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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하나 그리고 둘> 리뷰

인생은 그렇게 흐른다.

영화의 시작은 결혼식이다. 정확히 따지면 생명의 시작이다. 아디의 부인인 샤오린에 배 속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이 없는 양양의 사촌 동생이 있다. 영화는 그 생명의 시작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무리는 할머니의 장례식이다. 영화는 생명의 시작과 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전체가 인생 전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인생은 반복되어 있다. 양양에서 팅팅의 이야기, 그리고 NJ의 이야기는 반복이다. NJ는 셰리와 과거의 추억을 말한다. 그 추억 속 이야기는 NJ의 자녀인 팅팅과 양양의 현재와 비슷하다. 양양도 사랑인지는 모르지만 한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팅팅은 패티와 영화를 보고 횡단보도에서 손을 잡으며 함께 호텔에 간다. 그 모든 과정은 셰리와 NJ의 과거다. 그렇게 사람들의 인생은 반복되고 흐른다. 자신의 미련함을 말하고 과거에 대한 후회를 말하지만 그렇게 반복된다. 이토는 NJ에게 말한다. 하루하루 경험하지 미래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경험은 두려워한다고. 인생이 참 그러하다. 양양은 사진을 찍는다. 양양의 사진에는 사람들의 뒷통수가 담겨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인생의 부분들을 사진에 담는다. 패티의 삼촌은 말했다. 영화를 통해서 인생을 세 배로 살 수 있다고. 우리가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인생의 부분, 이면들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일 것이다. 카메라 그 것들을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점을 보고 길일을 잡으며 소망하며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하는 것 뿐. 밍밍은 종교로 도망을 간다. 하지만 밍밍은 결국 같았다고 말한다. 인생은 그렇게 도망갈 수 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유리창과 거울에 비춘 모습들이 많다. 유리창을 통해서 거울을 통해서 보는 우리의 모습은 관조된다. 렌즈를 지나가며 비추어진 초상들은 카메라에서 사진이 되고 영화가 된다. 영화 속 사진이, 그리고 영화 그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관조하며 보여줬듯이 영화 속 거울과 유리창도 우리의 인생을 관조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거울에 유리창에, 그리고 필름에 우리의 모습이 비추어 보여주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일상을 말하는 모습에서 등장인물들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춘다. 특히 NJ는 그 과정에서 과거를 반추한다. 거울오 비추어서 인생을 다시 봤지만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를 흘러갔고 지금 거울에 비추는 모습은 현재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생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숙연히 필연적으로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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