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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아이즈 와이드 셧> 리뷰

제도에 억눌러진 숨겨진 욕망에 관하여

하포드 가족은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의사인 남편과 전직 아트 딜러인 부인, 그리고 딸 하나까지 괜찮은 소득에 부유층 주치의를 하며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괜찮아 보이는 모습은 잘 짜여진 제도의 모습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의사라는 자격증, 결혼제도 등이 바로 그 것이다. 이성이 만든 제도 안에서 잘 순응하고 있을 때 만들어지는 만들어진 이상적 그림이다. 결혼 제도는 탐욕스러울 수 있는 성욕을 누르고 정조나 이성 따위로 우리를 포장하고 있다. 의사라는 직업은 죽음의 욕망을 감추고 생존으로 만들어 낸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욕망 이 두가지 욕망은 빌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두 특성, 의사와 중산층 기혼자라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결혼 제도라는 이성 아래 우리는 탐욕을 감춘다. 빌의 이런 탐욕은 잘 숨겨왔지만 아내인 앨리스의 고백과 함께 이성이 탈출한다. 영화의 첫장은 이 억압된 이성과 이성이 풀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성은 무너지고 욕망을 향해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첫 장은 어쨌든 무너지지 않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이고를 가지고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2장은 빌의 욕망의 발현이다. 그 시작에는 아내의 고백도 있지만, 환자의 죽음도 있다. 죽음의 욕망과 마주치는 순간 이성의 순간은 달라진다. 타나토스의 욕망은 에로스의 욕망도 이끌어낸다. 아내의 고백과 함께 풀린 이성의 고비는 죽음과 함께 가속하는 것이다. 그 마주친 순간은 꿈도 현실도 아니다. 하루밤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은 에로스의 발현들 투성이다. 자아는 통제되지 않고 깊숙하게 있던 이드가 흘러 나온다. 창녀를 사고, 코스튬 샵에서 이상 성행위를 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그리고 마지막 대저택에서의 난교 파티까지. 하루밤 동안이지만 모든 일은 에로스의 발현과 연결이 된다. 그런 모습은 빌에서 끝나지 않는다. 빌이 경험했던 난교파티를 연상시키는 앨리스의 꿈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빌을 떠올린다. 빌이 보낸 시간을 연결시켰을 때 앨리스는 꿈이 아닌 현실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관객에게 난교파티는 영화 속에서 꿈이자 현실이 된다. 현실이라고 느꼈던 영화 속 난교파티는 어딘가에 누군가에게는 무의식의 모습이다. 이고에 억눌린 이드가 꿈을 타고 나온 것처럼. 앨리스는 꿈으로, 빌에게는 하룻밤의 일탈로 나온다. 흔히 꿈이 꿀 수 있는 누구에게나 존재 가능한다.  3막의 모습은 보기에 따라서 진실을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진실 이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그 현실에 돌아오는 이유는 어찌보면 간단하다. 위협을 느껴서다. 비밀집단의 위협이지만 실상은 현실에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아이자 이성의 위협이다. 마구잡이로 발현 되었던 지난 밤의 이드를 붙잡을 슈퍼이고 같은 것들이다. 위협을 누르고 결국 빌은 현실로 돌아온다. 이성적인 자아 안에서 결국 자신의 생존이 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즈 와이드 셧>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노력해 본다면 스탠리 큐브릭의 정신분석학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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