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전사가 된다
1주일 전 2솔(둘째,여)이가 목이 아프고, 몸이 쑤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군.’
1년에 2~3번은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한 번 오면 온 집안을 다 헤집고 사라진다. 2솔이는 열이 났고, 짜증이 시작됐다. 자기를 봐 달라는 신호다. 이틀 정도 약을 먹고 열이 떨어졌다. 그런데 바로 3솔(셋째,남)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에 갑자기 열이 38도까지 오르면서 몸이 불덩이가 됐다. 해열제를 먹이고 재웠더니 아침에 잠깐 반짝했다. 그런데 다시 열이 올라서 어린이집에 못 보내고 집에서 케어했다. 열이 떨어지면 밖에서 놀다가 열이 나면 누워서 끙끙 앓았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3솔이의 성격 탓이다.
3솔이도 이틀을 그렇게 어린이집에 못 가고 열이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한 후 이겨냈다. 3일 만에 어린이집을 가는 날 아침, 1솔(첫째, 남)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감기가 릴레이 계주처럼 이어졌다. 그래도 학교에 가 보려고 정문까지 갔지만 차 안에서 일어나지를 못하는 1솔이다. 가장 말이 없고, 엄살도 안 부리는 아이라 1솔이가 아프다고 하면 진짜 아픈 거다.
바로 병원으로 가서 열을 쟀더니 열이 39도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열경련을 앓던 아이라 고열이 나면 나의 몸은 본능적으로 긴장한다. 10년이 지났지만 새벽에 아이를 업고 병원 응급실을 찾아다니던 때를 몸은 기억한다. 39도를 넘는 고열이면 무조건 코로나 아니면 독감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확신하신다. 그래서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진행했다. 긴 막대기가 아이의 코를 찔렀고,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안쓰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은 코로나와 독감을 동시에 검사할 수 있는 키트가 나와서 한 번만 찔러도 된다는 것이다. 잠깐 밖에서 대기하다가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진료실로 부른다. 속으로 코로나나 독감이면 어쩌지? 그럼 학교도 못 가고 2솔이나 3솔이에게 옮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텐데... 그 짧은 시간에 걱정이 밀려온다.
무조건 둘 중 하나라고 자신하던 의사 선생님은 예상 밖의 결과를 마주하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네... 둘 중 하나는 나와야 하는데...’하면서 키트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둘 다 음성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의 고갯짓과는 다르게 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적 열경련으로 다져진 내성이라 생각하며 그동안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더 단단해진 1솔이가 대견했다. 학교를 결석하고 집에서 하루를 푹 쉬었다. 자기는 절대 낮잠을 안 자는 아이라고 큰소리치더니 약을 먹고 잠들었다. 혼자 조용히 방에 가서 자는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1솔이가 어렸을 때는 그 뜨거운 아이를 열이 떨어질 때까지 안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쉬려고 내려놓으면 등 센서가 작동해서 자지러지게 울기에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밥도 안고 먹고, 안은 체로 소파에 앉아서 자야 했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커서 아프면 조용히 혼자 누워서 이겨낸다. 하루를 그렇게 푹 자더니 다음 날 아침 열이 떨어져서 학교에 갔다. '이제 정말 튼튼해졌구나.'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했다.
보통은 릴레이에 마지막 주자는 나다. 아이들 셋이 다 아프고 나면 맨 마지막에 내가 아팠다. 코로나 때도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려 셋을 데리고 자가격리를 한 후 아이들이 다 괜찮아지자 내가 코로나에 걸려 며칠을 쓰러져 있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는 아플 수가 없다.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에 있다. 아이 둘이 동시에 아프면 더 바쁘다. 한 아이의 이마에 손만 올려도 다른 아이는 더 끙끙거린다. 서로 자기를 봐 달라고 신음 소리를 내고, 자기를 돌봐 달라고 울기도 한다. 아내가 출근하고 혼자일 때는 그 시간은 정말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이렇게 아파하는 아이를 보면 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빨리 낫게 해 주세요.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차라리 나를 아프게 해 주세요. “
(맨 마지막 기도는 꼭 들어주신다. 하하하)
부모로서 자식이 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아픔 덕에 아이가 몸과 마음이 모두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다. 다른 형제가 아플 때 부모와 함께 걱정하고, 작은 것이라도 도와주려고 하고, 부모가 힘든 것을 알고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한다. 그래서 평소보다 잔소리할 일도 없다.
아프고 나면 키도 크고, 몸도 더 튼튼해진 것을 느낀다. 세상에 모든 부모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식들을 안 아프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 아픔을 통해 아이는 더 강해진다. 그런 아이를 보며 부모는 다시 힘을 얻어 일상을 산다. 솔직히 고통이 없이는 진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맞이할 자신이 없어서 아이가 아픈 것이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7살 무렵, 1년 사이 큰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겪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매일 병상 곁에서 기도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겁 많은 아빠는 속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우리 아이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학교에서 무사히 집으로 오게 해 주세요'
'큰 상처 없이 자라게 해 주세요'
하지만 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강하게 내 아이를 지켜낼 거라 다짐한다.
아이의 아픔은 부모를 전사로 만든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전사다.
내 몸 보다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싸운다.
오늘도 우리 집 솔솔솔 삼 남매는 건강하게 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녀왔다. 아픔을 이겨낸 후 더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힘든 날들이 우리 모두를 단단하게 만들었음을 느낀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나도 함께 성장했다. 참을성이 늘었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으며,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일상의 데시벨은 다시 높아졌다. 고요했던 집에서 다시 소란스러운 집으로, 건강한 집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사는 거지. “ 하면서 또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