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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쏠이 Oct 27. 2023

소스를 그리는 마음


소스를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 “내가 언제부터 소스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깊게 고민해 봤을 때 언제부터 소스가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맛보다도 패키지가 마음에 들면 좋아한다. 문제는 마음에 안 드는 패키지가 별로 없다는 거 정도? 아무튼 이런 기호 때문에 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사서 엄마한테 욕먹은 적이 상당히 많다. 특히 소스. 대부분의 소스 병은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일단 패키지에 홀리면 무슨 맛일지도 궁금하고, 어디에 먹는 건지도 궁금하고, 무슨 재료로 만드는지, 다 궁금하다. 이런 호기심 때문에 끝까지 먹지도 않을 스리라차를 사고, 발사믹 크림을 사고, 민트잼을 사고 그랬다. 아무리 맛있는 후이퐁 스리라차 같은 소스라도 매일 먹지는 않는다. 어쩌다 한 번씩 생각나는 소스는 먹을라치면 유통기한이 지나있기 일쑤다. ‘하지무’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년[1]으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나는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


마트에 가면 늘 수입 소스 코너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다양한 스타일의 각종 소스 병들이 나를 유혹한다. 소스 통의 모양과 라벨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모두 눈길을 끈다. 소스 통에서 시작된 관심이 불러온 호기심은 수많은 질문을 뿜어내고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하곤 한다. 소스 통마다 각자의 고유한 모양과 라벨이 있는 것처럼 소스의 맛과 역사도 각자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소스 통 하나에 수십, 수백 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게 놀랍다.


예쁜 소스 병에 홀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이야기 찾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소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면서 동시에 꽤 힘들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소스 정보 찾는 게 더 힘들다. 정확하지 않은 내용은 그림과 함께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흐릿한 정보만 찾을 수 있을 때는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소스에 대해 조금이라도 쓸만한 내용을 찾지 못하면 그림을 그리고 싶지도 않달까. 뭐가 우선인지 참. 아무도 안 시킨 거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도 안 시킨 일이니까 힘들어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이렇게 혈안이 되어 소스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데, 이걸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아쉬워서 앞으로 브런치에 연재를 해볼까 한다. 아무리 짧은 이야기라도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지 않겠는가! 앞으로 내가 후벼 판 소스 이야기가 다 동날 때까지, 꾸준히 그리고, 쓰고, 올려야겠다. 심호흡 후-하!   


       



[1] 영화 <중경삼림>에서 하지무(223 경관)가 한 유명한 대사인데, 이 번역은 원문을 의역한 거라고 합니다. 원문은 ‘기억’의 유통기한이고, 최근 리마스터링 된 버전은 ‘기억’으로 자막이 바뀌어 있던데, 저는 그냥 ‘사랑’이 더 좋아서 이렇게 씁니다.



내 기억에 가장 처음 그린 소스.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는 '민트 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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