스로 일어난다. 아이 일어나는 소리에 나도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기존 15분 책 읽기 루틴을 마치고,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편다.
아직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 공부 자세와 문제 해석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하루에 한두 문제 정도밖에 못 풀지만, 1솔이와 함께하는 조용한 새벽 시간이 참 좋다. 가끔은 나도 어려워서 함께 강의를 듣거나 미리 예습하기도 한다.
대학 이후 처음 접하는 수학 문제. 나에게도 설레는 시간이다. 연습장에 끄적이며 답이 맞으면 나도 모르게 "예쓰!" 소리가 나온다. 그 뒤엔 현실감각이 돌아오며 쓴웃음이 나지만.
내 목표는 1솔이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에 대한 부정적 연결고리(수학=지겨움=재미없음=어려움=고통)를 끊어주는 것이다. 다시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 흥미만 되찾는다면 잠재력(집중력, 이해력, 문해력)은 저절로 발휘될 것이다.
그러면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한번 해볼까?' 하며 도전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려운 문제들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
앞으로도 이 새벽 시간을 지켜나가고 싶다. 1솔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될 때까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기쁨을 계속 나누고 싶어서다. 언젠가 1솔이가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른 걸로 함께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 아이와 함께하는 새벽이 참 소중하다.
위의 수학 문제 정답은
2.5%
소중한 시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