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스크는 태생부터 난도가 높은 요리에 속했다. <왕실 요리서>(1867)를 지은 쥘 구페는 자신의 저서에 저택에 어울리는 전문 요리사뿐만 아니라 주부를 위한 상세한 조리법을 제시하였는데, 이때 비스크 같은 난도 높은 요리와 토끼 소테 같은 기초적인 가정식 요리를 따로 분류해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비스크나 쉬프렘, 농축액과 같은 난도 높은 요리를 아리코 드 무통이나 토끼 소테, 블랑케트, 부르주아식 송아지 요리 같은 매우 기초적인 가정식 요리에 편입시키는 것"만큼 몰지각한 처사도 없었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쥘 구페가 비스크를 토끼 소테나 블랑케트보다 난도 높은 요리라고 한 이유가 궁금할 수 있다. 비스크는 가재나 새우 등의 갑각류로 만드는데, 이들을 손질하는 데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토끼를 손질하는 것보다 특별히 어렵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스크는 일종의 수프인데, 수프가 난도 높은 요리라니 뭔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한다. 또 토끼 블랑케트는 토끼라는 생소한 음식 재료 때문에 뭔가 더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쥘 구페가 그렇게 구분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재료가 아니라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토끼 블랑케트는 손질한 토끼를 스킬렛에 굽고 다진 양파를 넣어 잠깐 익힌 뒤 밀가루, 향신료, 스톡을 넣어 1시간 정도 끓이기만 하면 된다. 반면 비스크는 가재 껍질을 버터에 볶다가 코냑을 넣은 뒤 불을 붙여 '불맛'을 내고 각종 야채와 향신료,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끓이는 게 첫 번째 일이다. 이제 이렇게 만든 조리액을 고운 체에 걸러야 하는데, 이때 강한 힘을 줘서 최대한 많은 소스를 추출해야 한다. 이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한 뒤 크림을 넣고 적당한 농도로 졸인다. 마지막으로 가재 꼬릿살을 오븐에 살짝 익힌 뒤 그릇에 담고 만들어 둔 소스를 붓는데, 이때 셰프만의 플레이팅이 들어간다. 레시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만드는 과정이 꽤 복잡하다. 일반 가정에서 전채 요리 하나에 이 정도의 노력을 들이기는 쉽지 않다.
오늘날엔 생크림 혹은 루나 쌀을 넣어 진하게 만든 수프를 두고 비스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갑각류 대신 쌀이나 루를 쓰면 수프를 만들기가 한결 수월해지니, 그렇게 만든 비스크를 두고 난도 높은 요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진한 수프를 비스크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비스크를 난도 높은 요리라고 설명하면 이상하게 들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시대상의 반영인 것 같기도 하다. 간편식이 대중화된 시대이기에 집에서ㅡ수프 가루가 아니라ㅡ쌀이나 루를 넣어 수프를 끓인다는 것 자체가 난도 높은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지금 쥘 구페가 나타나 '토끼 블랑케트는 매우 기초적인 가정식 요리'라는 말을 진지하게 한다면 '꼰대'라는 흉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능청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현대에도 비스크는 기능사가 아니라 기능장의 요리로 구분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스크는 갑각류를 익혀 조리한 수프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일반적인 가정식에 비하면 손질하는 것부터 그리 간단하지 않고 가격이 저렴하지 않으며 조리 시간도 길기 때문에 고급 요리라 할 만하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비스크에 랍스터를 쓸 때가 많아 메뉴 자체도 상당히 고가이다. 색감도 뛰어나서 수석 셰프들이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을 구성할 때 비스크 소스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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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스크를 만들 때 랍스터가 아니라 새우를 썼다.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자면 껍질을 압착해서 소스를 뽑아내야 하지만, 나는 껍질을 블렌더로 아주 곱게 갈아 수프에 넣었다. 비스크 조리법이 체계화될 당시에는 갑각류 껍질을 잘게 가는 게 만만찮은 작업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직접 손질하다 보니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 쥘 구페(Jules Gouffe), <요리서(Le Livre de cuisine)> 전게서, 5쪽; 파트릭 랑부르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 김옥진, 박유형 옮김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7), 244쪽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