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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Oct 26. 2022

<놉> 리뷰

봐선 안되는 것들, 꼭 봐야 하는 것들, 그동안 봤던 것들.

본다는 것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봤던 것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못봤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봐야 하는 것들을 다룬다.

우선 우리가 봤던 것들이다. 우리 봤던 것들은 즉, 영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의 역사다.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영화는 중요한 모티브다. 영화의 역사, 활동 사진의 역사가 이 영화에 담겼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주프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은 서부극의 모습이고, 고디가 왔다를 통해 전형적인 미국 시트콤을 보여준다. 즉 가장 대표적인 헐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각 콘텐츠 영화와 TV를 그 대표 장르인 서부극과 시트콤으로 대치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매체를 즐겨왔던 우리가 봤던 것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SNL에 대한 언급도 어찌보면 그 흐름에 하나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도 놓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많은 것을 본다. 하지만 봐선 안되는 것과 봐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핵심은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스펙터클 본다. 때때로 그 스펙터클은 봐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잔혹한 범죄 영상, 포르노 필름, 스너프 필름, 혹은 전쟁의 모습 등 그 것들이 있을 때 우리는 유혹에 빠진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 영화는 어떻게 말하는가 그냥 보면 안된다고 말한다. 본다는 것은 때때로 우리를 위협에 빠뜨리고 더 나아가서 잡아 먹는다. 스스로 폭력에 본인은 놓이게 만든다는 그런 잔인한 영화다.

또 다른 것은 시선이다. 시선은 권력이기도 하지만 폭력이기도 하다. 보여진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는 기회가 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권력에 착취당한다는 것이다. 진 재킷이 권력, 다시 말해 상대방을 잡아 먹는 도구는 상대방의 시선이다. 상대방의 시선을 통해 상대방을 잡아먹는다. 즉 시선을 통해 권력을 얻는다. 먹이들, 즉 사람들은 어떠한가 시선을 통해 권력을 갖는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시선을 통해 착취 당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선은 권력이 되기도 하지만 권력에 착취 당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스타라는 자리는 권력을 가진다. 하지만 대중에 시선에 착취당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인플루언서라는 자리에서 시선을 얻고자 하지만 한편에서 그 시선에서 탈출하고 한다. 이 영화는 시선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시선을 가진 자는 권력을 가기도 하지만 권력을 착취 당한다. 진 재킷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도구는 시선이지만 진 재킷이 결국 파국을 맞이하는 것도 시선이다. 주프 풍선의 시선은 결국 진 재킷에게 파국을 불러왔다. 주프의 풍선이 진 재킷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진 재킷은 다른 결과를 맞이 했을 것이다.

주프도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가 갈구하는 것은 시선이다. 몰락한 아역스타이다. 과거에 시선을 받던 시기를 그리워하며 여전히 시선으로 먹고 사는 분이다. 그는 시선을 받기 위해 진 재킷을 유인하고 진 재킷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진 재킷의 시선에게 몰락하게 된다. 시선은 그릴 먹여살리고 그의 힘이었지만 결국 그의 힘을 뺏은 것도 시선이다.

영화는 미디어에 관한 영화처럼 읽히기도 하다. 여기서 미디어란 레거시 미디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스마트폰만 들면 찍을 수 있는 현대의 상황을 가리키기도 하다. 에머랄드가 그렇게 진 재킷을 찍고 싶어 했던 이유는 오프라 쇼 때문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시선에서 우리는 그렇게 움직이고 생각한다. TMZ에서 진 재킷을 취재 온 것도 결국은 미디어다. 누가 먼저 찍을 것인가의 문제는 소셜 미디어 마저 등판하면서 만인의 만인의 투쟁을 만들어 낸 미디어 전쟁의 한 단면 같아 보인다. 누가 먼저 찍히는가 누가 먼저 찍는가의 문제는 진 재킷과 팀 OJ의 전쟁도 한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를 찍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마치 특종을 잡기 위한 레거시 미디어 간의 경쟁을 넘어서 유튜버들 마저 뛰어드는 난리 난장판을 보는 듯하다. 한편에서 이 영화는 나이트 크롤러 못지 않은 지독함을 보여준다.

그동안 못 봤던 것도 영화의 한 축이다. 영화 속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찍은 말의 사진이다. 하지만 그 사진에는 말만 있지 않다. 말은 기억하지만 우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는 그 흑인 기수의 후예들의 이야기다. 잊고 있었던 흑인부터 동물 스타, 과거의 아역스타, 즉 잊혀진 스타들까지 우리가 카메라에 담지 않았던 혹은 담겼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팀OJ의 구성은 사뭇 색다르다. 흑인과 히스패닉이라는 점이다.   홀스트는 결국 살아남지 못하지 스펙터클에서 빨려나가서 운명을 달리한다는 건 뭔가 색다르다.

영화의 색다른 오프닝은 우리를 자극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리만 나온다. 우리의 관음증 뭔가를 보고 싶다는 본능적인 충동 속에서 당신은 참을 수 있는가 묻는 듯하다. 상황을 알고 싶은 건지 상황을 보고 싶은 건지 당신의 관음증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가.

[2022. 10. 26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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