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키운다는 건

아이들 손에 올라 온 작고 느린 기적

by 솔솔솔파파

“아빠, 아빠, 아빠, 이거 살려줘요!”

어린이집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던 3솔이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손에는 작고 바싹 마른 달팽이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이거 죽은 거 아냐?”

“아니야. 가운데가 하얀 거면 살아 있는 거야.”

나는 말라붙은 껍데기를 본 순간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은 아니라고,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너무 확신을 가지고 말해서 그 말을 외면할 수 없어
작은 그릇에 물을 붓고 달팽이를 담가두었다.

그리고 곧 까맣게 잊었다.

오후가 되자, 하원하고 집에 온 3솔이의 환호성이 들린다.

“아빠~ 달팽이 살았어! 내 말이 맞지?”

정말이었다.
달팽이는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은 마치 생명을 살려낸 의사처럼 기뻐했고,
누나인 2솔이까지 가세해
달팽이를 키우겠다고 들썩이기 시작했다.

작은 집을 만들고,
상추를 먹이고,
돌과 도토리로 놀잇감과 휴식처도 만들어 주었다.

IMG_7754.JPG

“달팽이 키우는 게 재밌어?”

“응. 신기하고 재미있어.”

작은 집을 등에 지고 긴 더듬이를 움직이며
상추를 조금씩 베어무는 그 모습이
아이들에겐 신기한 생명의 퍼포먼스였던 거다.

며칠 후, 3솔이가 마당에서 또 외친다.

“누나~ 내가 달팽이 더 구했어!”

“3솔아~ 빨리 와봐! 행운이 똥 쌌어! 아~ 귀여워!”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행운이, 러키, 비키, 오키
네 마리의 달팽이 가족이 생겼다.

(지금도 그 가족은 계속 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며
나도 어릴 적 키우던 병아리가 떠올랐다.

동네 앞 육교에서 산 작은 병아리.

처음 작고 연약한 생명을 마주한 나는

그 가슴 뛰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병에 걸렸다.

시름시름하는 병아리를 보며

난 하루 종일 옆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잠깐 잠든 사이

병아리는 눈을 감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펑펑 울었고, 너무 슬퍼서 글을 썼다.

며칠 안 됐지만 병아리와의 추억,

그리고 미안함을 담아 글을 쓰고

병아리를 땅에 묻고 그 글을 읽어 주었다.

글을 읽으면서도 어찌나 울었던지...

난 결국 병아리와 함께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병아리 편지 옆에 짧은 유언을 남겼다.

"제가 죽으면 병아리 옆에 저를 묻어 주세요."

그 유언을 남기고 나는 울다 지처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병아리를 키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명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아이들도 지금
그 순수함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겠지.

아이들이 무언가를 키우는 걸 좋아하는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돌보는 일은
나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 준다.

아이들의 눈빛엔
그런 자부심이 담겨 있다.

아이들은 달팽이를 통해
자기와는 전혀 다른 존재의
느리고 조용한 생명 방식을 배운다.

생명의 소중함,
동물을 돌보는 책임감,
자연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달팽이의 느린 움직임을 지켜보며
서두르지 않는 삶의 가치도 배운다.


어쩌면 언젠가는
병아리처럼 달팽이와도 이별하게 되겠지.
그러나 그 이별 또한
아이들의 마음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 씨앗을 심었다.

작은 씨앗이 흙 속에서 싹을 틔우듯
아이들의 마음에도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돌봄의 씨앗이 심어졌다.

그 씨앗들이 자라고,
꽃 피우고,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살려내는 따뜻한 손길이 되기를.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