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위에 내가 찾는 답이 없다면

Day. 16 -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

by Solynn

푸엔테 피테로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촛불을 켜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머문 순례자들이 모두 떠난 뒤, 다시 이곳을 지나갈 순례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모두가 6시 30분이 되기 전에 길을 나서야 했다. 출발에 앞서 신부님이 남은 길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순례자 축복을 내려주셨다. 산볼에 이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알베르게로, 덕분에 메세타 평원을 걷는 이 구간이 프랑스길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되었다. 그때는 이 고요함이 이후의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흔들어놓을 줄은 알지 못했다.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게 되어 원래 걸어가려고 했던 목적지보다 훨씬 더 긴 거리를 걷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이 날이 가장 긴 거리를 걸은 날이 아닐까 싶다. 순례길 초반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무릎과 발목통증은 어느샌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산티아고까지 427km가 남았다.

IMG_6294.JPG 고요함에도 분명한 리듬이 있었다

길은 어느새 멋진 운하를 따라 걷는 구간에 들어왔다. 평야만 보다가 물을 따라 걸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순례길을 걸으며 만난 미국 사는 멕시코 순례자와 수다를 떨면서 걸었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오랜 꿈이었는데, 아들과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각자 걷는 속도가 달라 서로의 리듬으로 걷고 있었다.

IMG_6311.JPG 길은 이어져 있었지만, 내가 찾던 방향은 아니었다. 이 순간부터 고독은 휴식이 아니라 소음이 되었다

프로미스타를 지나며 길은 돌연 낯선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내가 누렸던 메세타의 정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실망감과 박탈감이 내 안에서 들기 시작했다. 부르고스 이후 불과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혼자 자연 속을 걷던 시간과 달리 도로 옆에 조성된 길을 따라 걷는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에 단체 순례자들까지 더해지자, 순례길을 걷고 있다기보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행렬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행군같이 느껴졌다.


여태까지 걸어오는 동안 이런 구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알아차리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 상황을 한없이 부정적으로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든 실망감의 정체가 단순히 번잡해진 길에 대한 나 혼자만의 투정인지, 아니면 이 길 위에선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축복을 받으며 시작했던 아침의 설렘이 도로 옆 먼지 속에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괜히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단체 순례자들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 길은 이제 막 시작되는 즐거운 순례일 것이다. 다만, 산볼과 푸엔테 피테로를 걸으며 경험했던 고요하고 충만했던 순례길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에 상실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누구와도 섞이지 않은 채 오롯이 나 자신과 내 주변의 자연에 집중하고 싶었던 내 희망은, 인파의 흐름 속에 강제로 편입되는 순간 불쾌한 상실감으로 변했다.


혼자 실망하면서 도착한 이날의 목적지는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라는 마을이었다. 작은 도시지만 수도원과 수녀원이 많이 남아 있어 마치 수도자를 위한 도시 같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이곳에서 익숙한 얼굴의 순례자들을 다시 보았다. 내가 빨리 걸어오긴 했나 보다. 숙소에서는 그라뇽에서 만났던 미국인 순례자들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과 다시 함께 걷고, 또 다른 숙소에서 다시 마주칠 생각을 하니,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밀려왔다. 누군가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혼자 걷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나를 지치게 했다.


이곳에서 중간에 헤어졌던 멕시코 순례자와 그 아들도 다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르고스에서 다리를 다쳐 자전거로 순례길을 걷는 독일 순례자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하니 걸어서 순례를 하는 것과 달리, 자전거 순례자들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을 받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긴, 나도 처음부터 그들에게 편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중간중간 길을 공유하며, 뒤에서 예고 없이 울리는 날카로운 벨소리나,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속도감에 때문에 위험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후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을 경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방식을 바꾸었음에도, 그는 쫄바지를 입고 빠르게 질주하는 ‘전형적인 자전거 순례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페달을 밟더라도 가능한 한 자신이 걷던 리듬에 가까운 속도로 이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라는 도구를 택했을 뿐, 여전히 자신의 리듬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도구도, 경로도 결국 수단일 뿐인데 나는 왜 정해진 길에 나를 맞추려 고집하고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생각이 나중에 나를 다른 선택의 순간으로 이끌게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순례의 방식이 무엇이든 결국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리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프랑스길에서 느끼고 있던 불편함의 정체가 조금은 분명해졌다. 나는 길을 떠나기 전부터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나 자신의 방식과 리듬으로 걷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길에서는 점점 그 리듬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IMG_6318.jpeg 혼자가 아니라는 말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 걷고 싶었다

까리온에서 열린 순례자 미사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혼자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항상 생각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강조하며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혼자가 아니라는 그 위로 앞에서, 나는 더욱 간절히 혼자가 되고 싶었다.


그 순간 분명해졌다. 지금까지 순례길을 걸어오며 겪었던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이나 만남과 관계없이, 내 안에서 더 이상 프랑스길을 걷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이 길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고, 찾고 있던 순례의 방식이 더 이상 이 길 위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일단은 레온까지 가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한 뒤 이후의 일정을 조정해 봐야겠다. 순례길에서 모든 답을 한 번에 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때로는 길을 잃는 것이 진짜 내 길을 찾는 시작이 된다는 것을 나는 배우는 중이다.






다음편부터는 오전 10시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