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그리고 진저비어

진저비어, 생강과 발효가 만든 짧지만 진한 역사

by Solynn
가끔 불현듯, 평소엔 잘 먹거나 마시지 않던 것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게 진저비어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시중에서 간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굳이 집에서 발효까지 해가며 만들어 마시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시판 진저비어는 내 입맛엔 너무 달았고, 또 발효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에 이상하게도 꽂힐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렇게 진저비어에 푹 빠져버렸다.



진저비어는 맥주일까?

진저비어는 영국과 북아메리카에서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 금주법 시대까지 유행한 음료이다. 이름에 'Beer'가 붙어있지만 사실 맥주라기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매우 낮은 '스몰비어(Small Beer, 0.5-2.8% 알코올 함류)'의 일종이다. 맥주가 보리나 밀과 같은 곡물을 발효시켜 만들었다면, 진저비어는 생강과 설탕을 발효시켜 만든 음료다.


중세시대부터 19세기 무렵까지 유럽에서는 물보다 발효 음료를 더 선호했는데, 당시 수질이 워낙 좋지 않아 물을 마시는 것이 위험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일 제조에 사용되었던 맥아를 이용해 발효음료를 만들었는데 일반 맥주에 비하면 품질과 풍미가 떨어졌지만 낮은 도수로 안전한 물 대용으로 소비되었고, 진저비어 역시 그런 음료 중 하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알코올 도수가 무려 11%에 달하는 진저비어도 있었으나, 1855년 영국 의회가 수출하는 음료의 도수가 20%를 넘을 경우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제정하면서, 제조업자들은 점차 알코올 함량을 낮추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진저비어는 알코올 도수가 거의 0%에 가깝다.


오래된 재료로 만든, 짧은 역사의 음료

생강을 이용한 음료는 고대로부터 존재했지만, 우리가 말하는 ‘진저비어’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진저비어는 18세기 중반 영국 요크셔에서 처음 발명되었으며, 진저에일은 이후 19세기 중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개발되었다.


진저비어의 탄생은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요했던 두 가지 핵심 재료인 생강과 설탕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남아시아에서 자생했던 사탕수수와 생강은 향신료 무역을 통해 유럽에 소개되었고, 이를 얻기 위한 유럽의 식민지 개척과 맞물려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영국은 자메이카를 포함한 열대 기후를 가진 캐리비안 식민지에서 생강과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통해 본격적인 향신료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655년 영국은 캐리비안에서 가장 풍부하게 생강을 재배할 수 있었던 자메이카를 지배하게 되는데, 지금도 최고의 품질로 유명한 자메이카 생강이 영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생강을 이용한 다양한 영국 요리가 발명되었다.


이후 영국인 이주자들이 많이 거주하게 된 북아메리카에서도 진저비어가 유통되기 시작하며 진저비어는 금주법 시대까지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는다. 초창기 진저비어는 발효를 마친 뒤 코르크 마개가 달린 도기 병에 담겨 판매되었다.

Mid-late 19th Ginger Beer bottles
진저비어의 몰락과 탄산음료의 등장

시대를 풍미한 대중음료인 진저비어의 인기는 19세기 중반 이후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 배경에는 탄산수의 발명이 있다. 인공적으로 물에 탄산을 주입하는 기술은 영국에서 18세기 중반 무렵 산소 및 여러 기체를 발견한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1733-1804)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후 1783년 요한 야콥 슈웹프(Johann Jacob Schweppe, 1740-1821)가 세운 음료회사인 슈웹스(Schweppes)를 시작으로 소프트드링크—탄산음료 산업이 본격화된다. 그 결과, 진저에일을 포함한 다양한 소프트드링크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진저비어는 점차 음료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진저비어와 진저에일, 뭐가 다를까?

오늘날에는 대량생산으로 진저비어와 진저에일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사실 두 음료는 제조 방식부터 완전히 다르다. 우선 진저비어는 생강과 설탕의 '발효'과정을 통해 자연적으로 가스가 발생하는 음료다. 반면 진저에일은 탄산수에 생강향과 감미료를 첨가해 만든 인공 탄산음료다. 진저비어에는 생 생강이 들어가기 때문에 향이 훨씬 강하고, 당도도 진저에일보다 낮은 편이다. 즉, 덜 달고, 더 스파이시한 생강의 풍미를 즐기고 싶다면 진저비어가 좋은 선택이다.


진저비어, 어떻게 만들까?

진저비어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진저비어 플랜트(Ginger Beer Plant) 혹은 스코비(SCOBY)라고 불리는 박테리아와 효모의 공생체를 이용한 발효방식이다. 이 방법은 콤부차 발효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젤리 같은 진저비어 플랜트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 방식으로 만든 진저비어를 올드 패션드 진저비어라고 하며, 전통 제조방식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두 번째는 효모를 이용한 방식으로 진저버그 스타터(Ginger Bug Starter)라고 불리는 천연 효모 발효 방법과 드라이 이스트를 이용한 간편 발효 방법으로 나뉜다.

해외의 자료와 블로거들은 진저비어 플랜트를 사용하는 방식을 더 '전통적인'방법으로 많이 소개하지만 진저비어라는 이름의 유래— 즉, 도수가 낮은 스몰 비어(Small Beer) 제조 방식과의 유사성을 생각한다면 천연 효모인 진저버그로 발효시키는 방법이 오히려 이름에 더 잘 어울리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강, 물, 설탕으로 만드는 진저비어 레시피

생강, 물, 설탕—이 세 가지만 있으면 진저비어를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재료는 모두 갖춘 셈이다. 여기에 조금의 시간과 정성만 더하면 된다. 이 기본 재료들을 바탕으로 먼저 진저버그(Ginger Bug)라는 발효 스타터를 만들어야 한다. 정성스럽게 발효시킨 진저버그는 마치 시간과 맛을 함께 담아내는 작은 실험 같기도 하다. 진저비어의 시작, ‘진저버그(Ginger Bug Starter)’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진저버그 스타터 만들기

- 재료

물 500ml

잘게 다진 생강 22g (유기농 생강이라면 껍질을 그대로 사용할 것)

설탕 28g (비정제 설탕 혹은 흑설탕 사용 가능)


1. 소독한 유리병에 재료를 다 넣고 잘 섞은 후 뚜껑대신 공기는 통하지만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면보자기로 병 입구를 막아준다.

2. 적당히 그늘지고 따뜻한 곳에 두고 24시간마다 생강 22g과 설탕 28g을 추가해 주면서 잘 섞어준다.

3. 보통 3-4일 정도 지나면 탄산이 생기며 발효되는 소리가 들린다.

4. 발효가 활발해지면 냉장고에 보관한다. (이때는 뚜껑을 덮어줘도 된다)

5. 냉장고 보관 시 1주일에 1번 생강 22g과 설탕 28g을 추가해 주면 된다.

6. 진저비어를 만들어서 양이 줄거나 설탕이 더 이상 녹지 않으면 정수된 물을 적당량 넣어주면 된다.


스타터가 어느 정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면 본격적으로 진저비어를 만들 수 있다.


진저버그 스타터를 이용한 진저비어 만들기

- 재료 (750ml 병 3개 분량 정도)

물 1.9L

레몬 2-3개

진저버그 스타터 110g (생강 및 액체 포함한 무게)

설탕 273g

생강 54g

* 기호에 따라 향신료 추가 가능 : 카르다몬, 스타아니스(팔각), 클로브(정향)

* 개인적으로 참고한 레시피의 설탕과 생강 분량이 맞지 않아 조절함 - 설탕 90g, 생강 80g


1. 냄비에 물을 넣고 분량의 설탕과 생강을 넣고 끓여준다.

(만약 향신료를 추가한다면 같이 넣고 끓이는 것을 추천)

2.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5-8분 정도 더 끓여준 뒤 실온 정도로 식힌다.

3. 끓인 액체가 충분히 식으면 110g의 진저버그 스타터와 레몬즙을 넣고 잘 섞어준다.

4. 미리 소독한 병에 섞은 액체를 체에 걸러가며 담는다.

※ 주의 : 병 끝까지 액체를 담지 말고 6cm 정도 여유를 남겨둔다.

5. 2-3일 정도 실온에서 발효시킨 후 냉장보관. 3일 차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 뚜껑을 열어 가스를 빼주어야 한다.

(가스 안 빼주면 나중에 샴페인처럼 폭포같이 쏟아지는 진저비어를 경험할 수 있다.)


비고

1. 병뚜껑을 열었을 때 가스 빠지는 소리가 난다면 발효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신호. 이 소리가 나면 진저비어를 마실 수 있지만 조금 더 탄산이 강하기를 원한다면 조금 더 발효를 시키면 된다. 매일매일 맛과 풍미가 달라지는 것을 비교할 수 있다.


2. 진저버그를 이용한 진저비어는 시중에서 파는 진저비어와 달리 진저버그 특유의 살짝 쿰쿰한 맛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향신료를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위에서 언급한 세 향신료 중 스타아니스와 클로브는 향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만 넣는 것을 추천한다.


3. 진저비어를 만들 때 생각보다 레몬즙의 존재와 생강과 설탕을 넣은 물을 팔팔 끓이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물이 팔팔 끓지 않았거나 레몬즙을 넣지 않을 경우 간혹 콧물 같은 농도의 액체로 발효가 되는 경우가 있다. 몸에 해롭지 않은 유산균인 페디오코커스 (Pediococcus)라는 미생물의 번식 때문인데 맥주나 누룩을 이용한 발효로 술을 만드는 경우 가끔 보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발효를 도와주기 때문에 사워크라우트나 치즈, 요구르트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맛이 굉장히 쿰쿰하고 뭔가 찝찝하기 때문에 만약 진저비어가 발효 도중 젤리처럼 변했을 경우에는 다시 처음부터 만들면 된다.



더운 여름, 얼음잔에 가득 채운 진저비어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순간이다. 작은 병 속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기포처럼, 향신료의 세계도 시간 속에서 천천히 그 깊이를 드러낸다. 생강에서 시작된 이 여정을 다음에는 또 어떤 향이 이어줄까?


References

https://en.wikipedia.org/wiki/Ginger_beer#cite_ref-Sprat_2-0

https://madame.lefigaro.fr/cuisine/tout-savoir-sur-la-ginger-beer-la-boisson-rafraichissante-de-lete-190719-166156

https://campusarch.msu.edu/?p=5117

https://www.athirstforfirsts.co.uk/post/first-fizzy-ginger-ale

https://abetterbeerblog427.com/wp-content/uploads/2017/03/soft_drinks_-_their_origins_and_history.pdf

https://www.fermentingforfoodies.com/homemade-ginger-beer/

https://sramdin20.medium.com/ginger-b38cdc18cf71

https://beerandbrewing.com/dictionary/yiXZMDswJO/

https://fr.wikipedia.org/wiki/Pediococcus

https://en.wikipedia.org/wiki/Johann_Jacob_Schweppe

https://en.wikipedia.org/wiki/Joseph_Priestley

이미지 출처

https://millerandmillerauctions.squarespace.com/stories/2021/5/27/the-guelph-ginger-beer-bottles

참조한 레시피

https://youtu.be/LqPko6a3Wh4?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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