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전히 수집용으로 책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난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프랑스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책을 순전히 수집용으로 샀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이 책을, 시중에 새로운 판본이 나와 있어 읽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 소설을, 게다가 내 서재의 한쪽에 이미 꽂혀 있는 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구매했다.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중고책이라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택배 상자를 뜯어보니 우려했던 것보다 깨끗해 보였다.
책 표지를 살펴본 후 조심스럽게 탁자에 내려놓고는 앞쪽부터 천천히 펼쳐 나갔다. 발행일을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초판일까? 첫 페이지를 열자 누군가 펜으로 휘갈겨 쓴 문구가 보였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바라며 ㅡSirl"
친구나 가족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써둔 것일까? 아니면 저 자신에게 바치는 일종의 다짐이었을까? 중고서적 판매상이 책의 상태를 '최상'이 아니라 '상'이라고 등록한 건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만일 'Sirl' 대신에 번역가 '이윤기'나 소설가 '황석영' 정도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면 난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명이 확인되는 순간 책 가격이 몇십 배는 더 올라갔을 테니. 비록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씨이긴 하지만 진정한 자신을 찾길 바란다는 소망을 적어 놓은 걸 보면 상당한 통찰력을 갖춘 독자였던 것 같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도정을 서술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주인공은 실제로 기억을 잃어버렸다. 은유가 아니기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역시 상당량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우리가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기억상실이 순전히 은유라면, 나 역시 이런 글을 남길 이유가 없다.
2.
"발행 일자가 뒤쪽에 있나 봐."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말했다. 난 책을 뒤집어 뒤쪽부터 천천히 펼쳐 나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페이지를 넘기자 발행 일자가 나왔다.
초판 발행 1993년 2월 10일
2쇄 발행 1996년 4월 10일
아쉽게도 초판 1쇄가 아니라 2쇄였다. 그래도 초판은 초판이니 나쁘지 않았다. 2,000원으로 22년 전의 초판을 구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특별 보존서고를 마련해 넣어두고 싶었다.
"그래도 책이 잘 팔렸나 보네? 2쇄도 찍은 걸 보니." 아내가 물었다.
"프랑스에서 공쿠르상을 받은 뒤에 나왔거든."
"아하."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작가도 2쇄를 발행하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
천천히 읽어 보았다. 최근 판본과 번역자가 동일하기에 거의 똑같았지만 달라진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문구를 매끄럽게 가다듬었고, 표기 오류를 수정했다. 예를 들어 "이제 우리는 국경을 넘기 위하여 안정상 서로 헤어지자고 그는 말했다." 같은 부분들. 이 문장은 단어 표기가 틀렸을 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가 매끄럽지 않아 개정판에서는 아예 다른 표현으로 바뀌었다.
초판은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와 같다. 약간 미숙하고 조금씩 부족하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펑펑 우는 어린아이들처럼. 아이들은 그저 좀 더 놀고 싶어서, 당장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운다. 그런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놀이터에서 좀 더 놀면 왜 안 된단 말인가? 어린 시절 내가 놀이터에서 억지로 끌려 나올 때, 난 '진정한 자신'을 놀이터 어딘가에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론 함께 울어주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한 내 열망이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저 밑에서 흔들리고 있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열망을 품었던 그 순수가 아이를 놀이터의 세계로, 나를 초판의 세계로 흘려보낸다. 하지만 결국 어린아이는 지는 노을을 뒤로한 채 길모퉁이를 돌아야 했고,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한 순수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그 대가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것 아니었을까? 기억을 잃어버린 삶은 너무나도 빨리 저물고 마니까. 우리의 인생에도 2쇄는 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
"그 소녀는 멀어져 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