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는 아빠, 스스로를 용서하는 아들
지난겨울 방학 때의 일이다.
하루의 끝이 아직 멀었지만,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무거워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저녁 준비를 알리는 전기밥솥 소리도 이제는 배경음처럼 들릴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하고,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간식을 챙겨 주고, 점심을 준비하고,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고... 막내와 놀아주다가 잠시 시간이 나면 글을 읽거나 쓰다가, 막내가 부르면 다시 달려가 놀아주고, 어느새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하는 오후 5시.
내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말투가 점점 무뚝뚝해지고 있었다.
마치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네, 네, 네,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끊겠습니다." 형식적인 대답을 내뱉고 있었다.
아이들의 쉴 새 없는 질문과 도움 요청에
"어, 어", "안 돼", "기다려", "그만" 내 대답은 마치 자동응답기 같았다.
하루에 아빠를 부를 수 있는 횟수를 5번 미만으로 할 수 있도록 법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멀리서 또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것 좀 도와주세요!" 1솔이(첫째)가 부르는 소리.
1솔이가 나를 3번째 불렀을 때 난 겨우 2층으로 몸을 움직였다.
PC에서 인쇄를 했는데, 오류 메시지만 뜨고 출력이 되지 않자 나에게 SOS를 요청한 것이었다.
"왜? 또 뭐가 문제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갔고,
말투는 '나 지금 폭발 일보 직전이야'라는 듯 날카로웠다.
살펴보니, 종이를 잘못 넣어서 생긴 오류였다.
종이를 정리해서 다시 넣고 버튼을 누르니 인쇄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큰 고장은 아니었다.
휴...
그런데!!! 인쇄가 멈추지 않았다.
'아~ 이런! 제~~~~발'
난 마음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프린터는 제멋대로 인쇄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같은 페이지를 10장 넘게 출력하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 마음도 그랬다.
피로함 때문에 쌓인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데, 나 역시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너도 나처럼 고장 났구나.'
프린터를 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프린터는 마치 신문사에서 조간신문을 찍어내듯 끊임없이 출력되고 있었다.
프린터가 나오지 않아 프린터 버튼을 계속 눌러서 쌓여있는 명령이 실행되었던 것이다.
1솔이의 표정이 미안함과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1솔이를 안심...시켜줘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1솔이에게 '불편함'이라는 벌을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이 행동이 가장 부끄러웠다.)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내 안의 있는 '짜증'을 토해냈다.
모기 물렸을 때 긁으면 피가 나는 것을 알지만 가려움에 못 참고 피날 때까지 긁는 것처럼.
난 아들에게 이렇게 짜증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지만 짜증 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내 감정을 알아차렸다. 화가 난 이유가 1솔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밖으로 나왔다. 머리를 식혀야 했고, 아무 잘못 없는 아이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멈춰야 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걸으며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나는 왜 화가 난 걸까?' '단순히 종이가 몇십 장 낭비된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걸까?'
1솔이에게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어. 몰라서 그런 거니까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면 돼~"
이렇게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아들, 옷 입고 밖으로 나올래? 아빠가 할 얘기가 있어." "알았어요, 아빠."
보통이라면 "왜?"라고 물었을 텐데, 오늘은 조용히 "알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빠 눈치 보느라 그런 것 같아서 더 미안했다. 잠시 후, 1솔이가 나왔다.
"아빠가 미안해."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뭐가?" 1솔이가 물었다.
"아까 괜히 짜증 내서. 사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너한테 짜증 낸 건 아빠 잘못이야."
잠깐 호흡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 실수 때문에 너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의 잘못이 아니야. 아까는 아빠가 너무 지쳐서 그런지 짜증이 나더라고." 1솔이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앞으로 아빠나 엄마가 너의 실수 때문에 짜증을 내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때 엄마나 아빠가 피곤하거나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런 거야. 알았지?"
"응, 알겠어."
그 후 우리는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릴 적 나는... 사고를 많이 치는 아이였다. 컵을 엎지르고, 유리를 깨고, 음식을 흘리고...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사고를 칠 때마다 혼이 났다.
실수할 때마다 들었던 말들.
"으이그..." "내가 못 살아..." "넌 왜 맨날 사고야?" "그냥, 가만히 좀 있어."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아무 말도 없는 순간이었다.
혼나지 않을 때가 오히려 더 불안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굳어지고, 거실에 흐르던 소리가 사라질 때.
그 침묵이, 마치 벌처럼 느껴졌다.
그 조마조마한 공기 속에서 나는 위축되었다.
'실수하면 혼난다.'
그렇게 배우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실수를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책하거나, 남을 탓하거나, 자식의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안전한 환경에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한 아이는 자신을 용서할 줄 알고,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실수를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내면 아이에게도 말해 주고 싶다.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실수해도 사랑받을 수 있어."
그날 저녁, 1솔이가 컵에 음료를 따르다가 넘쳤다. 잠시 놀란 1솔이는 이내 말했다.
"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별 일 아니야."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기특했다.
그리고 아빠로서의 책임감도 느끼게 된 하루였다.
아이는 당신의 뒤를 따른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지켜본다.
당신이 잘못된 길로 간다면,
아이도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Daily D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