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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Feb 16. 2021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네가 밑바닥을 안다고?

조지 오웰의 자전 소설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다른 제목으로도 꽤 번역되어 있었다. 찾아보니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그리고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제목으로 번역되는 외국 문학이라니,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네 권의 번역서 중 어떤 걸 읽을까 고민하다가 삼우반 출판사에서 나온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골랐다. 


고민 목록에서 제일 먼저 배제된 건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이었다. '성자'라는 단어가 소설 내용과 어울리지 않았고 또 상투적이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따라지'라는 낯선 단어가 걸렸다. '미리 보기'로 번역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동물농장>과 합본으로 나와 있어 미리 보기로는 읽어볼 수가 없었다. 굳이 따라지라는 표현을 써야 했을까?


최종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경합을 했는데 강렬함에서 '밑바닥'이 '빈털터리'를 앞섰다. 빈털터리와 밑바닥 모두 파리의 더러운 빈민가에 어울리는 '저렴한' 표현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개인적 경험 때문에 '밑바닥' 쪽에 더 마음이 갔다.

한때 난 내 개인적인 가난과 어려움을 친구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ㅡ당시 난 수중에 돈이 거의 없었고 당연히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수 없었으며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도 딱히 없어 주변에 신세를 져야만 했다ㅡ친구가 이야기를 다 듣더니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밑바닥을 경험해 봤다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 친구의 복잡한 가정사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는데, 그것만 비교해 봐도 이미 난 유복함에서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밑바닥이 아니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강렬히 남아 있다. 내가 '밑바닥 생활'이라는 단어에 끌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고른 것만 봐도 그렇다. 그때 내게 그 말을 해주었던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이 소설은 꽤 독특해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 오웰의 친구, 보리스에게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린 건 나뿐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아래와 같이 주석을 달아 보았다. 또 다른 주석은 다른 독자들의 몫이다.





1.

"어머니는 하루 열여섯 시간 일하면서 한 짝에 25상팀을 받고 양말을 꿰맸는데, 아들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몽파르나스의 카페촌에서 빈둥거렸다." 


ㅡ 철없는 자식을 부양하는 고생하는 부모는 시대를 뛰어넘는 전형이다.



2.

"가난과 뗄 수 없는 따분함을 발견한다. 아무런 일도 할 것이 없고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아무런 일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때이다."


ㅡ 따분함을 꼭 가난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무료 공공시설만 이용해도 금세 따분해지는데, 배고픔에서 오는 따분함이라니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쯤 되면 굳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수준의 가난을 겪게 되면 자살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가 보다. 조지 오웰은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그것이 보상해주는 커다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난이 장래를 전멸시킨다"(26쪽)는 것이다. 자살 시도라는 생각조차 사라져 버린다.



3.

"자넨 글을 쓰겠다는데 말야. 글은 무슨 놈의 글인가. 글 쓰는 걸로 돈 버는 길은 출판사 사장 딸하고 결혼하는 거, 그거 딱 한 가지뿐이야."


ㅡ 고래로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훈수꾼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말조차 때로는 맞을 때가 있다.



4.

"한 잔에 두 시간까지 앉아 있는 게 예의라서 우리는 두 시간 뒤 카페를 나왔다."


ㅡ 우리는 종종 커피 한 잔으로 카페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가를 두고 논쟁한다. 조지 오웰의 위 문장으로 당시 파리에도 '커피 한 잔의 예의'가 있었으며 그 시간은 두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도 똑같이 적용 가능할까? 국내의 커피 가격은 당시 파리의 커피 가격에 비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점을 감안해서 계산해야겠다.



5.

"뚱뚱하고 부유한 미국인을 몽파르나스의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스타킹에 넣은 돌로 퍽 친다."


ㅡ 이 시기의 파리에도 지금처럼 '퍽치기'가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6.

"힘든 이틀이 뒤따랐다. 남은 돈이 60상팀이었고, 이것으로 우리는 빵 반 파운드와 거기에 문질러 먹을 마늘 한 개를 샀다. 마늘을 빵에 문지르는 이유는 그 맛이 남아 있어 방금 음식을 먹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다."


ㅡ 마늘빵에 대한 새롭고도 놀라운 해석이었다. 1인당 마늘 소비량으로 세계 최고치를 기록하고, 탄생 설화에도 마늘이 등장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에서 비슷한 환상을 찾아볼 수 있을까? 



7.

"공원 의자에서, 특히 예쁜 여자들로 가득한 것이 보통인 튈르리 공원에서 신문지에 싼 음식을 먹는 것을 불쾌한 일이지만 너무 배고파서 상관하지 않았다."


ㅡ 공원 의자에 앉아 있는 노숙자들을 바라보면 불쾌한 기분이 들 것이다. "공무원들은 뭐하는 겁니까! 노숙자들이 공원에서 먹고 떠들어서 동네 분위기를 다 망치잖아요!"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를 상관할 겨를이 없다.



8.

"어느 날 그(앙리)는 사랑에 빠졌는데, 여자가 자기를 거부하자 냉정을 잃고 발로 걷어찼다. 걷어차이자마자 여자가 그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껴, 이들은 2주 동안 같이 살면서 앙리의 돈 천 프랑을 썼다. 그리고는 여자가 바람이 나자 앙리는 그녀의 위쪽 팔에 칼을 꽂고 6개월간 교도소에서 보냈다. 칼에 찔리기 무섭게 여자가 어느 때보다 앙리에게 깊은 사랑을 느껴 두 사람은 화해했고, 그가 출소하면 택시 한 대를 사고 결혼해서 정착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주 뒤 여자는 다시 바람이 났고 그가 출소했을 때는 아이를 가진 몸이었다. 그는 다시 그녀를 칼로 찌르지는 않았다. 그는 저축한 돈을 전부 찾아 한바탕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 다시 1개월간 교도소 신세를 졌다." 


ㅡ 이 문단에서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라캉의 유명한 다음 명제를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이 프랑스 파리이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의 증상이다."



9.

"남자가 돈이 생기면 가는 데가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창녀촌이지요. (...) 그 애의 고개를 젖혀 얼굴을 내려다보았어요. 스무 살쯤 되어 보였지요. (...) 충격받고 일그러진 모습이었지요. 부모가 노예로 팔아먹은 농촌 처녀가 분명했어요. (...) 호랑이처럼 그 애를 덮쳤습니다. 아아, 그때의 그 기쁨, 그 비교할 수 없는 환희! (...) 바로 사랑입니다!"


ㅡ 성의 문제는 철학자들을 괴롭혔다. 성은 억압되어 왔는가? 성의 억압이 오히려 무분별한 성의식을 야기시켰는가? 성의 완전한 개방은 여성 인권을 향상하는가? 성은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가? 성행위가 사랑을 유발할 수 있는가? 


오웰의 소설 속 저 남자는 성적 충동을 사랑의 감정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랑은 성행위가 끝나자마자 쾌락과 함께 사라졌다.



10.

""<X> 호텔에서 처녀성을 간직한 여자를 찾는 것보다 겨울에 구름 없는 하늘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곳은 괴상한 곳 같았다."


ㅡ 학창 시절, 동갑내기 여학생과 함께 학교에 세워져 있던 동상 옆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 여학생이 동상을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학교에 입학한 처녀가 동상 옆을 지나가면 말이 크게 울음 소리를 낸데." 청동으로 만든 그 동상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처녀가 옆을 지나가면 말이 살아나 소리를 내어 운다는 것이었다. 


"누가 그런 말을 해?" 

"내 남자 동기가 그런던데."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얼른 히잉 하고 울음 소리를 냈지."


난 그 여학생이 던진 갑작스러운 성적 주제에 다소 당황하였지만 겉으론 태연한 척 말을 이어갔다. 이전까지 여자와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그 여학생은 그런 당돌한 성적 자유가 여성의 권리를 높여줄 거라 믿는 페미니스트였을까? 아니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거리낌없이 여자들에게 내뱉는 남성의 불건전한 습성을 탓하고자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을까? 아니면 동상이 울지 않은 것으로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을 테니, 만일 네가 처녀만을 원하는 고지식한 남자라면 일찌감치 자신을 포기하라는 뜻을 무언중에 전하려던 것이었을까? 


그때 여학생의 말에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얘는 왜 그때 굳이 '히잉' 하는 울음 소리를 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자신이 처녀라는 걸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신의 소유자라면 '처녀' 타령하는 그 남자를 위해 자신이 처녀라는 걸 드러내기보다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일침을 날렸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곧이어 다음의 의문이 따라왔다. 


'지금은 왜 '히잉' 하고 울지 않는 거지?'


물론 그런 걸 묻지도, 내 의중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아내에게 말해 봐야 전혀 믿지 않을 테지만 난 속마음을 꽤나 감추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밑바닥 생활도 그렇지만, 애초에 사람의 인성에는 밑바닥이란 것이 없었다.



11 

"그는 매우 예리한 식탁용 나이프를 구입해놓았다. 예리한 나이프는 성공하는 음식점의 비결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기쁘다. 왜냐하면 이 일로 해서 프랑스인들은 좋은 음식을 알아본다는 나의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ㅡ 예전에 서울 상봉동의 한 오스테리아에서 발견한 프랑스산 스테이크 나이프에 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순전히 그 나이프 하나 때문에 그 오스테리아를 괜찮은 곳이라 평하였다. 당시 나는 스테이크의 맛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관심이 있었다 한들 좋은 평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문 쪽에 앉아 있던 탓에 주변의 공기는 차가웠고, 그 때문에 여러 조각으로 썰린 채 나온 스테이크는 빠르게 식어버렸다. 스테이크가 다른 요리에 뒤이어 나온 탓에 식기 전에 빠르게 음미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스테이크 나이프, 그것 하나 때문에 나는ㅡ다른 것을 모두 무시한 채ㅡ그 식당을 특별하게 평가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예리한 나이프는 성공하는 음식점의 비결 바로 그것이다." 맛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12.

"나중에 들었는데 우수한 두 사람이 주방에 들어오면서 접시닦이의 일이 하루 열다섯 시간으로 줄었다고 한다. 주방을 현대화하지 않고서는 이보다 더 많이 줄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ㅡ 조지 오웰은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이미 주방의 현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 비하면 훨씬 진보된 상태였던 프랑스 파리의 주방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으니, 당시에도 상수도가 없어 우물물을 길어야 했던 우리 주방의 일이란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지 지금의 우리는 그저 상상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이 쓰인 1930년대의 파리 주방은 이미 가스버너를 사용했는데, 그때 우리 조상들은 온수는커녕 상수도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조선 시대의 서울은 '우물의 도시'였고 노비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물을 길어오는 것이어서 당시 '양반이 직접 물을 긷는다'는 것은 그 정도로 가난하다는 어려움을 표현했다. 개화기 무렵엔 전국에 '물장수'라는 직업이 등장했는데, 이 시기에 외국인이 찍은 물장수 사진이 다른 사진에 비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에 따르면 이것은 "그들이 외국인의 눈에 희한한 존재로 비쳤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수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물을 길러야 하는 사정은 해방 이후에도 나아지질 않아서 부엌일에 큰 고통을 주었다.**

 

오늘날의 부엌은 상당한 현대화를 거쳤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 싱크대는 높이가 다양하지 못한 탓에 키가 여성 평균 키보다 큰 사람, 특히 남성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 개수대는 작아서 물을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수도꼭지도 여전히 한 개에 불과해서 주방 일을 '혼자만의 일'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계속 개선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집의 구조에서 지금까지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바로 부엌이다.



13.

"한 시간 정도를 제외하면 나는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아홉 시 십오 분까지 일했다. 처음에는 그릇을 설거지하고, 다음에는 종업원 식당의 식탁과 마룻바닥을 훔치고, 다음에 유리잔과 나이프의 광택을 내고, 다음에 음식을 나르고, 다음에 다시 그릇을 닦고, 다음에 또 음식을 나르고 또 그릇을 닦았다."


ㅡ 주방 일이라는 것은ㅡ특히 작은 식당일수록ㅡ여자가 전담하는 일처럼 보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주방은 언제나 '이모'를 구했지 '아저씨'를 구하지는 않았었다. '식당 알바를 설거지로 시작했다'라는 유쾌하고도 고된 경험담은 매번 여학생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남자인 자신이 주방 일을 했다고 서술했다. 20세기 초에 주방 일을 남자가 했다는 소릴 들었다면 우리 사회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보통은 설거지하는 사람이 여자"였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주방일 하는 걸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그런 류의 놀라움이 주변을 떠돌고 있다.



14.

""이거 봤어? 요즘에는 이런 종류의 접시닦이를 보내온단 말이야. 너 어디에서 왔어, 이 천치야? 샤랑통이야?" (샤랑통은 큰 정신병원이 있는 곳이다.)

"영국입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내가 이거 알아 모셔야 하는 건데. 그런데, 영국인 나으리, 당신이 매춘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려드려도 되겠소이까? 자아, 어서 네가 속한 카운터로 썩 꺼져, 이 새끼야."

(...)

호기심에서 이날 몇 번이나 "이 뚜쟁이야" 하는 욕을 먹는지 세어보았는데 모두 서른아홉 번이었다."


ㅡ 어느 순진한 구직자는 이러한 노동 현실에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옛날엔 저랬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랫사람을 하대하고 욕설을 수시로 던지는 노동 현장을 오래전의 악습으로만 간주하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국방부의 전산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러 고위공직자를 모아놓고 사업설명회를 하는 날이었는데, 빔프로젝트가 고장 나서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부서장은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분 동안 내게ㅡ말 그대로ㅡ쌍욕을 내뱉었다. 사업설명회를 들으러 왔던 공직자 중에서 그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발표를 하러 왔을 뿐, 빔프로젝트 관리 담당자가 아니어서 내 책임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퇴직을 앞둔 노년의 그 공직자는 마치 작심이라도 한 듯 수십 분간 입에서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조지 오웰이 묘사한 욕설 정도는 장난 정도에 불과했다. 그날 들은 쌍소리를 세면 서른아홉 번은 충분히 넘겼을 것이다. 결국 빔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다른 부서의 여직원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말았다. 그녀는 울먹이며 내게 죄송하다고 했는데 죄송할 일도 아니었다. 세상에 많은 미치광이 중 하나가 그날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같은 부서의 부하 직원인 내게도 행실이 그 모양이었으니, 그가 외주 업체 직원, 이른바 '을'에겐 어떻게 행동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사실 욕설은 드문 일이다. 다만 고함치는 정도는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직장인 중에는 상대방이 자신보다 직급이 조금이라도 낮거나 입사 시기가 늦으면 그를 인격적으로 모독해도 좋은 '하등동물'로 취급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고함을 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할 일도 아니다. 당신의 상사는 빙긋 웃으며 당신의 자존심을 긁는 악담을 술술 해댈 테니까. 이런 경우는 반격하기도 쉽지 않다. 취업 준비생은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정이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직장은 당신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다. 직장인들이 틈만 나면 모여 상사나 후배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걸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도록 하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 역시 또 다른 가해자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쌓은 업식은 결코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한 가지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더 있다. 그것은 호텔의 이 부엌 노동자들이 수시로 욕을 해대는 이유가ㅡ조지 오웰의 설명에 따르면ㅡ"단지 서로를 자극해서 네 시간짜리 일을 두 시간 안에 해치우려고" 애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가해지는 욕설은 단순히 성질이 북받친 분노의 표현일 때가 많다.



15.

"빵 상자는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 

프랑스 요리사는 수프에 침을 뱉는다고 하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진술한 것뿐이다. (...) 수석 요리사는 자기의 검사를 받으러 스테이크를 가져오면 그것을 포크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 접시 위에 엄지손가락으로 둥그렇게 원을 긋고 그 손가락을 빨아 고깃국물의 맛을 보고 (...) 뚱뚱한 분홍빛 손가락으로 고기를 사랑스럽게 눌러 자리를 잡게 한다. 이 손가락들은 모두 이날 아침에 백 번은 빨았던 그 손가락들이다. (...) 

암으로 죽는 사람이 의사에게 단순히 "하나의 사례"이듯이, 그 종업원에게 음식은 단순히 "하나의 주문"일 뿐이다. (...) 굵은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서 토스트 위로 떨어진다. 그가 무슨 걱정인가? 곧 그 토스트가 더러운 톱밥이 깔린 바닥에 떨어진다. 왜 고생하고 새로 만드는가? 톱밥을 닦아내는 게 훨씬 빠르다. (...) 종업원 구역 어디에나 불결이 곪아 터졌다. (...)

요리사들이 세련되게 조리해내는 법을 알았지만, 음식 재료는 대체로 질이 매우 낮았다. (...) 야채는 웬만한 가정주부라면 시장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었다. 크림은 이 호텔의 근무 수칙에 따라 우유를 섞어 희석시킨 것이었다. 홍차와 커피는 열등한 종류였고, 잼은 상표 없는 큰 깡통에서 나온 인조 제품이었다. (...) 위층에서는 한 번 사용한 시트를 세탁하지 않고 물만 축여 다시 다리미질을 하고는 침대에 다시 깐다는 지저분한 이야기가 있었다. (...)

그런데도 <X> 호텔은 파리에서 가장 비싼 열두 군데 호텔 중 하나였고, 손님들은 엄청난 가격을 지불했다.


ㅡ 이 소설이 조지 오웰의 자전 소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 하지만 만약 내가 서울의 일부 특급 호텔에서 변기를 닦은 수세미로 컵과 세면대를 닦고, 베갯잇은 빨지도 않은 채 먼지만 털었다는 뉴스 보도를 보지 못했다면, 조지 오웰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장소는 싸구려 여관이 아니라 특급 호텔이었다. 특급 레스토랑이라고 하여 다른 걸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가 먹을 것도 아닌데 뭐하러 위생에 신경을 쓰겠는가? 어떤 요리사는 코를 판 손으로 야채를 다듬고 음식 위에다 기침할 것이며 어떤 웨이터는 사타구니를 긁던 손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집어 테이블에 올려둘 것이다. 껍질 채 먹는 과일이나 야채를 깨끗이 씻을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 않다. 위생적인 직원이라고 급료를 올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야단을 맞지 않으면 다행 아닐까? 과일과 야채를 깨끗이 씻고 있는 직원이 듣게 될 말은 '쓸데없이 물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호통ㅡ초보 남편이 부엌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듣게 되는 가장 빈번한 말 중의 하나ㅡ일 가능성이 크다. 저급한 식자재는 또 어떠한가? '가정주부라면 시장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재료들이 요리사의 플레이팅과 향신료 덕에 근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집에서 먹는 '집밥'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상대적으로 저렴해서가 아니다. 오늘날의 중장년층은 외식을 포기하고 집밥을 먹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돈이 없어서 저렇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꼭 돈이 없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집밥을 통해 얻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것을 뽑아보라면 단연 위생과 건강이다. 집에서 하는 밥은 바로 '우리'가 먹을 것들이다. 식당에서 하는 밥이 '남'이 먹을 것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유일하게 깨끗하게 나온 음식은 직원과 호텔 주인이 먹는 음식이었다"라고 쓴 조지 오웰의 사례는 그 호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16.

"접시닦이가 현대적인 세계에서 노예들 중에 하나라는 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그의 일은 노예적이고 기술이 없다. 그는 딱 살아 있을 만큼을 보수로 받는다. 그의 유일한 휴일은 해고이다. 그는 결혼의 길이 막혀 있고 만일 결혼을 한다면 그의 아내도 일해야만 한다. (...) 이 순간에도 파리에는 학사학위를 가지고 하루 열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접시를 닦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게으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으른 사람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만일 접시닦이가 조금이라도 생각을 한다며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만한 여가가 없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놓는다. (...) 마르쿠스 카토는 노예가 자지 않을 때에는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예가 하는 일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 자체가 노예에게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는 아직도 잔존하고, 그런 정서가 산더미 같은 무익한 고역을 쌓아오고 있다."


ㅡ 이는 1930년대 파리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것이다. 이들에게 결혼의 길은 막혀 있다. 아들은 학위를 가지고도 온종일 접시를 닦는다. 사회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는 위의 상황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것이다. 물론 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졌다. 노동 시간이 줄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00여 년 전의 노동자들과 지금 노동자들의 삶을 비교해 보면,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노동의 질적인 면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게 된다. 또 다른 10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부자와 빈자의 질적 차이는 크게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견해는ㅡ조지 오웰 스스로 밝힌 바대로ㅡ새로울 것이 없는 "대체로 진부한 견해임에는 의문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개선이 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점이다.



17.

"검진은 단순히 마마를 앓는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었고, 일반적인 건강 상태를 전혀 살펴보지 않았다. (...) 가슴에 붉은 발진이 덮여 있는 것이 보였고, 나는 (...) 그것이 마마가 아닌가 하고 더럭 겁이 났다."


ㅡ 마마는 천연두의 이명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질병이다. 지금껏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천연두로 사망했다. 아스텍 시절, 2,000만 명에 달했던 멕시코의 인구가 160만 명으로 곤두박질친 것도 스페인의 물리적인 공격이 아니라 천연두 때문이었다. <총, 균, 쇠>의 저자에 따르면, "미국의 백인들은 '호전적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킬 목적으로 천연두 환자가 쓰던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다."*** 아스텍인들에게 천연두 면역력이 없다는 걸 알고는 무기로 이용한 것이다. 그만큼 천연두는 무서운 전염병이었기에 소설 속의 주인공이 특히 마마를 겁내고 있다. 



18.

"형편없는 음식점의 가장 확실한 표시는 외국인들만이 드나든다는 것이다."


ㅡ 정확히 표현하면 외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19.  

"그는 노인이 일하는 것을 보면 "제기랄, 저 노인네가 신체 건강한 사람들 일 못하게 만들고 있네."라고 했고, 또 그것이 소년이라면 "저 어린놈이 우리 입으로 들어갈 빵을 빼앗고 있어."라고 했다. 그에게는 모든 외국인들이 "저 망할 놈의 데이고"였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실직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


그렇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천성이 관대하고 마지막 남은 빵 부스러기도 친구와 나눌 줄 알았다. (...) 그러나 2년 동안의 빵과 마가린 식사가 그의 수준을 가망 없이 낮춰버렸다. 그런 불결한 모조 식품으로 생활한 나머지 그는 정신과 육체마저 열등한 재료로 구성되어 버렸다. 그의 인성을 파괴한 것은 영양실조일 뿐이지 타고난 악덕이 아니었다."


ㅡ 1930년대의 상황이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놀라울 것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계급 간, 계층 간, 민족 간의 혐오가 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지금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은 그의 반 이민정책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불안 심리를 키운다고 보는 것이다.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지지층인데 이들은 일자리를 매우 중요한 이슈로 여긴다. 민주당의 유색인종 지원이 백인 서민층에 역차별을 가하고 있다고 느낀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런 자본, 성별, 계층 간의 대결을 교묘히 활용해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술수가 무척 뛰어나다.


조지 오웰이 부랑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의 정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어떤 국가에서 빈민 구제에 힘쓰는 것은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바로 위와 같은 이해ㅡ가난이 인격을 파괴한다ㅡ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국가는 빈민을 구제하기보다는 격리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런 국가들은 가난을 나태와 탐욕의 증거로 본다. 따라서 빈민들을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천성인 나태와 탐욕으로 인해 다시 가난으로 떨어질 게 뻔하므로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국가의 경제가 악화될수록 이런 시각이 우세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진보적인 시각에서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가난이 그들을 그토록 이기적으로 만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부를 이기심과 이타심이 나누어지는 척도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독실한 종교인들은 자신의 숙식을 간신히 해결할 정도만 되어도 타인을 생각할 것이고, 평범한 시민들은 집 한 채와 차 한 대, 일주일에 평범한 외식 두세 번, 일 년에 한 번의 해외여행, 노후를 대비할 연금 정도는 준비가 되어야 타인을 생각할 여유가 생길 것이다. 탐욕스러운 부자들은 10억의 부동산과 5억의 현금을 보유하고도 남을 생각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 간의 경계를 나누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0.

"나는 런던을 무수하게 와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날까지 런던에서 가장 나쁜 점의 하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앉는 것조차 돈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파리에서는 돈이 없고 공원 벤치도 없다면 길바닥에 앉으면 된다. 런던에서는 길바닥에 앉으면 어떻게 되는지 하늘만이 아시는데, 아마 감옥에 갈 것이다."


ㅡ 난 이 단락이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조지 오웰은 왜 길바닥에 앉으면 감옥에 가게 되는지를 설명해 놓지 않았다. 얼른 추정 가능한 것은 지정되지 않은 곳에 앉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부랑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길거리에 앉아 있으면 도시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발견 즉시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보내 버렸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17~18세기의 전 유럽에 퍼져 있던 강제 수용의 열풍이 이 시기의 런던에는 아직 남아 있었단 말인가? 당시 유럽인들은 광인뿐만 아니라 부랑자, 방종한 자들 역시 모두 감옥에 보내버렸는데, 일할 능력이 없는 자들을 미치광이 비슷하게 취급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가난은 '광기'의 결과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와 감옥에 대한 방대한 글을 남겼는데, 그의 글에 따르면 당시의 "모든 기독교인은 (...) 가난한 사람을 동정심의 원인인 물질적 빈곤 때문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을 자아내는 영적인 비참함 때문에 국가의 쓰레기 같은 존재"****로 보았다.


몇 달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정치인들이 길바닥에 앉거나 누우면 벌금을 물리는 조례안을 내놓아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를 보면 20세기 초의 런던에 그런 비슷한 종류의 법이 있었을 거라고 가정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지금도 그러한데 인권이 바닥이던 시절엔 오죽했겠는가. 당시의 런던 경찰은 단순히 "빈둥거린다는 혐의로 떠나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었다.


길바닥에 앉는 행위가 교양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공원 같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면 길바닥에 앉는 법이 거의 없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했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은 외국인이 우리나라 도심을 걷다가 길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을 굉장히 놀라운 시각으로 관찰했는데, 그 프로그램은 그 외국인들을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외국인이었기에 그런 후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벤치가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길바닥에 앉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다는 주위를 신경 쓰지 않는 특이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건 내 경험담이기도 하다. 음악에 심취해 있던 대학생 시절, 난 음악 동아리 회원들이 모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길바닥에 주저 앉은 적이 있다. 언제 올지 알 수도 없는 버스를 뭐하러 힘들게 서서 기다리나, 하는 게 내 생각이었는데ㅡ이 또한 젊음의 특권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ㅡ한 여자 후배가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말했다. 보기에 이상하니까 그렇게 앉아 있지 마시라고 말이다. 


어떤 이들은 자유롭게 사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위해선 그 누구도 쉽게 지불할 수 없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21.

"이 안에서는 흑인과 백인까지 모든 인종이 평등한 조건으로 어울렸다. 거기에는 인도인들도 있었고, 내가 그중 한 사람에게 서툰 우드두어로 말을 걸었더니 그 사람이 나를 "툼"(tum)이라고 불렀는데, 여기가 인도였다면 부르르 떨게 할 말이었다.


ㅡ "툼"(tum)은 친한 친구 사이에서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당시 인도는 영국에게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래서 영국인에 비해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는 상태여서 영국인을 함부로 '너'라고 부를 수 없었다.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영국이었으니 망정이지 인도였으면 그 인도인이 어떤 대접을 받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데, 조지 오웰은 그런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2.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가끔씩 길바닥에 나체화 모작을 그렸어. 처음에 그린 곳이 (...) 교회 앞이었어. 검정옷 차림을 한 사람이, 아마 교회 위원이었는지 그랬나 봐, 미칠 듯이 화를 내면서 밖으로 나왔어.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 앞에서 우리가 그런 외설을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 사람이 소리치더군. 그래서 그림을 물로 씻어 지웠지. 그 그림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모작한 것이었어. 또 언젠가 강변 둑길에서 똑같은 그림을 모작했지. 지나가던 경찰관이 그 그림을 보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그리고 걸어가서 크고 편평한 구둣발로 문질러 지우더라구."


ㅡ 교회의 간부가 나체화를 보고 성을 내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교회는 음란한 것을 거부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길거리의 화가가 그린 것은 단순한 누드화가 아니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모작한 것이었다. <비너스의 탄생>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보티첼리의 그림은 제목부터 '비너스'의 탄생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비너스는 이교도의 신이다. 어떻게 이교도의 신이, 그것도 나체의 모습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버젓이 그려질 수 있었을까? 미켈란젤로도 수많은 나체의 형상을 그렸지만 보티첼리처럼 이교도의 신을 미화하여 그리지는 않았다. 그러니 보티첼리는 화형까지는 아니더라도 파문을 당하거나 아니면 저 위의 길거리 화가처럼 교회 간부의 지적을 받은 후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지워버려야 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신플라톤주의와 연관이 깊다. 이제 신플라톤주의는 사라졌지만 나체를 터부시하는 건 여전하여 근대에는 마네와 쿠르베를 위시로 많은 화가들이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진화와 진보를 자랑하는 오늘날도 다를 바는 없어서 몇 년 전 러시아는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스상에 바지를 입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며 중국의 CCTV는 다비스상을 방송에 내보낼 때 성기 부분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집은 그런 외설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던 당시 교회 간부의 입장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 어쨌든 그는 누드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감옥에 수감되지는 않았으니 근래의 현실보다는 나은 셈이다. '네 몸은 그 자체로 음란하며 네 몸은 그 자체로 죄악이다'라는 코드는 우리 저변에 널리 퍼져 있고 결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걸인의 사회적 지휘에 관해 해둘 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과 교제를 하고 그들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회가 그들에게 보이는 이상한 태도가 문득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걸인과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걸인들은 별개의 인종이고, 범죄자나 매춘부처럼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지만, 걸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걸인은 기생충이고 본질적으로 무가치하다. (...) 걸인은 사회적 궂은살에 불과하여, 지금은 세상이 자비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관용을 받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경멸할 만한 존재이다. (...)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걸인은 왜 경멸당하는가? 실제로 걸인은 보편적으로 경멸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걸인들이 웬만큼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일이 유익한가 무익한가, 생산적인가 기생적인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구되는 것은 그 일이 수익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뿐이다. (...) 돈은 미덕의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 기준에서 걸인은 낙제이고, 이것 때문에 그들은 경멸당한다. 구걸을 해서 일주일에 10파운드라도 벌 수 있다면 걸인은 즉각 남부끄럽지 않은 직업이 될 것이다. (...) 걸인은 대부분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팔지 않는다. 다만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실수를 한 것뿐이다."


ㅡ 전술하였듯이 17세기의 유럽은 걸인들도 마구 잡아들여 감옥에 가두었다. 당시의 걸인들은 범죄자, 특히 미치광이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조지 오웰의 시대에 들어서 걸인들은 감옥에 수감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미치광이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조지 오웰의 분석처럼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현상에 다시 한번 주목하는 이유는 근래 들어 '가정주부'에게도 비슷한 징후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가정주부는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했다. 다만 몇십 년 전만 해도 가정 노동은 상당히 고되었고 동시에 여러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수익은 내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인정을 받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가정주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얼핏 보면 가정주부의 형편이 놀랍도록 좋아진 것이다. 예전처럼 시집살이하지도 않고 애를 많이 낳지도 않으며 아예 낳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정 기기들이 놀랍도록 발전하여 자동 청소기와 세탁 건조기 등의 도움으로 손쉽게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가정주부는 할 일이 별로 없는 참 손쉬운 직업이라는 경멸 섞인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다. 바깥일에도 쉬운 일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는 것처럼, 반찬을 매번 사먹으며 편하게 가정일을 하는 주부들도 있는 반면, 집안을 매일 쓸고 닦으며 반찬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가정주부들도 있다. 기기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예전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을 지금은 신경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하녀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고되었던 60~70년 대의 서민 가정주부와 비교하여 지금의 가정주부가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20세기 초의 청소년 노동자들을 가리키며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행복한 줄 알라고 훈계하는 것처럼 비교의 대상이 잘못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정일은ㅡ마치 현대의 전산 보안 업무처럼ㅡ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그 일의 다양성과 중요성을 알 수 있는데, 일단 문제가 터지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만다. 가정이 다시 평상시로 돌아가면 우리는 변기는 원래 그렇게 깨끗하고, 상은 손쉽게 차려지며, 아이들은 가만 놔두어도 알아서 큰다는 마법의 세계로 돌아가고 만다. 마치 인터넷 뱅킹의 세계가 무사태평하게 평안히 돌아가며, 정보보안 담당자는 할 일이 없는 놈팡이처럼 보이듯 말이다. 어린이가 잘 커서 성인이 되면 아이가 스스로 노력하여 그렇게 된 것으로 칭찬하지만,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집에서 뭐하고 있었느냐'는 비난이 가정주부에게 쏟아진다.


결국 가정주부가 치러야 하는 가장 큰 대가는 무가치하다는 평이다. 실제로 돈을 버는 직장인들은 최소한 무가치하다는 평을 듣지는 않는다. 가정주부를 향한 가혹한 평은 가정주부를 상당히 위축시키며 그를 자기 비하의 세계로 이끈다.


난 가정주부를 향한 경멸이 점점 가속화되리라고 본다. 아이가 없는 가정은 특히 더 그러할 것이다. 결혼생활이란 사랑이 있어도 어려운 것인데 이것저것 따지고 재며 결혼한 가정의 가정주부라면 앞날이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직업란에 '가정주부'라고 적는 것 자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우리의 인식이었다. 


결혼이란 애초에 손해 보는 장사다. 결혼하고 매일 같이 다투는 이유는 결혼을 장사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결혼해서 이득을 볼 줄 알았는데 손해를 봐서 화가 나기 때문이다. 이제 다투기까지 했으니 괜히 결혼해서 엄청난 손해를 본 셈이다. 결혼을 장사로 생각한다면 매번 이득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걸 인정하기 싫다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했다. 이 사회에 미혼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그런 식의 경멸이 서로에게 쌓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왕지사 결혼을 했다면 바깥일에서 얼마의 돈을 벌어오는지를 두고, 가정일이 얼마나 손쉬운지를 두고 서로의 득실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매사에 그런 걸 따지고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하지만 손익 계산을 관두기가 쉽지 않다. 오늘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싸움 소식을 듣게 되면 난 인간이 천성적으로 장사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썼던 것처럼 인간을 두 범주, 즉 예술가와 상인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자. 대부분의 사기꾼과 장사꾼 들은 예술가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걸인은 수익을 내지 못하기에 낙제이고, 그것 때문에 경멸당한다. 가정주부와 비교하여 좋은 점이라면 그 시선을 두고 누구와 매일 같이 다툴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전우용 글 <서울은 깊다> (돌베개, 2008), 313쪽

** "1960년 전국의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서울에서 우물물 사용자는 전 가구 수의 35.7퍼센트, 공동 수도를 사용하는 가구는 38.8퍼센트였고, 개인 수도를 사용하는 가구는 불과 23.8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수도가 집집마다 가설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압이 낮아 수도가 끊기기 일쑤였다." ㅡ전남일 글, 그림 <집> (돌베개 2015), 79쪽 

*** 재레드 다이아몬드 글, 김진준 옮김 <총, 균, 쇠> (문학사상사 2013), 291쪽

****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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