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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리뷰

열등감으로 가득찬 한심한 영화

이 영화를 만든 아시안계 미국인,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계 미국인,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제작자 등 제작진은 내면화된 차별을 무의식적으로 영화 속에서 뿜어낸다. 총각파티 장면은 내면화된 차별 그 자체다. 백인 여성들이 비키니를 입고 자신의 국적을 나타내는 띠를 두루고 있다. 마치 백인 남성들이 아시안 여성을 성적으로 보던 장면을 미러링 한 듯하다. 마치 백인들아 우리가 당하던 모습을 니들도 한 번 당해봐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보는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인종에 대한 관념도 마찬가지다. 인도인은 주차요원 혹은 경호원이다. 인도인에 대한 편견을 담아낸 모습으로. 게이 캐릭터도 딱 편견 속의 게이 캐릭터의 모습이다. 릭의 오빠가 찍는 몰카를 개그로 사용하는 것도 영화가 지닌 젠더적 진보성은 바닥을 걷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진 인도인에 대한 편견, 게이에 대한 편견, 그리고 성적 소구로 여성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마치 동북아계 아시안을 멋있게 그린다고 홍보한 것을 생각하면 영화의 진보성은 딱 황인종 아시안도 멋있게 나올 수 있고, 황인종 아시안 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수준뿐이다.

<서치>는 그런 점에서 좋은 비교대상이다. 김치검보가 등장하는 것 빼면 백인 중산층 가정으로 바꿔도 하나도 안 이상한 이야기를 전개했다. 한국계 미국인도 그저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가족이라는 뜻이다.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딱히 잘난 것도 아니지만 못난 것도 없어",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느낌이 <서치>였다. 혹은 <블랙팬서>, <문라이트> 같이 본격적이고, 논쟁적으로 흑인의 아이덴티티를 말하면서 백인 사회에서 흑인의 위치는 문제는 이거다라고 정면돌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아시안도 돈이 많을 수도 있고 아시안도 이쁘고 잘생기고 몸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마구 뿜어낸다. 마치 그 동안 아시안의 매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다짐한 것처럼.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백인들이 부여한 차별에 오히려 빠지는 모습이다. 마치 열등감에 빠져서 내가 이렇게 잘났어 자랑하는 느낌이다.

미국이 아니라 싱가포르가 배경이지 않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국 영화였고, 미국 시장을 노린 영화다. 영화 제목도 분명  <Crazy rich 'Asians'>다. 제목에서 아시안의 아이덴티티를 담았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어쨌든 아시안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인이 등장했으며, 미국에서의 이 영화 홍보의 셀링 포인트도 아시안의 영화 였다. 분명 아시안 영화로 기획되었다면 인종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생각해야 봐야할 지점이다. 잘난 척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아시안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집안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는 부모의 모습, 구시대적 족벌기업 형태, 명품을 밝히는 모습, 열등감에 가족에 소홀하고 바람피는 아시안 남자 등. 아시안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 등을 오히려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릭과 레이첼의 사랑이 허락된 거니까 다르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120분 내내 자식의 행복보다는 가문만 생각하는 어머니 모습 보여주다가 딸랑 10분 마작 한 판으로 마음을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납득도 안된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받은 차별을 내면화 시키고 결국엔 그걸 전개한 감독이다라는 생각만 든다.

영화 제목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다. 하지만 죄다 차이니스만 나올 뿐이다. 이걸보면서 왜 아시안이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코리안, 재패니스, 비엣트나미스 등 다른 아시안 캐릭터는 있지도 않은데. 물론 아시안계 미국인의 아이덴티티는 한국계 한국인인 나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안으로 퉁치기에는 이 영화는 지나치게 차이니스 스럽기만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 패밀리'스럽다. 프롤로그를 통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돈 많은 중국인 무시하다가는 쥐도 새고 모르게 개털린다는 것 정도.

물론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게 아시안과 아메리칸의 문화적 문제일수도 있다. 검은머리 미국인과 싱가포르인의 문화 차이를 지적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포인트를 보여주기 위해서 보여준 모습들이 너무도 한 편견에 가득차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내용면에서도 한국인이라면 너무도 흔히 알던 한국식 드라마 이야기다 보니 내용면에서 별 다른 재미도 못 준다.

이 영화에 대해서 개봉당시 미국 내 아시안 문화의 힘이내 뭐내 하는 기사가 많이 나왔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했다고 하니 슬퍼졌다. 나는 미국은 밟아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아시안이다. 미국 내에서 아시안에 대한 생각이 저 정도라는 의미이니.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자랑스러워 했다는 아시안 아메리칸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저렇게 편견 가득하고, 열등감 가득한 영화를 좋아했다니 안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뻔하디 뻔한 이야기라는 것은 이 영화의 큰 문제가 아니다. 영화이면에 깔린 내재화된 타자의 편견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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