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자마자 그곳을 향한 그리움이 커질 때가 있다. 이탈리아가 그런 경우였다. 지금껏 적지 않은 곳을 돌아다녀 보았고 그곳 모두 매력 넘치는 장소임이 분명했지만, 이탈리아만큼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곳은 없었다. 아직도 내 삶 곳곳에서 이탈리아 여행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고, 내가 읽는 책마다 그 나라에서 뻗어 나온 역사의 자취를 읽어낼 수 있다. 종교부터 건축, 예술, 역사 그리고 음식에 이르기까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나라의 문화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우리집 방문에는 바티칸에서 가져온 천사 조각상이 걸려 있고, 커피 테이블 위에는 로마에서 가져온 타짜도르 커피 원두가 놓여 있으며, 책꽂이에는 베네치아의 곤돌라와 좁은 골목길에 관한 괴테의 기행문과 볼로냐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던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들이 꽂혀 있다. 그리고 내 마음엔 이탈리아(사실 난 현대적 의미의 '이탈리아'보다는 상징적 의미의 '로마'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여행에 특별함을 선사한, 지금껏 잘 언급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감각이 남아 있다. 그건 성가라고 일컫는 회당 안의 고요한 음성이었다.
영국의 시인이자 신학자인 존 던은 한때 이렇게 썼다. "나는 내 방에 엎드려, 하느님과 당신의 천사를 초대했으나, 그들이 그곳에 오자마자 나는 하느님과 당신의 천사를 등한시하였으니, 파리 한 마리의 소음 때문이었으며, 마차의 덜그럭거리는 소리 때문이었으며, 문의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네." 존 던과 상황은 달랐지만 나도 비슷한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건 이탈리아의 어느 성당에 들어섰을 때였다. 난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건한 마음을 담아 천 년 전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자 했다. 당시에 살던 독실한 신자가 되어 그의 주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다가가 보고자 했다. 하지만 찬탄할 만한 프레스코화와 거대한 조각상, 파괴된 흔적, 무엇보다도 사방에서 울리는 차분한 성가에 난 조금 전의 다짐을 잊고 말았다.
성당에서 듣는 성가, 이것을 희귀한 체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가톨릭 미사의 많은 부분이 음악으로 채워져 있고, 심지어 어떤 수사는 노래하듯 말하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지금껏 여러 성당에서 성가대의 합창과 현악 연주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체험과는 다른 어떤 특색 있는 음성이 성당의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내 안에 들어온 단선율의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육체에서 영혼으로 가는 통과점으로써의 음악은 인간을 신에게 다가서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었고, 그래서 음악은 아주 일찍부터 교회에서 발전했다. 현대 음악과는 매우 다른 특색을 지닌 성가대의 합창은 나를 성당에 들어서게 하는, 그리고 그곳에 오래 머물게 하는 울림 장치였다. 나는 성당을 모두 둘러본 후에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회중석에 앉아 그 단선율 성가가 끝나길 기다렸다. 성가란 "창조자에 대한 찬양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라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할 테지만,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찬양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다. 뜻을 알 수 없기에 성가의 모든 가사가 유빌루스의 뜻이 없는 모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적이 어찌 되었든 그 음악은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데 확실히 성공했다.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그리고 2만 페이지 분량을 글을 썼으면서도 음악을 싫어하여 음악에 관해서만은 쓰지 않았던 '주해자' 이븐 루슈드라 할지라도, 이 단선율의 그레고리오 전례 성가와 오르가눔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묘한 감정이 흐른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탄생한 지 천 년이 지났지만, 현대의 우리 역시 이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경건해지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감미로운 화음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반역이나 모략에 어울릴 것"이라고 과격하게 쓴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오래된 도시를 둘러보며 느끼고자 하는 것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나에게 감동을 주며 내게 여운을 남겨놓은 것, 그것은 현대의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의 화려함과 그 찰나 같은 유행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역사적 문화였다. 난 10세기에 사람들을 이끌었던 드라이포인트 속 선율과 16세기에 성 마르코 광장을 가득 채웠던 성가대의 음표에서 그를 마주했다. 조르다노 부르노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베네치아를 향하며 걱정했던 것은 이탈리아가 과학을 따르는 지성인들에게 위험한 곳이라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었지만, 그 위태롭고 오만했던 곳에서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음악이 만들어졌고 또 연주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 기이함이, 불합리한 영광과 파괴의 역사가, 우리가 이탈리아에 이끌리는 원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의 교부인 히에로니무스는 로마가 파괴되면 이 세상에 확신을 줄 수 있는 건 없게 될 거라 예견하였다. 로마의 영광은 영원할 것 같았으나 파괴되었고, 이제ㅡ히에로니무스의 예언처럼ㅡ세상에 확고한 것은 없음을 자신 있게 선언한 포스트모던의 세상이 왔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성가의 목소리에 마음의 움직이는 것처럼, 파괴된 로마가 폐허로나마 살아남은 것처럼, 예술이 충동하는 어떤 것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