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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리 Sep 29. 2019

만 서른 살이 넘었다고 입국 거부당하는 건 아니었다

#도쿄워홀일기02


나이가 많다고

입국 거부하면

어떡하지?



여행과는 다른 낯선 느낌


이번 출국이 여행이었더라면 즐거운 기대감을 안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을 텐데, 이상한 불안감이 하나 둘 머릿속을 맴도는 바람에 출국 일주일 전부터 매일 잠을 설쳤다.


'나이가 많다고 입국 거부를 하면 어떡하지?',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힘들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면 창피해서 어쩌지?'등등 걱정들은 출국하던 날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떠나기 얼마 전,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와 마지막으로 만난 일이 있었다.

서로 출국 준비는 잘 되어가는지에 대해 얘기하던 중 친구가 '출국 준비하는 게 힘들진 않지만, 어딘가 걱정되는 게 떠나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라는 말을 했었다.


불안했던 나의 마음도 그 말처럼 편안해진 걸까?

비행기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두 시간 동안 일주일 만에 모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저기,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습니다만


잠에서 깨어보니 나리타 공항에 거의 도착해가고 있었다.

미리 작성해둔 입국신고서와 여권을 챙기고,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입국 심사를 할 때 재류카드를 함께 만들어준다고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걸 감안해 일부러 앞자리로 예약하기도 했다.


비행기의 출입구가 연결되고 짐을 챙겨 부지런히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대로 “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는데요..”라며 말을 거니 한쪽에 앉아 있으면 안내해 주겠다며, 다른 사람들의 입국심사를 먼저 챙겨주었다.


일찍 나온 게 의미가 없게 되었다.

조금은 당황해 멍하니 다른 사람들의 입국심사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공항의 직원들이 오가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멀뚱히 앉아 있는 나를 챙겨주긴 했지만, ‘설마, 진짜 나이 많아서 입국 거부당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불안감이 몰려왔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의 입국심사가 끝나고 심사장엔 나와 직원들만 남았다.

그러자 한 직원이 이쪽으로 오라며 나를 심사대로 데리고 갔다. 불안감을 안고 여권을 펼쳐 워킹홀리데이 비자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게 제 워킹홀리데이 비자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심사관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처음이었는지 나보다 더 긴장한 모습으로 나를 안내해준 직원에게 설명을 들어가며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몇 분 후 여권과 재류카드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대한 안내지를 내게 건네주며 “읽어보시고, 14일 이내에는 주거지 등록을 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어쩌면 그들에겐 내 나이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 워킹홀리데이를 지원하기 전 망설였듯, 다시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었다.


나의 재류카드


생각보다 쉽게
일본 체류자가 되었다


아마 재류카드도 발급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시간이 걸릴걸 우려해 한쪽에 기다리라고 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던데...


아무튼 긴 시간 기다란 탓에  입국 전부터 진이 다 빠진듯했다.

짐을 찾으러 나와보니 나의 캐리어와 보스턴백만 컨베이어 벨트에 덩그러니 놓여 돌고 있었다.






주거지는

미정

입니다만


재류카드를 만들 때, 사진을 새로 받을 줄 알았지만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할 때 접수한 사진 그대로를 넣었다.

접수할 때 시간이 없기도 하고, 사진관까지 가서 찍었는데 떨어지면 아까울 것 같아 집에서 대충 찍어서 제출했던 것을 그대로 재류카드에 프린트해주었다.


어디 가서 보여주기 좀 그런데,
사진 바꾸진 못하겠지...?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주거지는 미정으로 적혀있다. 물론 주거지가 아직 미정인 것은 맞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적혀있어 괜히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국에서도 살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외국인인 나를 쉽게 들여보내 줄 곳이 있을까 싶었다. 한국에서 미리 쉐어하우스를 알아보았는데, 프리랜서처럼 신원을 보증해줄 회사가 없는 경우 입주를 거부하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에 더욱이 불안했다.


그래도 조금은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쉐어하우스 한 곳의 견학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긴 한데 막상 가보면 어떨지 모르니, 호스텔에 지내는 동안 다른 곳을 더 찾아보아야 할 것 같았다.


기대와 걱정을 오갔던 도쿄에서의 첫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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