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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쏠이 Dec 26. 2023

방콕 고스트 투어(Bangkok Ghost Tour)

배쏠이 방콕 일지

귀신, 유령. 듣기만 해도 솜털이 쭈뼛 선다. 이런 단어만 들어도 소름 돋지만 귀신이야기는 도저히 마다할 수가 없다. 괜히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하고 뭐 하는 귀신일지, 왜 나왔는지 듣고 싶다. 덤으로 안 주치는 법이나 쫓아내는 방법도 알면 좋고. 어쩌면 귀신을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빚어낸 호기심일까?

지난번 방콕여행 때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찾다가 우연히 ‘방콕 고스트 투어’를 발견했다. 귀신 얘기 좋아하는 내가 이 투어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고스트 투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숙소고 뭐고 다 잊고, 이 투어를 꼭 하고 싶단 생각만 들었다. 아쉽게도 지난 여행에서는 스케줄상 투어를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 드디어 무려 일곱 달을 기다린 ‘방콕 고스트 투어’를 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호스트 '에쏘(Esso)'가 진행하는 ‘방콕 고스트 투어’는 색다른 시각의 방콕 사원투어다. 사원에 얽힌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태국의 역사와 문화, 특히 장례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태국의 사원에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신이 산다. 사람들이 모시는 신 중에는 귀신도 있다. 이번 투어에서 방문한 방콕 시내 온넛역 인근에 있는 ‘마하붓 사원’은 유령신부 '메 낙 프라카농'을 모시는 곳인데 '메 낙'은 남편이 전쟁에 나간 사이 아이를 낳다 죽은 여성 귀신이다. '메 낙'은 죽은 후에도 유령이 되어 남편을 기다렸고 남편이 살아 돌아오자 한동안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유령임을 들켜버리고 남편은 도망가 버린다. 이로 인해 메 낙은 원한을 품고 남편에게 자신이 유령임을 이야기 한 마을 주민들을 죽이고 매일 저녁 눈물을 흘렸단다. 이 원한은 메 낙이 살던 지역에 오게 된 승려가 그녀의 시신을 찾아내 염불을 한 후 사라졌다고 한다. 메 낙 전설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1999년작 <낭 낙(Nang Nak)>이고 다른 하나는 2013년 작 <피막(Pee Mak)>이다. <피막(Pee Mak)>은 <셔터>, <샴>, <랑종>등을 연출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작품이다. <피막>은 예전에 왓챠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스트리밍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사연을 가진 메 낙을 모시는 마하붓 사원 근처에는 메 낙과 아기 귀신에게 바칠 비단옷과 장난감을 판다. 공양을 통해 들어오는 물품이 워낙 많아서 승려들이 사용할 만큼만을 제외하고 전국 각지에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신께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린 사람들은 신이 자신의 기도에 반응해 주길 바라며 복권을 산다. 기도에 감동한 신이 복권 번호 하나쯤 알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간파한 복권 상인들은 사원 근처에 몰려 있다. 사원 내부에서도 복권을 판매하는데, 낮에 오면 번호가 적힌 자리마다 복권 상인이 앉아 있다고 한다. 메 낙 동상 근처에는 헌금을 할 수 있는 자판기도 있는데, 여기에 헌금을 하면 작은 향초가 나온다. 이 향초를 다 태우면 복권을 위한 숫자가 나온다.

만약 신이 소원을 들어줬다면 사람들은 다시 사원에 와서 감사를 표한다. 놀랍게도 사원에는 이를 위한 댄서 고용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1,000바트를 내면 2명, 1,600바트를 내면 4명의 댄서가 메 낙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춰준다. 여기에 300바트를 추가하면 업체에서 메이크업과 의상을 제공해 주고 본인도 직접 초상화 앞에서 춤을 출 수 있다.  


*사진 설명(왼쪽부터)

1.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부처님 뿐 아니라 힌두신, 도교신 등등 많은 신이 마하붓 사원 안에 모여 있다.

2. 각종 공양 물품을 판매하는 사원 근처 슈퍼, 메 낙과 아기 귀신을 위한 옷과 장난감도 판매하고 있다.

3. 사원 안쪽에 위치한 아기를 안고 있는 메 낙 동상과 그 앞에 놓인 딸기맛 환타. 과거에는 동물의 피를 재물로 바쳤다면 요즘에는 피 색과 비슷한 붉은 환타를 바친다.



*사진 설명(왼쪽부터)

4. 신께 치성을 드린 사람들이 복권을 사는 공간. 각 번호별로 복권 상인들이 앉아 있다.

5. 기도를 드린 후 이 기계에 20바트 정도 "헌금"하면 작은 향초가 나온다. 이걸 태우면 오른쪽 사진 좌측 하단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처럼 번호가 나온다.

6. "헌금" 기계 옆 초를 피우는 재떨이(?) 같은 곳에서 발견한 번호.


* 사진 설명(왼쪽부터)

7. 내가 "헌금" 하고 받은 향초

8. 향초 패키지 뒷면

9. 감사 댄서 고용 프로그램 관련 홍보물. 페이스북으로 연락 가능.


마하붓 사원에 있는 장례시설, 사진 왼편 희미하게 보이는 굴뚝이 있는 곳이 시신을 화장하는 공간이 있는 곳이다. 이곳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다.

만신의 보우 아래 사람들은 신에게 소원도 빌고 망자의 명복을 빌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왕궁에 있는 사원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원에는 장례식장과 화장시설이 있다. 사원의 뒤쪽, 지붕에 굴뚝이 있는 곳이 시신을 화장하는 곳이다. 장례식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3일장, 5일장, 7일장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하루에 30분씩 승려의 기도가 진행된다고 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가족들의 요청이 있다면 일정기간 동안 화장하지 않고 사원에 시신을 보관할 수 있다. 화장이 끝난 유골은 사원에 안치된다. 투어를 하다 보면 장례식이 진행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장례식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다만 장례식장 문 밖에 등이 켜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장례식장 내부에 시신이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투어 말미에 태국 장례지도사님과 인터뷰를 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는데 태국의 장례지도사님은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계셨다. 태국에서는 90% 이상의 망자가 부검을 통해 사인을 진단받는데, 장례지도사님은 부검의의 조력자로서 이 부검에 참여한다. 부검이 끝나면 시신을 인계받고 시신을 염하고 유가족과 소통하며 장례식을 기획하고 이를 진두지휘한다. 이렇게 일이 많기 때문에 보통 한 팀으로 일을 진행한다고 한다. 사건 사고 현장에서 직접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하는데, 가장 크게 기억 남은 사건은 2009년에 있었던 '산티카 클럽 화재 참사'라고 한다. 좁은 공간에 엉겨 붙은 시신을 수습했단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를 인솔했던 가이드 에쏘와 투어에 함께 한 인도 친구가 몇 해 전 있었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말고도 장례지도사로서 일 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 내용이 궁금하다면 직접 방콕에 와서 투어에 참여해 보시길 바란다. 꺄르륵.

에 다 담지 못 할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한 알찬 투어였다. 뻔한 사원투어가 지겨운 사람이라면 정말 완정 강력하게 추천하니, 방콕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참여해 보길 바란다.



오싹한 재미가 있는 방콕 유령 투어 링크

 https://air.tl/UNwXjO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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