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 - 팜플로나
생각보다 침낭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일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전날 저녁을 먹었던 가게에서 스페인식 아침을 먹으며, 오늘 하루의 속도를 정하고 있었다. 여전히 왼쪽 무릎은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곳들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수비리를 벗어나니 공장지대가 나타났다. 이 지역에 크고 작은 바위가 많은 걸 보니 이곳도 무언가를 채굴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산길은 벗어났지만 급경사는 여전했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중, 너무 조심한 탓이었을까. 마지막 몇 계단을 남겨두고 오른쪽 발목을 크게 접질려 버렸다. 원래도 오른쪽 발목이 약한 편이라 늘 불안했는데, 꽤 심하게 접질렸는지 통증이 컸다. 일단 발목 테이핑을 단단히 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스포츠테이프 덕분에 팜플로나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었다. 왼쪽은 무릎이, 오른쪽은 발목이 아우성이다. 이번만큼은 걷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순례길이 지나는 작은 마을들은 대체로 순례자를 대상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친절한 편이다. 하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 쉴 곳 없이 걸어야 하는 구간도 적지 않다. 사유지를 넘나드는 길도 많다 보니, 프랑스 길이 아무리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루트라고 해도 자신의 땅이 매일같이 공공 화장실처럼 사용된다면 마냥 순례자들을 반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자라는 신분이 순례길 위에서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데, 유독 주변을 덜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일까.
순례길은 선택의 연속이다. 땡볕이지만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걸을지, 조금 돌아가더라도 자연 속을 걸을지. 힘들어도 능선을 따라 풍경을 볼지, 무난하게 평지를 걸을지. 이런 순간순간의 선택이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연히 들린 작은 성당에서 종탑에 올라 종을 쳐보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넘나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을 넘어 도시라 불러도 될 만한 곳에 도착했다. 팜플로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레(Arre)라는 곳이었다. 간식도 먹고 잠시 쉬어갈 겸 멈췄다. 더위에 지치기도 했고, 걷다 보니 발목이 화끈거리기 시작해 약국에서 소염제를 구입했다. 이곳에서부터 팜플로나까지는 잘 정비된 도로가 이어졌다.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한 줄기 휴식 같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공원을 빠져나오자 저 멀리 성곽이 보였다. 평소라면 힘들어도 둘러봤을 텐데, 스페인의 강렬한 오후 햇살 아래 그늘 한 점 없는 곳을 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만신창이가 된 무릎과 발목으로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팜플로나는 나에게 굉장히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비록 순례길 3일 차인 햇병아리에 불과하지만, 순례길이 가능한 한 근처 마을과 볼거리를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길 또한 우회하더라도 멋진 성문을 통과하게 되어있었다. 프랑스 문(Portal de Francia)리고 불리는 이 성문은 16세기에 준공된 것으로, 당시부터 프랑스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문이었다. 보통 지금까지 남은 중세 성문은 해자를 건널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콘크리트로 보강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도르래로 여닫는 나무다리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성문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도시의 입구로 들어가는 작은 문까지 지나가야 비로소 도시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경험이 마치 중세시대 배경 영화나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팜플로나는 과거 나바라왕국의 수도이자, 현재는 나바라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피레네 산을 넘은 뒤 처음 만나는 스페인 도시라는 점과 성문을 통과해 옛 도시로 들어가는 경험 덕분에 순례길에서 만난 도시들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이 되었다. 초창기 순례자들 역시 갖은 고생 끝에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큰 감격을 느끼지 않았을까. 오래간만에 문명 세계를 마주하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바가 즐비한 좁은 골목에서 서서 맥주와 와인을 즐기는 모습은, 프랑스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아, 정말 스페인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팜플로나의 공립 알베르게는 생각보다 번화가 쪽에 위치해 있었다. 옆 침대에는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말을 걸어보니 미국에서 혼자 오신 80세 순례자였다. 긴 구간을 무리해서 걷기보다는 하루에 10km 정도를 천천히 걸으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공립 알베르게의 샤워실을 사용하기가 힘들어 다음날은 호텔을 예약하셨다고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 거리를 걷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벌써부터 이곳저곳 아파하는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순례길 앞에서 나이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를 보니, 그동안 잘 참고 있던 물욕이 슬슬 고개를 들었다. 가방무게를 늘리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순례자 플레이모빌과 ‘Camino de Santiago’라고 적힌 파란색 가방 패치를 구입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가리비 껍데기를 단 순례자들 자주 마주치게 된다. M씨와 H씨도 생장에서 기부를 하고 껍질을 받아왔다고 했다. 사람이 참 간사해서, 처음엔 관심이 없던 것도 계속 눈에 들어오면 갖고 싶어 진다. 조개껍질은 움직일 때마다 부딪힐 것 같아 결국 패치로 대신해 가방에 옷핀으로 고정했다. 이런 사소한 선택 하나만으로도 괜히 순례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7시에 열리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할 생각이었기에, M씨와 H씨와는 미사가 끝난 후 근처 바나 레스토랑에 가기로 약속하고 숙소를 나섰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우연히 참여했던 순례자 미사 이후로, 하루의 순례를 마치면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는 일을 나만의 순례 일과에 포함시켰다.
수비리의 작은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열리지 않아 대신 미리 받아온 미사 안내 종이를 떠올리며, 팜플로나에서는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대성당에서 순례자 미사가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별 다른 의심 없이 시간에 맞춰 성당 안으로 들어섰지만, 어쩐지 사람도 없고, 이미 무언가가 끝난 분위기였다. 앉아 있다가 얼떨결에 십자고상의 발을 만지는 행운과 십자가 목걸이를 받았지만, 이상한 예감이 들어 신부님께 순례자 미사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역시나 성당을 착각한 것이었다. 미사 시간만 생각하고 성당 이름과 주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엉뚱한 곳으로 와버렸던 것이다. 당황한 내가 안타까웠는지 신부님이 순례자 축복을 해주셨다.
해가 진 뒤 다시 찾은 광장은 시에스타를 마친 상점들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아직 스페인식 바와 주문 방식, 메뉴가 낯설어 어버버 했지만, 이날의 메뉴는 뽈뽀(Pulpo)였다. 사실 팜플로나가 속한 나바라주는 돼지고기, 특히 햄이랑 초리조가 유명하다. 하지만 동행인 M씨는 순례길을 걷는 기간이 짧아 최대한 유명한 음식을 먹고 싶어 했고, 그렇게 고르고 골라 뽈뽀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아마 혼자였다면 귀찮고 정신없다는 이유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맛있는 경험을 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친다. 이미 모든 순례자들과 안면을 튼 사람도 있고, 독일에서 작은 트레일러를 끌고 산을 넘은 60대 할아버지, 80대 할머니처럼 이 길을 걸으며 ‘나이는 정말 핑계에 불과하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만약 내가 80세가 되어 혼자 이 길을 걷는다면 어떨까. 편안한 숙소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순례자들처럼 불편한 숙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불편함조차 즐길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 길은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