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아래쪽으로 햄버거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by 김영욱

20세기 패스트푸드 음식점에는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맞아주는 직원이 있었다. 직원은 팬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돌 가수처럼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며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지 물었다. 복장을 깔끔했고 목소리는 명랑했으며 눈빛은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시절은 오랜 이야기가 됐다. 사람 대신 대형 화면이 우리를 맞이한 지 오래다. 비대면 주문 시스템, 키오스크가 우위를 점한 이 매장에도 직원 복장을 한 사람이 돌아다닐 때가 있었지만, 직원과 고객 모두 주제 사라마구가 제시한 백색 질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고객이 직원에게 말을 걸면 직원은 그곳에 사람이 있는 걸 미처 몰랐다는 듯 깜짝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고객이 직원에게 말을 거는 행위는 체계화된 패스트푸드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암시하였기에 직원은 긴장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고객도 예외는 아니어서 직원이 말을 걸면 자신이 뭘 실수한 건가 싶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이런 과도기를 거쳐 이제 매장에서 직원을 아예 볼 수 없게 되었다. 햄버거를 만드는 공정이 모두 자동화되어서 이제 음식은 창구에 있는 조그마한 통으로 나온다. 이들은 흡사 거대한 자판기처럼 보인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고른 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음료가 밭 밑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대형 화면에서 메뉴와 결제 방법을 고르고 스마트폰을 대면 잠시 후 호출 번호와 함께 햄버거가 기계 밑으로 떨어진다. 음식이 떨어지는 창구는 고객마다 다르게 배정되어 혼선이 생기지는 않는다. 간혹 이런 체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오직 그때에만 고객은 화면 너머에 있는 미지의 인물과 대화를 할 수 있다. 혹자는 그런 매장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런 획기적인 시스템을 아직 구현하지 못한 패스트푸드 매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비대면 매장이 일상화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시스템에 우리는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옷가게에 사람 대신 마네킹이 서 있는 것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옷가게에 마네킹 대신 사람이 서 있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이제 패스트푸드 매장에 직원이 서 있으면 그 후진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계가 인간을 재빠르게 대체하면서도 별다른 저항이 일어나지 않은 것엔 이런 이유가 있다.


이러한 결과물은 잘못된 오랜 행태가 낳은 기이한 변형이었다. 나도 그 경험자이다. 오래전에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야간에 일했는데 시간대 특성상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이 의자에 앉지 못하게 했다. 손님이 있건 없건 직원은 서 있는 상태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사장이 없을 때 몰래 앉으면 어떤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장은 수시로 점검을 나왔다. 밤중에 불쑥 찾아왔다가 내가 앉아 있기라도 하면 험악한 얼굴로 불호령을 내렸다. 결국 카운터 안쪽에 처박혀 있던 스툴마저 아예 치워지고 말았다. 이제 서 있는 상태로 조금이라도 쉬고자 하면 엉덩이와 등을 카운터 뒤쪽에 있는 벽에 최대한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하는 일은 내게 주어진 당연한 과제였다. 사장은 내게 인사를 강조했고 나도 마땅히 그 체계를 따랐다. 그런데 내 인사를 받아주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내가 인사를 하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한 번은 주문받은 감자를 튀기느라 손님에게 인사를 하지 못한 적이 있는데 그 손님은 내게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며 따졌다. 난 감자를 튀기느라 들어오시는 걸 못 봤다고 하려다가 그냥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바' 똑바로 하라며 경고했다. 난 인사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리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인사를 하건 안 하건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직원의 인사는 당연하지만 그 인사에 대꾸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손님은 직원이 웃는 얼굴로 인사해 주기를 원했다. 그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직원이 미소를 띤 채 고객을 맞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억지웃음은 불필요한 감정 노동이었다. 웃지 않는 것, 손님에게 미소를 비추며 비위를 맞추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행동하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마음을 갖추는 법 대신에, 상대방이 예의 있게 행동하길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했다. 패스트푸드 매장의 직원 역시 이제 웃는 낯은커녕 손님에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획득했다.


그런데 직원이 그런 권리를 획득하자 사장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굳이 사람을 쓸 필요가 없잖아? 기계적으로 주문을 받고 물건을 건네주고 계산하는 일이라면 기계 같은 인간보다는 그냥 기계가 나을 것 같은데. 내 말도 잘 듣고 24시간 가동도 가능하고 유지비도 더 적게 들잖아.' 이러한 생각의 토대에는 합리주의가 있었다. 직업에서 모든 개인적 취향과 감정을 퇴출하고 효율성만을 추구하여 관료제를 탄생시켰던 그 합리주의 말이다. 이처럼 직원은 미소를 강요당하지 않고자 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자 사장은 기계를 들고 왔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합리화야말로 소비 사회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면서 맥도널드를 그 사례로 들었는데, 그 같은 원칙에 따르면 맥도널드 사장의 대응은 당연하였다. 오늘날 패스트푸드 매장의 직원은 분화된 반복 행위에 탈숙련화되고 자신을 기계처럼 대하는 손님에게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기계로 대체되고 말았다.


직원만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건 아니다. 오늘날 패스트푸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은 매장 내에 머무는 동안 격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곳에 오래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칭송했던 합리주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분명히 암시한다. 합리주의는 우리에게 훌륭한 대우를 약속했지만 실은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만큼만 우리에게 돌려줄 뿐이었다. 이런 식의 합리주의는 가정과 사회에도 침투하여 그곳에 패스트푸드 음식점 이상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만일 가정이 불화로 시끄럽다면 그곳에 합리주의와 효율을 따지는 어떤 정신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이제 미소는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 되었다. 우리는 고급 사교 클럽에 일하는 직원의 미소에서 감정 노동이 아닌 품격을 발견하고자 했고 그 대가로 그들의 미소에서 프롤레타리아적 속성을 떼어내 주었다.


이런 일을 두고 내 동료 마이클은 어떤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AI를 주도하는 산업체에서 인간 사회에 더 쉽게 침투하기 위해 감정 노동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운동을 지속해서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이들은 지속적인 로비로 웃지 않는 것, 무표정을 인간적 권리이자 당연한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 기업체는 합리주의에 따라 직원들을 AI 기계로 대체할 테고 이제 미래는 그들의 것이 될 터였다.


"웃지 않는 것, 이 대목에서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어. 절대로 웃지 않았던 사람, 그런데 속옷을 요구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어 주라며 합리주의를 거부했던 사람, 바로 예수 그리스도야. 웃지도 않으면서 합리주의를 따른다고? 그런 건 불가능해. 기계의 승리만 재촉할 뿐이지. 웃어주면서 합리주의, 웃지 않으면서 비합리주의, 둘 중 하나라고."


나는 웃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본다. 조금도 웃기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내 번호를 알리는 호출음이 들렸다. 덜컹 소리와 함께 화면 아래쪽으로 햄버거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햄버거를 꺼내려 하자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 일어났다. 잠시 지체하자, 30초 이내에 가져가지 않으면 햄버거는 폐기 처리되며 이에 대한 보상은 받을 수 없다는 자상한 알림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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