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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writes Feb 22. 2017

5. 서른, 삼국지를 읽지 않은 아빠.

      나는 울 아빠를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하기에는 글쎄... 좋아한다고 말하는 쪽이 내가 가진 담백한 마음의 둘레를 재기에 꼭 맞다고 느낀다. 존경한다고 하기에도 글쎄... 나는 존경이라는 엄숙한 두 글자 앞에서 가장 먼저 아빠를 떠올리긴 한다. 3명의 가족을 끌어안고 7,8,90년대를 지나오며 얻었을 아빠의 굳은살처럼 단단한 질감도 함께. 하지만 그 복잡한 시대를 건너오며, 아빠는 때때로 나에게 미운 얼굴과 감추고 싶은 얼굴도 보여준 적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아빠에게 쏟을 수 있는 가장 애틋한 표현은 바로 이것. 나는 아빠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또 좋아한다.


가방에 아기 인형이 빼꼼. 문득 남편이 아빠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올려다본 아빠의 얼굴은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에 분노할 때도, 무언가에 기뻐할 때도, 아빠의 몸에는 에너지가 가득했다. 목욕탕에서 지갑을 도둑맞았을 때의 얼굴과 내가 던진 농담이 소위 '핀트'에 꼭 맞아서 웃음이 팍 터졌을 때의 얼굴. 그 두 얼굴은 우리 집 전체의 공기를 정 반대의 것으로 만들곤 했다. 그 정도로 아빠에게는 커다란 에너지가 있었고, 그 에너지는 꽤 많은 것들을 좌우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힘 없이 웃으신다. 아쉽게도 '힘 없이' 웃으신다. 빠져나온 곳이 있으면 도착한 데가 있어야 하는데, 아빠의 얼굴을 가득 채우던 힘들은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말투가 아주 공손해졌고, 또 언제든 고개를 숙일 수 있을 만큼 목 주변이 힘없이 유연해졌다. 어쩐지 일부러 힘을 빼고 수줍게 웃는 아가씨처럼 보일 때가 있을 정도로.


힘으로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좋은 시절이라는 뜻.


     아침마다 세면대 거울에 나를 비춰 보듯이, 꼬박꼬박 나 자신에게 반사되어 비춰지는 아빠의 성격. 물려받은 유전자를 더듬어 짐작해보건대, 울 아빠는 어쩌면 힘을 잃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공들여 키운 두 딸이 이제는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컨트롤할 수 없을 만큼 먼 세상으로 나가버렸으니까. 예전처럼 울타리를 튼튼하게 고친다든가, 길에 박힌 돌부리를 다 솎아내 버린다든가 하는, 물리적인 힘으로는 더 이상 우리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몸에서 힘을 빼고,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하셨는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저 멀리 서울에까지.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화학적인 방법으로.  


지금은 아기를 위해 뭐든 쉽게 구해다 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어떤 커다란 일이 닥치면 우선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과 힘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하다 하다 스스로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었을 때. 이건 도저히 내 능력 밖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모든 것에서 손을 떼고, 절대적인 누군가에게 빌게 된다. 종교와는 상관없이, '제발 살려주세요' 혹은 '비나이다 비나이다' 로 시작하는 기도문처럼 말이다. 아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두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공부를 하러 가버렸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둘째 치고, 서울의 복잡한 부동산 시스템, 단위가 다른 돈 계산,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식의 연애, 어려운 대학 공부, 취업과 졸업은 또 어쩌려는지... 걱정이 될 때마다 아빠는 어쩌할 도리가 없었을거다. 이제 딸들은 당신이 그려놓은 원의 바깥 저 멀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빠. 외롭게 뿌리내린 콤파스의 기둥에 남겨져, 일종의 기도와 같은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주 은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마치 오늘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내 딸에게 일어날 크고 작은 사건을 좌우하는 힘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인 양 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서운함이 없게 함으로써. 또, 허전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미 깨끗한 방바닥을 한 번 더 말끔히 닦아냄으로써. '이 성실함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 두 딸의 하루가 무탈하게 해주십시오.' 그런 아빠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책 읽는 아빠와 딸. 나에게는 좀 낯선 모습이다.


     아기를 키우며, 내가 가장 꾸준히 지켜보게 되는 관계는 바로 남편과 딸의 사이. 그 둘을 관찰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와 나 사이의 소소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삼국지'. 왜냐하면, 울 아빠는 삼국지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울 아빠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이다. 책보다는 신문을, 신문보다는 TV를 보며 쉬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었던 아빠. 돈을 벌러가는 차 안에서는 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트로트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셨다. 말 그대로 '블루칼라'임을 증명하는 그 파란색 작업복을 보고 자란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는 삼국지 전 권을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저 동화책이 백과사전이 되고, 위인전이 된단 말이지? 삼국지는 되지 않아도 괜찮아.


     때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시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꼰대 같은 선생님은 어느 맥락에선가 이렇게 말하셨다. "삼국지를 꼭 읽어라.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 너희 아빠들도 다 읽었을 거다. 안 읽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무슨 반항심에서였을까. 나는 "우리 아빠는 안 읽으셨는데요"라고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조금씩 웃었다. 저 꼰대 같은 선생님, 우스운 꼴 좀 당해보라지. 속이 다 시원했다. 나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선생님은 "내 휴대폰으로 아빠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봐라. 분명히 읽었을 거다. 아니면 식권 한 장 준다." 식권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살면서 식권이 문제가 될 정도로 가난해 본 적이 없다. 이것도 물론, 아빠의 노동 덕분이다.) 선생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여보세요?' '아빠 난데. 아빠 삼국지 안 읽었지?' (분명히 반 말을 했을거다.) '어.. 안 읽었는데...' '응 알았어' 철컥. "안 읽으셨다는데요?" 반 전체가 웃었다. 선생님은 머쓱하게 웃으며 나에게 식권을 한 장 건넸다. 그런데 나는 속이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반대로, 점점 답답해지고 있었다. 뭐지,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내가 이해하고, 좋아하는 울 아빠. 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되신 것이 마음 깊이 기쁘다.


     그 뒤로 수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마음속 어딘가가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자존심이 구겨진 것도 아니고, 미안함이 왈칵 쏟아진 것도 아닌데... 뭐라고 이름 짓기 어려운 감정에, 하나의 고정된 표정을 짓고 있기가 곤란했다. 아빠는 끊어진 딸의 전화 뒤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힘이 빠지도록 솔직한 아빠의 대답이 소화되지 못하고, 나의 목덜미쯤에 턱 하고 얹혀있었다. 친구들의 웃음도 꼭 선생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얹힌 자리가 따끔따끔 아렸다. 수업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재빨리 선생님에게 식권을 돌려드렸다. 아마도, 뭔가를 보상받겠다는 마음으로. 이 식권을 돌려주면, 오늘의 전화 통화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마음으로.

  

아직은 우리가 찍은 콤파스 그 밑에서 올망졸망 귀엽게 크는 아기.


     울 아빠는 한 페이지의 삼국지도 읽지 못했지만, 교육에 관해서는 단 한 페이지도 건너뛰지 않고 성실히 나를 키우셨다. 현장에서 일하시며, 내가 서울의 아주 유명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비싼 어학연수를 다녀올 때까지 학비를 다 대셨다. 손녀가 생긴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일을 하시며 자식을 살뜰하게 챙기신다. 아직도 시골에서 보내온 아빠의 택배 상자 안에서는 늘 두꺼운 용돈 봉투가 들어있을 정도이다. 어느 위인이 남긴 명언을 나에게 설명해줬다거나, 어느 에세이집이라도 한 권 추천해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아빠. 하지만 나의 책장이 언제나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게는 해주셨다. 나는 믿는다. 아빠는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삼국지'든 '논리야 놀자'든 '먼 나라 이웃나라'든 나에게 필요한 책을 읽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가볍든 무겁든, 길든 짧든, 어찌되었든 글을 쓰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 덕분에.


     그 아빠의 그 딸이라는 말처럼, 나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와 비슷한 남편을 만나,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아기를 키우며 우리들의 지혜가 모자란 날이 있고, 또 요령으로 대충 넘어가는 날이 있다. 과연, 우리의 양육방식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내가 아빠에게서 얻은 (그 대단한 삼국지보다 더 대단한) 조언은 바로, 내가 가진 재료로 쌓아 올리는 '성실함'.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쩔 도리가 있나. 우리가 겨우 쥐고 있는 작은 재주로 앞에 놓인 페이지를 넘어가 보자.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또 멀어져야만 하는 딸을 위해 기도하는 성실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아기를 지켜줄 수 있는 능력도 지식도 명예도 돈도 ... 필요한 만큼 곁에 둘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너무 걱정하지 말기로 한다. 나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아빠의, 삼국지를 읽지 않은 딸이지만, 어찌저찌 어른이 되어 글을 쓰는 일로 먹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지나치게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고맙습니다.

제가 아빠를 정말로 좋아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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