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심야식당>에서 주인공 '마스터'가 처음 선보이는 요리는 '계란말이'이다. 계란을 풀어 달군 팬에 부은 뒤 끝부터 돌돌 감아 싸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 마스터는 계란물에 다른 어떤 재료도 넣지 않았고 완성된 계란말이 위에 어떤 향신료나 조미료도 뿌리지도 않았다. 그저 달걀만을 말아 그대로 손님에게 내었다. 마스터의 주방일을 돕게 되는 미치루의 첫 요리도 계란말이였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난 첫 요리에서 하나의 상징을 읽어냈다. 그건 <심야식당>이 추구하는 목표 의식이었다. 서양 셰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대개 요리의 놀라운 장식성에 주목했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화려한 요리를 접시에 올렸고, 셰프는ㅡ비록 지금 당장은 좁은 푸드트럭에서 일하고 있더라도ㅡ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가게를 개점하며 꿈을 이뤘다.
반면 <심야식당>은 첫 요리로 단출한 계란말이를 내면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었다. 장식성은 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마스터라는 인물의 성향에 어울리지 않았다. 건물은 낡았고 도구는 오래되었으며 조명은 어둡고 요리는 간결하며 소박했다.
2.
내게 계란말이는 요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음식이라기보다는 그저 차가운 어떤 것이었다. 주요리에 곁가지로 들어가는,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대량으로 넣어두었다가 손님에게 내놓는 차가운 어떤 것. 성의 있는 음식점은 계란말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기도 했지만 안쪽까지 따뜻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영화 <심야식당>을 보면서 난 계란말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차가운 밑반찬이 아니라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는 주요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계란말이 한 줄에 만족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간단한 계란말이조차 정성과 의식이 가미되면 의미 있는 요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관념이 새삼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록 오래전의 일이지만 내게도 따뜻한 계란말이가 요리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때가 있었다. 바쁜 와중에 만들어 주셨던, 도시락 뚜껑을 열면 붉은 케첩이 뿌려져 있던, 반찬통 하나를 홀로 독차지하고 있던 오랜 학창 시절의 그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내 기억에서, 몸이 느끼는 흔적으로 되살아났다. 그저 간단하고 단순해 보였던 것. 단순해 보이던 것은 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3.
마스터는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지만 난 파슬리를 뿌렸다. 그리고 계란말이를 수평으로 썰던 아이에게 나이프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