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일이다. 어머니가 주말에 일직을 서는 날이면 난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의 일터로 향하곤 했다. 난 그곳이 마치 내 뒷마당이라도 되는 양 돌아다녔다. 이 방에 들어가서 피아노를 쳤고 저 방에 들어가서 공놀이를 했으며 때론 컴퓨터실에 들어가 게임을 하며 놀았다. 탁자 가운데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검은색 타자기도 내 주요 관심사였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타자기는 초등학교 복도에 붙어 있던 "21세기를 향하여"라는 포스터 문구에 가장 합당한 신비로운 물건이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당시에도 타자기는 보기 쉽지 않은 물건이었기에 난 그 기계를 보자마자 매료되었다. 난 어머니에게 허락의 눈짓을 보낸 뒤 경건한 마음으로 타자기 앞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글자판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신중하게 'ㄱ'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던 짧은 막대 중 하나가 움직이며 검은 테이프를 '탁' 소리와 함께 눌러 내렸다. 흰 종이에 'ㄱ'자가 찍혀 있었다. 난 글자를 지우는 버튼도 눌러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짧은 막대가 흰 테이프를 때렸고 그와 동시에 글자가 사라졌다.
타자기는 언제나 똑같은 형태의 글자체를 흰 종이에 찍어냈다. 글자가 기울어지거나 비뚤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틀 안에 같은 형태의 글이 찍혀 나왔다. 정형화된 서체. 그걸 보자 난 기분이 크게 좋아졌다.
난 어릴 때 이런저런 편집증을 앓았는데 그중 하나가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난 첫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글자를 쓰지 못했다. 글자 크기가 일정해야 했고 글자가 공책의 밑줄을 벗어나도 안 되었으며 앞글자와 뒷글자가 겹쳐져서도, 글자마다 간격이 달라서도 안 되었다. 난 마음에 들 때까지 글자를 고쳐 썼다. 글자가 마음에 든 후에야 다음 글자들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난 이런 행위의 비합리성에 대해, 비효율성에 대해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강박관념이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버릇을 고칠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나였기에 타자기는 하나의 축복과도 같았다. 찍혀 나오는 글자의 그 정형성은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다른 형태의 글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 누구보다도 획일성을 찬양했다.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에 대한 흠모, 수평 수직적 구도를 향한 열망. 난 흐트러짐, 개성, 자유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나를 한 가지 틀에 맞출 수 있기를 욕구했다. 부모님, 선생님, 그 모두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세속적 틀에 나를 맞춰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고 있었다. 난 계속 같은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교과서 같은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노력했다.
결국 난 공책에 교과서 같은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나에게 '수'라는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러자 불행하게도 난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