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회고

30살 인생 최고의 한해였습니다.

by som

연초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 오늘은 꼭 쓰고 싶었던 장문의 회고.


2025년에 나는 어땠나.


나의 30대의 시작. 이렇게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있었나 싶다.

좋게 말하면 용기 넘치고 자유로웠고, 냉정하게 말하면 생각 없이 마음대로 살았다.

서른 즈음에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마흔이 되면, 그땐 이 시간들이 단연 가장 빛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5월엔 회사를 퇴사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하루하루가 바쁜 스타트업에서 제품 총책임자로 일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경영진과 팀의 눈치도 보면서, 혼자 불평불만을 달고 살았지만 결국엔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과 성과, 내가 기억하는 지난날의 과정들. 그 속에서 아쉬워하고 기뻐하고 복잡한 감정과 늘 함께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아가 꽤나 비대해지기도 했다. 지난날 가수를 꿈꾸던 삶은, 냉정한 사회에선 학력, 경력, 이룬 것도 하나 없는 사람이었고, 자기 비난과 혐오 속에서 후회로 살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를 갉아먹었다. 와 중에, 괴로움 속에서도 살아야 하니까. 현실적인 마인드가 한 몫하여 참 열심히도 살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일의 철학 아래에서 성실하게, 일단 하기, 슈퍼 디깅을 달고 살며, 6년 만에 일에 대한 자기 확신을 얻었다.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적은 에너지로 일에 몰입하는 방법을 찾았다.

태생이 허슬러 DNA라, 이 속도로라면 회사에서 벗어나서 나의 이름으로 더 잘할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찰나, 회사에서 연봉협상 시즌이 되었다.

동료, 경영진 평가 결과는 S. 회사에서 드문 케이스라고 했다. 당연히 연봉도 올려주고, 팀을 별도로 구성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날 퇴사를 마음먹게 되었다.

여기 회사에서의 일이 마냥 잘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었고, 개인적인 답답함도 있었고, 무엇보다 제안받은 연봉과 등급을 회사 밖에서 의미 있게 만들고 증명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흔들렸지만 더 확신이 생겼다.

" 솔직히 ㅇㅇ님 같은 사람 대기업 가면 널렸을 거다. 우리 회사니까 이 정도 대우해 주는 거다. 혼자 하는 게 쉬운 줄 아냐, 망하고 찾아오지 마라."

퇴사를 하고,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면전에서 들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퇴사했고, 이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유럽과 미국으로 한 달 살기를 떠났다.

퇴사 시점부터 고민을 했다. 떠나고 싶다. 완벽한 이방인으로.

삶에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건 더 괴로운 일이었다.

해외생활, 유학, 배움에 대한 개인적인 결핍이 있었다.

가정형편 상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하고, 조용히 갈망했던 마음이 남아있었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장기적으로 떠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내가 선택한 건 한 달 살기였다.

가장 원했던 도시인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38일, 다른 나라에서 14일 살았다.

100% 무모할 수 없는 상황이라 외부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두 개 따고 타국에서 한국 일도 했다.


선택적인 고독이었다.

고독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알게 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한 지난날을 스스로 용서하게 했다.

바쁘고, 정신없고, 눈치 보던 지난 30년의 시간의 의미를 찾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완벽한 처방이었다.


유럽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끝났다는 좌절감이 며칠간 정신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이내 회복하고 다시 원래의 모드로 돌아가기도 했다.


갑자기, 미국여행

뉴욕, LA, 시애틀 같은 영화에서만 보던 대도시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아무래도 혼자 가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번 여행을 함께할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편안하고 든든한 존재들이었다.

여름에 떠난 장기여행 때문에 바로 이어서 가는 것은 사실 무리였으나,

한 명은 사업준비, 나는 프리랜서, 둘은 퇴사 후 이직 전 공백.

결국 11월로 확정한 건, 우리 네 명이 이 타이밍에 모두가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은 앞으로 남은 젊은 날에 다시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뉴욕으로 출발해서 LA부터 시애틀까지 로드트립을 했다.

내게 낯설었던 자연생활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아찔하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며, 창밖으로 엄청난 산과 호수, 나무, 햇살을 만났다. 처음 보는 광경에 벅찬 마음이 내내 요동쳤다.

대자연 앞에서의 인간은.. 너무 작고 연약하고 먼지 같았다. 자연에게 인간은 얼마나 성가신 존재일까..

결국엔 다시 땅으로 돌아갈 이치를 생각하면 우린 뭘 그렇게 애쓰면서 사나 싶기도 했고,

몇 주가 지났을 땐, 그 풍경에 이내 적응하고는 다시 핸드폰 화면을 주로 보던 모순적인 내가 있었다.


로드트립을 마친 후에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행들과 작별하고 시애틀에서 열흘간 지냈다.

아무런 일정, 관광지 생각 없이, 따뜻한 숙소에서 요리도 해 먹고, 일도 하면서 여유롭지만 치열하게 살았다.

다시 떠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소중하고, 가치 있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가 이런 거겠구나.

비행기를 타기 전 날, 타는 날까지도 특별한 이벤트를 찾지 않고 별일 없이 보냈다.

온전히 음미하면서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며 다짐했다.

늘 여행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더 스스로를 돌보고, 건강한 신념 속에서, 가치 있게. 만족하면서 살자.


2025년의 이 여행들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간들이 없었다면, 난 지금 어땠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사업의 시작, 가속화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나는 생각하는 걸 존재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던, 콘텐츠를 만들던, 편집을 하던, 모임을 하고 토론을 하던 나는 '그런 걸'할 때 늘 흥미로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경험이 곧 나의 일과 취미생활의 작업 형태에 영감이 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를 선언할 때 자신감도 잠시, AI활용이 트렌드가 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의 직무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내재화되기 시작했다.

안정형인 나는 금세 불안해졌다. '일'이 존재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나는 불안, 걱정과 내도록 함께 했다.

회사와 일에서 벗어난 나는 내세울 것도, 도망갈 곳도 없어진 상태였다.


미국여행 3주 전날. 4년간 같이 종종 일을 했던 (내게 일감을 주시던) 대표님과 오랜만에 미팅을 하며, 홀로서기 후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볼 땐, ㅇㅇ님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늘 마지막엔 본인 브랜드를 만들고 그걸 키워나가는 게 목표가 아니었어요? 그게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면서 본인이 잘하는 일이잖아요."

그는 내게 사업을 제안하면서도, 감당해야 할 모든 것에 대해 1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딱 일주일 고민 후, 나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불안함에 대해 내내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은 설레고 두근거렸다.

어쩌면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하찮을 수 있는 이 용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사업으로 잘살다가 망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눈으로 보고 겪은 모든 일들은 아직 생생하니까.

그때의 여러 장면들이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있지만 , 결국 나는 아빠의 추진력과 엄마의 회복력을 닮은 그들의 딸이었다.


어쩌면, 이 날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달간 일에 몰입했다. 여행 중에도 내내 고민했다.

이런 상황을 예고하고 준비라도 한 듯 빠르게 모든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루는 후회하고 하루는 기대하면서 물리적으로 정말 바쁘게 살았다.


요즘은 일에 대한 에고가 와장창 깨지는 순간들을 계속 겪는다.

회사의 직원으로서 내가 가졌던 건 주인의식 아니라, 단순 자기 인정욕구라는 걸 인정하면서, 계속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여전히 오늘도 지치고 외롭다. 사업성과 나의 방향성에서 매번 싸우고, 설득하고, 성공 실패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결정들을 단 몇시간만에 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의심하고 불안하고 망설이며 산다.

하지만 결국 모든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니 내가 책임 질 일이다.



올해는 어떻게 살 것 인가.

2026년이 왔다.

나는 욕망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엄마도 챙기고,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일도 끝내주게 하는 멋진 여성이 되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글을 읽으며 위로받고, 글을 쓰며 해소하고.

나 자신을 우선으로 아끼고 계속 돌보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행의 즐거움도 계속 느끼고 싶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풍경과 이야기. 낭만을 잃고 싶지 않다.

사업은 한 치 앞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경험이 결국 인생의 오점이나 실패로만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치열하고 뜨겁게 즐기고 싶다.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내 에너지를 불태우고 싶다.

이게 나의 솔직한 진심이다.

나의 용기를 누구보다 내가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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