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욱 Jan 07. 2021

남부 이탈리아의 가지 요리

가지, 야채의 여왕

1.

이탈리아의 가지 요리는 북부보다는 남부가 더 유명하다. 중북부 이탈리아인들은 가지가 정신병을 일으킨다는 등의 여러 유해성을 두고 20세기가 다 될 때까지 논쟁을 벌이느라 제대로 된 가지 요리를 만들지 못했다. 북이탈리아인들은 가지뿐만 아니라 토마토나 감자 같은 가짓과 식물에 독이 있다며 오랫동안 경계했다.


당시 가지는 식감이 그다지 좋지 않고 떫으며 아린 맛이 난다는 인식이 있었다. 가지를 먹으면 정신병이 생긴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돌았던 것도 그 특유의 성질 때문이었다. 가지의 아린 맛은 솔라닌 때문이다. 감자의 싹에 많다고 알려진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많이 섭취할 경우 인체에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 다만 가지 열매에는 솔라닌이 그리 많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북부 지역과는 다르게 남부 이탈리아, 특히 칼라브라아인들은 가지에 열광하여 16세기에 가지를 아랍에서 들여온 이후 여러 요리를 만들어냈다. 칼라브리아산 가지는 이 지역 특유의 자연환경 덕분에 이탈리아 중북부에서 자란 가지보다 쓴맛이 덜하고 향미가 풍성하여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가지는 이탈리아보다 아랍 지역에서 더 대중적인 요리 재료라고 할 수 있다. 터키의 가지 요리는 종류가 최소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른다. 아랍인들도 처음에는 가지의 떫은맛을 경계했는데, 가지를 잘라 소금물에 넣어두면 떫은맛이 약해진다는 걸 알게 되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색은 전갈의 몸통과 같고 맛은 전갈의 가시와 같다'라고 했던 가지가 야채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물론 당시 아랍 세계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가지를 두고 야채의 여왕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

어렸을 때는 가지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장바구니에 가지를 담곤 한다. 요리법은 절이거나 무치는 우리나라 방식보다는 굽거나 튀기는 유럽의 방식을 참고하는 편이다. 내 무침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 입맛이 굽거나 튀기는 쪽을 더 선호한다.


아무리 오래전의 일이라고 해도 가지를 두고 야채의 여왕이라니, 꽤 거창한 것 같다. 그런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가지를 구운 뒤 식초를 뿌리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올려 먹어 보면 가지가 그렇게 불렸던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먹다 보면 행복하다는 기분마저 든다. 간단한 요리이지만 정말로 맛있다.


올리브유에 익힌 뒤 식초와 치즈, 소금을 뿌린 가지 요리


위의 가지 요리는 남부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 레시피를 참고하여 만들었다. 기름에 튀긴 가지와 허브의 향이 배어든 올리브 오일에 식초와 마늘이 들어간다. 소스에 허브 향이 스며들도록 충분히 기다렸다가 먹는 요리이기에 차가운 안티 파스토로 어울린다.



참고자료

Claudia Piras "Culinaria Italy: a celebration of food and tradition" (H. F. Ullmann 2015)

다마무라 도요오 지음, 정수윤 옮김 <세계 야채 여행기> (정은문고 2015)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 김희정 옮김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랜덤하우스 2010)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서 만드는 데미글라스 소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