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한 달 살기

왜 이곳이냐면요,

by som

왜 베를린이야?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회사 퇴사 후 경제활동에서 장소에 대한 자유를 얻고, 한 달 살기의 목적지로 베를린을 선택했을 때.


아쉽게 옅어지고 있는 지난날 여행의 기억을 찾아 떠난다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도시에서 그냥 사람 살듯 살아보고 싶었다. 물론 하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일단 떠나야 다시 돌아오고 싶을 것 같았다.


베를린은 유난스럽지 않아서 좋다.

여러모로 무심하고 솔직하다. 그래서 여기선 우울하거나 즐겁거나 슬픈 것도 과감하게 드러내고, 또 내내 잠잠해진다.

색채로 치면 검정이나 하얀색이 아닌, 회색에 가깝다.

그 잿빛이 마냥 세련되고 쿨해서 낯설지만 매력 있다. 그런 이미지가 내게는 자유롭다.

흰색이 아닌 회색 도화지 같은 마음으로 떠나고 싶었다.


출국 열흘 전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했고, 입원하며 내내 회복을 걱정한 건 나의 건강보다 비행기를 못 타면 어쩌지. 하는데에 가까웠다.

다행히 잘 회복하고 16시간을 날아 베를린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맥시멀리스트. 혼자서는 절대 들 수 없는 수준의 짐을 겨우 끌고 다니며, 대체 필요한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이런 것들이 다 뭔지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디지털 노마드를 실현하고 있으니. 업무장비는 필수, 가서 입고 싶은 옷은 덜고 덜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어디에서는 읽고 싶은 책 등 모두 덜어낼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설득하고 다음날 장기숙박을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약 40일 동안 나의 집이 될 곳에 들어가서 내 성격대로 짐 정리를 완벽히 한 후,


창문을 너머 들어오는 햇살은 왜 이렇게 화사한지 그런 건 처음 보기라도 한 듯 새삼스럽게 기뻐했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 첫 번째.


기억이 형성되던 유년기부터 자아가 생기던 청소년기를 지나, 20대 초반까지

한 집에 살면서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온전히 “나의 공간”이라는 것은 TV 밑 서랍장 한 칸, 책장 한 칸. 그 안에 여러 개의 다이어리와 아끼는 잡동사니는 그 시절의 나의 모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단 한 번도 내 맘대로 하고 산적은 없다고 느끼던 고등학생의 나는 ,

엄마의 사랑을 그렇게 먹고 자라면서도 동시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단 생각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여긴 나와 어울리지 않아.


여러 가지로부터 도망치듯 온 서울에서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나의 공간에 대한 욕망에 집착했다.

집에서 만족되지 않으면 회사에서. 1평이라도 나의 공간이 있는 곳에서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쌓는 것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내 공간을 가지는 것이 결국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 욕망을 20대 후반부터는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었지만,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면 결국 제자리라는 좌절감에 며칠을 힘들어했다.


그런 욕망은 숙소를 결정할 때도 영향을 줬다. 굳이 둘도 아니고 혼자 여행을 가서 넓고 좋은 숙소에서 지낸다는 게 , 욕심일 수 있어도 내게는 굳이 해야 하는 낭비였다.

그런 마음으로 내 선에서 무리한 듯 예약한 숙소는, 적어도 여기서 만큼은 완벽하게 내 결핍을 사라지게 했다.

낑낑거리며 들고 온 사무용품도. 옷도. 이곳에 녹아드니 그제야 나의 공간이 완성된 것 만 같았다.


욕망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어려서부터 옷을 좋아했다. 첫 번째 욕망과 연결되게, 옷이 아니면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너 되게 부잣집 딸 같아. 우와 이건 어디 거야? 멋지다.

그런 칭찬은 곧 나의 구원이 되는 것 같았다.


옷으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구나. 그때 깨달은 건 내가 옷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만들어줬다.

화려하지 않은 내 삶의 따분함을 달래주는 건 옷 밖에 없었다.

그런 태도는 몇십 년을 지나 다양하고 화려한 브랜드의 관심을 넘어 “나의 스타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매일매일 한 곳으로 출근할 때도 뭐 입지에 대한 고민은 단연 질리지 않는 일이었다.

집 밖을 나설 때의 내가 진짜 내 모습이 되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도 마치 나의 직업에 대한 이미지를 깨 놓는 듯이 열심히도 입고 다녔다.

그렇게 신경 쓰고 오면 안 피곤 해요? 오늘 끝나고 어디 가요? 같은 동료들의 은근한 미세공격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기 꾸미는 것만 잘하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 일도 더 열심히 했다.

저 사람은 잘 꾸미는데, 일도 잘하네. 그런 말에 쾌감을 느꼈으니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패션에 대한 애정은 일에 대한 원동력도 되었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걸 주었다.


다시 베를린에 오게 된다면 며칠쯤은 내도록 디자인샵과 빈티지샵만 돌아다닐 거야.

그걸 여기에 와서 열흘 내도록 실현했다.

옷에 대한 욕망을 눈으로 보고 입어보고 또 사는 것으로 채우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러 번 생각하면서도, 또 눈을 반짝이며 옷가게로 향하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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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나는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효율과 생산성을 위주로 살았다.


이곳에선 굳이 흐린 날에도 보고 싶은 전시장에 간다던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클래식 공연을 두세 시간 동안 본 다 던 지.

걸어가다 보이는 잔디에 냅다 앉아 몇 시간 있기도 하고, 서툰 요리와 맥주를 즐기고, 무거운 책을 늘 가지고 다니며, 해가 잘 들어오는 카페를 찾으면 꼭 거기에서 책을 읽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낭만을 찾으면 꼭 베를린에 녹아든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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