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것의 역사

by 솔솔솔파파

"우웩!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둘째가 코를 막고 숨을 참으면서 주방에서 도망치듯 나간다.


"아빠, 무슨 썩은 냄새가 나." 냄새가 퍼지지 않은 거실에서 주방을 보며 말한다.


"아~ 아빠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방금 음식물쓰레기통을 청소해서 그래."

고통스러워하는 딸에게 악취의 원인에 대해서 설명한다.


얼굴을 찡그리고 손가락으로 코를 막은 아이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한다.


"너무 지독해.“

여름철 발효된 음식물 쓰레기 냄새는 나도 참기 힘들다. 처리한 후에 환기를 해도 그 냄새는 무겁게 남아있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인상 한 번 쓰시지 않고 더러운 것들을 척척 처리하셨다. 냄새나는 생선도, 화장실이 막혔을 때도, 죽은 생쥐를 치울 때도 (옛날에는 집에 생쥐가 많이 다녀서 여기저기 덫을 쳐 놓았다.), 치매 걸리신 할머니가 여기저기 묻혀 놓은 변을 치울 때도... 망설임 없이 처리하셨다.

난 더러운 것을 싫어했다. 만져지는 느낌도, 냄새도, 보는 것도... 그런데 어머니는 더러운 것을 참을 수 있는 무슨 능력이 있으신 것 같았다.

결혼을 하면서 더러운 것에 대한 나의 혐오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러운 것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릴 적 어머니가 변기를 뚫을 때 보았던 그것과 첫째가 쓰던 천기저귀 위의 그것은 같은 것이었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천기저귀의 그것은 유심히 살피고, 냄새도 자연스럽게 맡았다. 손으로 비벼서 빨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 비위가 달라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도 지금 나의 비위를 가지고 계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부아빠가 되면서 나의 비위는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샤워를 할 때 물이 잘 내려가지 않으면 배수구 뚜껑을 열고, 거름망을 꺼내서 어지럽게 엉켜 있는 머리카락을 빼낸다. 양치하던 아이들이 물이 안 내려간다고 난리를 치면 세면대 아래 배관을 분리해서 배관 속에 있는 거름망을 제거해 그 속에 머리카락과 작은 쓰레기들을 빼낸다. 세탁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아내의 말에 드럼세탁기 고무패킹에 베이킹소다를 뿌려서 칫솔로 곰팡이 흔적을 닦아 낸다. 헹굼할 때 구연산을 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느 날은 화장실에 들어간 둘째가 화장실을 나오며 소리를 지를 때도 있다.


"악! 아빠, 변기에 그게 묻어 있어. 어떡해~“

둘째는 공포에 질려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밥상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변기 솔을 집어 들고 박박 문지르고 물을 내린다.

"이제 됐어. 다녀와.“

조금 뒤 막내가 화장실에서 나를 부른다.

"아빠, 다 했어. 닦아줘.“

난 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닦고 화장실에 가서 막내의 엉덩이를 닦아준다. 결혼 후 달라진 비위 덕분에 가능한 것들이다.

더러운 것 때문에 새로 생긴 병도 있다. 바로 먼지 알레르기다. 오래된 먼지를 마시면 재채기가 나오고 몸살 감기처럼 온몸이 쑤신다. 공기청소기를 분해해서 청소하거나, 무선청소기의 필터 및 먼지통 그리고 롤러를 청소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몇 주에서 몇 달 된 묵은 먼지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마주해야 하는 더러운 것들도 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다. 매일 하는 설거지가 끝나면 싱크대 거름망에 있는 음식물 찌꺼기를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는다. 보통 때는 괜찮지만 여름에는 이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뒀다가 버릴 때 곤욕을 치른다. 발효되어 물이 넘치고, 흐르고 난리가 난다. 장마 때 빨래가 마르지 않아서 나는 시큼한 냄새의 100배는 더 지독한 냄새다. 사람의 일에는 분명 위아래도 없고, 천하고 귀하고도 없다지만 한 여름 음식물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악취를 맏으면 나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빠, 그렇게 더러운 걸 어떻게 견뎌? 난 엄마가 돼도 못 할 것 같아."

딸이 인상 쓰며 묻는다.

"너도 네 자식이 생기면 저절로 하게 될 거야.“ 난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어른이 된다고 모두 비위가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른이 되면 더러운 것을 참고 치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가족들을 위해, 주부의 책임감으로 더러운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더러운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내 마음도 여전하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은 내 마음가짐이다. 더러운 것을 참아내는 특별한 능력 따위는 없다. 누구도 더러운 것을 스스로 치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엄마라도 당연하지는 않다. 단지, 살려내겠다는 마음이 더러운 것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처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주부는 식구들을 살려내고 있다. 식구들이 더러운 것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묵묵히 처리하고 있다.

세면대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고,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 볼 때 인상 쓸 일이 없고, 집안에서 악취가 안 난다면 그것은 더러운 것을 기꺼이 처리 한 주부의 용기와 노고 덕분일 것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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